북 “남북 대전환” 말하면서 전제 조건만...어떤 속셈?

김소정 기자
입력 2015.01.12 17:32
수정 2015.01.12 17:42

김정은 신년사부터 변죽만 울릴 뿐 실질적인 회답은 없어

남과 북이 분단 70주년을 맞는 새해 들어 선제적으로 대화 분위기를 고조시켜나가면서도 의제 선점을 위해 골몰하는 분위기이다.

정부가 지난 연말 통일준비위원회 주체로 선제적인 대화 제의를 하면서 단계별 신뢰 구축을 주장한 것에 대해 북한은 1일 신년사를 통해 정상회담 제의로 맞받았다. 하지만 한미 합동 군사훈련과 대북전단 살포 중지 등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면서 대화의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이후에도 북한은 남북대화에 묵묵부답이다가 다시 미국을 향해 한미 합동 군사훈련과 핵실험을 연계한 대화 조건을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신년사에서 ‘최고위급 대화’를 언급하고, 남북대화의 대전환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 정부가 쉽게 합의할 수 없는 조건들을 잇따라 내세우면서 오히려 압박을 가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가 북한의 신년사가 발표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29일 통일준비위원회 주체의 대화를 제의한 것은 사실상 올해 남북관계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이 낮은 단계부터 부담없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는 것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관철 의지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남북관계의 대전환·대변혁을 천명하는 것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나 5.24조치 해제 등 자신들이 원하는 의제를 대화 테이블에 올리기를 표명했다.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서도 '최고위급 회담'을 운운하는 등 대화에 대해 변죽만 울릴 뿐 정작 우리 측의 대화제의에는 전제조건만 내걸 뿐 회답이 없는 상태다.(자료사진) ⓒ연합뉴스

박 대통령의 통일준비위 대화 제의는 남북 간 대화 테이블에 정치 의제를 올리기에 앞서 이산가족 문제나 광복 70주년 기념사업들을 통해 사전에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보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남북 간 대화가 단절된 지 너무 오래된 만큼 당장 정상회담을 열기에는 쌍방이 합의할 수 있는 목표가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통일준비위의 최고 관계자는 지난 7일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북한이 최고위급 회담을 거론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지금 당장 정상회담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돌연 미국에 대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임시 중단하면 핵실험을 임시 중단하겠다”고 제안하고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11일 “미국이 올해 남조선과 그 주변에서 합동군사연습을 임시 중단하면 우리도 미국이 우려하는 핵실험을 임시 중단하는 화답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며 “미국이 이 문제와 관련한 대화를 해야 한다면 언제든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제안에 대해 미국은 “연례적으로 열리는 군사훈련을 대화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북한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며 즉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북한은 남한에 대해서도 “외세에 추종하며 동족을 반대하는 북침전쟁연습에 계속 매달린다는 북남관계는 지금보다 더 험악한 국면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북한이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한미 군사훈련까지 언급한 것에 대해 “새로운 도발 책임을 전가할 명분 쌓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체제통일을 반대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하던 김정은 신년사의 진정성이 의심받기에 충분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 신년사에 담긴 대화 천명은 대내용일 뿐 정말 남북대화에 나설 준비가 안 됐거나 김정은 스스로 자신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으로서는 우리 정부가 제안한 낮은 단계의 신뢰 구축에는 관심이 없을 뿐더러 실질적으로 김정은 통치자금에 도움이 될 5.24조치 해제를 논의할 수 있는 대화 분위기 조성을 모색 중”이라는 견해도 나왔다.

결국 남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응답을 내놓지 않고 있는 북한이 오는 18일로 예정된 북미 간 1.5(반관반민) 트랙 대화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대화는 이틀간 싱가포르에서 열리며 북한의 6자회담 수석 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 스티븐 보즈워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 대표 등이 참석한다.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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