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당선되자 김정일, 최승철·전금철 죽인 이유가...

김소정 기자
입력 2014.09.08 07:52
수정 2014.09.08 08:02

남한 정권 바뀔때마다 상징적 인물 처형 되풀이

지난 2013년 12월 29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 2주년 경축 중앙보고대회가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북한에서 장성택과 최승철의 처형은 남한의 정권교체 이후 상징적으로 단행됐다는 측면에서 닮은꼴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 장성택과 노무현 정권 때 북한 통일전선부 부부장이던 최승철은 대남사업의 일선에 섰던 인물이란 점에서 공통점을 더한다. 또 두사람 모두 술을 좋아하고 화통한 성격으로 행사 때마다 유난히 주목받던 인물이기도 하다.

장성택은 지난해 12월 남한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처형됐다. 그가 2002년 북한 고위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남한을 방문했을 동안 폭탄주를 즐기며 자유분방한 스타일을 드러냈던 일은 잘 알려져 있다.

최승철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내내 북한 대남사업의 실무 책임을 맡았지만, 이명박 정권 초기인 2008년에 체포돼 2009년에 총살로 처형됐다.

최승철의 처형은 그가 북한 매체에서 사라지면서 처음에는 ‘설’로 알려지다가 2009년 5월에 남한에서 ‘사실’로 보도됐다. 하지만 1년 이상 지나 일부 언론이 최승철이 직업총동맹 부위원장을 맡아서 살아있다고 보도할 만큼 그의 신변 이상설은 주목받았다.

최승철의 처형은 남한의 정권교체와 관련이 커보였고, 그를 처형한 사실이 남북관계의 경색 신호탄으로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최승철은 남한 정치권에서 ‘최승철 라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 대남사업의 핵심에 있었다.

최승철은 평범한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통전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최승철은 남북 간 행사에서 전면에 나서며 시선을 끌었다. 특히 술 좋아하고 말이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2007년 11월 남북총리회담으로 서울에 온 최승철 부부장이 청와대에서 열린 환송 오찬장에서 갑자기 와인 잔을 들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건배를 제의해 남측 인사들이 긴장한 일도 회자된 바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 내부의 가장 큰 특징으로 최승철이 사라졌지만, 지금까지도 그의 숙청이나 처형 사실은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4일 북한에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최승철이 2008년 북한 당국으로부터 남한 정보기관의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체포돼 2009년에 총살당했다”고 밝혔다. 이 사실은 북한 당국이 간부들을 모아놓고 통보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공표됐다고 한다.

또 “최승철과 함께 당시 전금철 내각책임참사 등 모두 11명이 함께 처형됐으며, 그 가족들은 정치범관리소로 보내졌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에서는 숙청당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정한 지위 이상의 간부가 사망하면 반드시 부고를 내고, 부부장급 이상의 간부는 평양의 애국열사능에 묻힐 수 있다고 한다. 사망 부고가 나오지 않거나 애국열사능에 못 간 간부는 숙청당했거나 처형당한 경우이다.

북한에서 통전부는 대남사업 담당 부서이고, 최승철의 윗선으로 김양건 통전부 부장이 있다. 하지만 최승철이 실무자로서 전면에 나섰던 까닭에 남한 언론에서 최승철이 부각된 것이 사실이고, 바로 이런 점이 장성택의 죽음과도 일맥상통한다. 남한 언론들이 그를 ‘북한의 2인자’라고 말해온 것이 처형에 영향을 끼쳤다는 말들이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나왔다.

남한에 잇따라 보수 정권이 들어선 정권 초기마다 각각 최승철에 이어 장성택을 처형한 것은 눈엣가시인 존재를 제거하면서 동시에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공포정치의 일환이다. 이와 관련해 소식통은 “김정일은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다가 돌아가자 중앙당 간부들을 모아놓고 사상교양사업을 강조하면서 ‘지금 남한과의 평화공존은 일시적’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남한의 정치인은 물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가 돌아가도 북한 당국은 ‘김정일이 세계의 지도자이므로 평양에서 김정일의 가르침을 받고 돌아갔다’며 선전에 이용했다”고 말했다.

결국 남북 화해무드가 무르익던 당시에도 김정일은 여전히 적화통일을 강조했던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더구나 자신들에게 우호적이라고 판단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끝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유독 남한 인사들과 교류가 많았던 최승철 등을 본보기로 처형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북한에서 대남부서의 간부들을 처형시켜온 것은 아니다. 김양건의 경우 노무현 정권인 2007년부터 통전부 부장을 맡아 남한에서 두차례 정권교체가 이뤄진 지금까지도 통전부를 이끌고 있다. 또 현재 통전부 부부장인 원동연도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부터 통전부 부부장을 맡아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활동 중이다.

북한은 이명박 정권 때인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을 잇따라 감행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이후 우리 정부는 대북 제재의 일환으로 5.24조치를 단행했고, 이로써 남북관계가 단절됐다. 사실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추진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고 있지만, 북한은 이후에도 2009년 5월25일 2차 핵실험과 2013년 2월12일 3차 핵실험을 이어갔다.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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