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이정현 김희정 정용기의 공통점은?

조성완 기자
입력 2014.09.09 10:04
수정 2014.09.09 10:07

<새누리당 사무처를 해부한다②>공채 전통 이어져 의원 진출도 원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7.30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 업어준다는 약속을 지킨다고 말하며 이정현 최고위원을 업어주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정당의 대표최고위원과 원내대표 등 ‘대표’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직책에는 모두 현역 의원들이 임명되듯이 정당을 대표하는 인물들은 국회의원들이다. 하지만 정당의 전략, 정책, 공보 등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곳은 사무처다. 특히 새누리당 사무처의 경우 체계화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당을 움직이는 최대 핵심 세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데일리안’은 이들의 채용부터 업무 과정, 그리고 최근의 ‘성공시대’까지 차근차근 살펴봤다.<편집자 주>

최근 새누리당 내에서 사무처 출신 인사들의 활약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다. 말 그대로 ‘사무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당직자들 사이에서 ‘사무처 성공신화’로 불리는 김무성 대표를 비롯해 이정현 최고위원,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정용기 의원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김 대표는 과거 통일민주당 시절 총무국장을 하다가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민자당)으로 옮겨 의사국장, 의원국장 등을 두루 거치며 당료로서 실무경험을 쌓았다. 지난 2005년 국회 재정경제위원장 당시에는 사무총장으로 발탁돼 사무처 업무 전반을 관장하며 당의 살림을 이끌었다.

지난 7월 14일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가 당 대표로 선출되던 모습을 지켜보던 한 당직자는 “같은 사무처 출신으로 정말 자랑스럽다. 사무처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더 정이 가는 면이 있다”고 친근감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새누리당 소속(전 한나라당 포함)으로 18년만에 호남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이정현 최고위원도 사무처 출신이다. 그는 민주정의당 시절부터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까지 사무처 당직자로 활동했다. 이후 박 대통령의 당 대표 재임시절 당 부대변인으로 발탁되면서부터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기 시작했다.

김희정 장관과 7·30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정용기 의원도 각각 민자당과 신한국당 시절 사무처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있다.

특히 민자당 사무처 당직자 공채 4기로 정치에 입문한 김 장관은 지난 2003년 5월 부대변인에 선출된 이후 2004년 총선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부산에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달았다. 만 33세로 17대 국회 최연소 의원이자 역대 최연소 여성 국회의원 기록을 세웠다. 2014년에는 여성가족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최연소 장관’이라는 수식어를 하나 더 달게 됐다.

이처럼 사무처 출신들이 19대 국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당 내에서는 “그동안 쌓인 인재풀의 결과”라는 평가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당내 한 사무처 당직자는 최근 ‘데일리안’과 만나 “새누리당과 여타 다른 정당을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공채 기수 채용”이라며 “이를 통해 사무처가 체계화 되고, 그것은 곧 수많은 인재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사무처는 공채로 당직자를 채용한다. 신한국당 시절 1기로 시작한 공채는 2014년을 기준으로 16기까지 채용됐다. 기수별로 10명 안팎의 우수한 인력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인재풀을 형성한 것이다.

실제 가장 치열했던 대통령선거로 꼽히는 지난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사무처 출신 인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특히 1996년 여당 막바지에 37명이랑 보기 드문 대규모 공채를 통해 뽑힌 ‘공채 5기’는 당과 선대위를 실제로 이끌면서 ‘숨은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당시 이재성 당 기획조정국장은 대선전략을 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인수위에서는 국정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장성철 선대위 공보기획팀장은 대언론 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동기 중 가장 먼저 배지를 단 서용교 의원은 선대위 공보위원으로 활약했다. 장경상 선대위 전략기획팀장은 전략부문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다.

그 외 공채 5기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중앙당에서 각자가 맡은 위치에서 대선 승리에 큰 힘을 보탰으며, 인수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 활약했다. 1997년 대선 패배로 시작된 10년의 야당생활동안 인고의 시절을 보낸 공채 5기가 결국 정당생활 18년만에 대선 승리의 중요한 기반이 된 것이다.

공채 5기인 이상로 현 대변인 실장은 “과거 본업을 뒤로 한 채 공채에 지원한 것을 두고 ‘좀 있으면 야당 될 곳’이라며 주변에서 만류도 많았다”며 “하지만 ‘나라를 위해 뭔가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로 버텼다”고 설명했다.

조성완 기자 (csw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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