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멀리건 샷 기회를 얻었을뿐이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4.06.07 09:58
수정 2014.06.07 10:14
입력 2014.06.07 09:58
수정 2014.06.07 10:14
<칼럼>“국가대개조 제대로 이행하라” 국민의 명령
절묘한 균형은 플러스 아닌 마이너스 균형 인식해야
이번 6.4 지방선거도 역대 모든 선거와 마찬가지로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냈다. 국민들은 세월호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는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을 일단 꺼내주긴 했다. 하지만 무능과 교만에 대한 회초리는 매서웠다. 충청-강원 광역단체장 전멸과 교육감 선거 참패는 물론 부산시장 선거마저도 1%대 표차이로 신승하게 만들었다. 특히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처럼 수신제가(修身齊家)에 미흡한 사람에게 더 큰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따끔한 교훈도 던져줬다.
그렇다고 수권능력 향상보다 인위적 정계개편에 몰두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손을 들어준 것도 아니다. 박근혜 심판론만 외치면 낙승할 줄 알았던 경기, 인천에서 패배하게 만든 건 ‘그런 실력으론 아직 멀었다’는 분명한 경고다. 중원을 싹쓸이했어도 수도권에서 밀린 야당이 축배를 들긴 낯간지럽다. 눈에 띄는 점을 꼽는다면 한때 새정치 아이콘이었던 안철수 공동대표가 광주시장 밀어넣기에 성공하면서 야금야금 실속을 챙기는 비즈니스 정치의 달인으로 변신했다는 사실 정도다.
선거결과를 놓고 여야 지도부가 늘어놓는 정치적 수사들은 역시나 고리타분하고 판에 박힌 말씀들이다. 입으로는 국민의 선택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어쩌고 하겠지만 속으로는 향후 자신들의 정치행보에 미칠 득실을 계산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또 정치평론가와 호사가들은 이번 선거가 7월말 재보선이나 차기 대권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놓고도 한동안 입방아를 찧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건 국민 관심사가 아니다. 정치공학적 선거판세 분석은 ‘균형’일지 몰라도 정작 표심에 숨은 메시지는 누구든 함부로 날뛰면 바로 응징한다는 극도의 분노에 가깝다. 균형은 균형이되 그 내용은 플러스 균형이 아니라 마이너스 균형이다.
이건 정치에 대한 국민의 냉소주의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위험신호다. 모두 함께 더 행복해지는 선의의 균형이 가망 없는 꿈이라면 일부만 호사를 누리는 불균형보다 차라리 다 같이 불행해지자는 공멸지향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가령 유병언 일가 같은 특정소수의 후생증대를 위해 한꺼번에 300명씩 목숨을 잃어야하는 극단적 부조리 앞에서 정치인들은 뭐 잘했다고 나대느냐는 절규가 말없는 다수의 메세지라면 과장된 해석일까.
물론 그 질타는 선거 후보들만 겨냥한 건 아닐 것이다. 국민들은 입법, 사법, 행정 모든 권부를 향해 “당신들은 과연 세월호 선장과 다르냐”는 질문을 눈빛으로만 던져왔다. 대국민 봉사를 직업으로 삼는 자들이 경제적 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을 넘어 정치사회적 최적을 어떻게 달성할지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봤는지, 아니면 오로지 제 잇속 챙기는 데에만 혈안이 돼왔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그 억눌린 분노를 투표로 말했다는 점을 간과하면 이번 선거결과는 무의미한 숫자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의미를 가장 깊이 새겨야할 인물은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일 것이다. 이번 선거의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진다면 박 대통령은 분명히 수혜자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최소한 완패를 당하진 않았고 여의도정치에서 얻은 ‘선거의 여왕’ 타이틀도 여전히 유효함을 입증했다. 광역-기초단체 가릴 것 없이 여당후보들은 하나 같이 ‘박근혜 수호’를 외쳤고 그 덕에 선전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걸 즐길 처지가 아니다. 거대 집권여당의 후보들이 박 대통령 이름을 파는 현상부터가 엄마 치맛자락 붙들고 다니는 어린애처럼 보인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이미 권력의 정점에 있고 더 많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몸소 선거를 치를 입장도 아니다. 정상에 선 사람에게 남은 건 내리막길과 역사적 평가뿐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할 소득은 골프용어로 ‘멀리건 샷’ 기회 같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라는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을 범했지만 국민들은 “국가 대개조를 제대로 이행하라”고 한번 더 아량을 베푼 셈이다. 박 대통령으로선 이 천금의 기회를 활용해 모든 걸 쏟아 붓는 자세로 국민 명령을 이행해야 한다.
민심을 받드는 국가개조라면 우선 눈높이부터 지금보다 훨씬 높여야 한다. 공공부문의 모든 관행과 기준을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 끌어올릴 각오부터 다져야 한다. 세월호는 몇몇 사악한 세력의 단순비리라기보다 국제규격과 동떨어진 내수용 관행과 기준들이 복합적으로 잉태시킨 괴물이기 때문이다. ‘한국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편법을 다 뜯어고치지 않고는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다.
개각을 비롯한 인적 개혁도 마찬가지다. 총리 인사부터 절룩거리는 모습은 청와대가 여전히 국민 인식과 한참 괴리돼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유병언 일가는 검-경 수사망의 틈새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다니고 구원파 교도는 실세 이름을 들먹이며 조롱을 하는 지경이다. 권력자의 허세가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다 드러났는데도 구중궁궐에서 자기들만의 잣대로 인사를 한다면 참으로 절망적이다.
총리와 장관인사에서도 글로벌 감각과 지식이 주요기준이 돼야 한다. 국민 화합 따위를 명분으로 정치권이나 법조계의 ‘내수용’ 인사들을 찾는 건 분식(粉飾)개조다. 적합한 인물이 없다는 것도 역대 모든 정권이 애용해온 핑계에 불과하다. 정파와 친분을 초월해 각계 요소에 숨은 개혁가를 찾아보려 애쓴 적도 없으면서 개인적 충성도와 공헌도를 따지다보니 그런 핑계를 댈 뿐이다. 더불어 총리에겐 헌법에 명시된 내각 통할 권한을 돌려주고 장관들은 받아쓰기 같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 개혁도 필수요소다.
국가 대개조는 훗날 박근혜 정부의 성공여부를 판가름 지을 중대한 잣대가 될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박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실은 신성하고 의견은 제멋대로일 뿐”이라는 실증주의 역사관을 빌지 않더라도 국가개조는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해석이 아니라 실제 국민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이번 6.4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전하고 싶은 진정한 메세지는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명령이 어떻게 이행되는지를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글/이동주 언론인·전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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