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라린 가가와 신지, 왜 박지성 되지 못했나
이충민 객원기자
입력 2014.09.02 11:37
수정 2014.09.02 11:42
입력 2014.09.02 11:37
수정 2014.09.02 11:42
도르트문트와 4년 계약, EPL 생활 결국 마감
약한 피지컬 치명적..일본축구 한계 실감
‘열도의 자랑’ 가가와 신지(25)가 2년여 만에 독일 분데스리가로 복귀했다.
도르트문트는 1일(한국시각)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가가와가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2018년까지 4년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이적료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약 107억 원으로 추산한다.
이로써 일본은 나카타 히데토시, 이나모토 준이치 등에 이어 가가와마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쓴잔을 마신 셈이 됐다. 아직 요시다 마야(사우스햄튼)와 미야이치 료(아스날)가 남아 있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려 방출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다.
일본 선수들이 영국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힘’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거스 히딩크, 알베르토 자케로니, 필립 트루시에 등 세계적인 축구 감독들도 “일본축구는 피지컬이 약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히딩크 감독은 일본에 대해 “축구의 3대 기본요소인 정신력·피지컬·개인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패스’만으로 싸운다”고 꼬집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도 “일본축구는 초식동물 가젤과 비슷하다. 기동력은 뛰어나지만, 내구성이 떨어지고 연약하다”고 분석했다.
가가와도 피지컬이 강한 영국에서 일본 선배들처럼 한계를 절감했다. 부딪치면 나동그라졌다. EPL 밀림에서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는 안타까운 목소리마저 흘러나온다.
다른 일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일본의 상대팀 코트디부아르, 그리스는 피지컬로 일본의 패싱축구를 무력화했다. 특히 디디에 드록바는 일본전에서 ‘프로야구 외야수’처럼 행동했다.
SBS 배성재 캐스터 표현처럼 드록바는 모든 공중 볼을 편안하게 캐치했다. 일본 수비진 누구도 드록바를 이겨내질 못했다. 급기야 나가토모 유토는 고목나무 매미처럼 드록바 품에 안겼다. 드록바는 그런 나가토모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드록바의 바위 같은 피지컬을 경험한 일본 축구계는 “피지컬을 강화하지 않으면 일본 축구의 미래는 없다” “‘극동의 유럽’ 한국 축구라도 배우자” “당장 한국과 정기 평가전을 추진하자”고 자조 섞인 반성의 목소리를 토해낸다.
당연한 반응이다. 일본은 80년대부터 ‘아시아 호랑이’ 한국축구의 옹골진 피지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차범근의 꿀벅지를 보면서 일본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한 탱크 공격수라고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실제로 한국 선수들은 투박하지만, 피지컬만은 단단하다. 설기현과 부딪쳐 본 티에리 앙리도 “그 선수 어깨 힘 좋아”라고 감탄한 바 있다. EPL을 경험한 조원희, 이동국, 박주영, 김두현 등도 파워에선 밀리지 않았다. 가냘픈 이청용조차 어깨 힘이 좋아 상대가 강하게 부딪쳐도 쓰러지지 않고 볼을 지켜냈다.
박지성은 차돌멩이 피지컬의 정점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경의를 표했을 정도로 영국서 다부진 동양 고추의 매운 맛을 보여줬다.
영국 언론은 이런 태극전사를 가리켜 리카온(들개)에 비유한 바 있다. “작지만 단단하고 정신력이 강하다. 절대 무시해선 안 되는 존재다. 맹수도 끈질긴 들개 무리를 보면 자리를 피한다”고 극찬했다.
‘열도의 자랑’ 가가와마저 영국에서 피시 앤 칩스를 계속 먹지 못했다. 일본이 축구종가 잉글랜드에서 족적을 남기고 싶다면 ‘동양의 피지컬 그 자체’ K-리그에서 한 수 배우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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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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