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된 김연경 사태 ‘팬들 눈으로 보라’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입력 2013.07.17 08:50
수정 2013.07.18 10:47
입력 2013.07.17 08:50
수정 2013.07.18 10:47
코트에 서게 하는 것 최우선에 놓고 해결방식 접근
‘선수=노예’ 국내 프로스포츠계 근본적 개선책 계기돼야
‘배구스타’ 김연경(25) 측과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을 둘러싸고 벌이는 원 소속 구단 흥국생명 측의 줄다리기가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김연경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상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연경은 흥국생명과 대한배구협회(KVA), 한국배구연맹(KOVO)에 5가지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흥국생명에는 "지난해 9월 7일 작성한 합의서를 무효로 하고, 김연경의 원 소속 구단(club of origin) 존재 여부를 KVA를 통해 국제배구연맹(FIVB)에 질의하라"고 요구했다. KVA 중재로 김연경과 흥국생명이 만나 작성한 9월 7일 합의서에는 '김연경은 흥국생명 소속을 토대로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기간은 2년으로 하되 이후 국내리그에 복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KOVO에는 임의탈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근거 규정을 밝혀달라고 요구하는 한편 KVA에는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을 요청한 이달 5일 질의서에 대해 답변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현 상황이 KVA의 불공정한 중재 때문이라고 주장, KVA에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또는 국내법에 따른 판단이 완성될 때까지 ‘임시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을 요청했다.
김연경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요구에 대한 모든 답변의 시한을 오는 25일까지로 못 박으면서 이번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다시는 V-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국가대표팀에서도 뛰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선수생활을 접겠다는 의미다.
이 같은 김연경 입장 표명에 대해 선수가 운동을 볼모로 줄다리기 하는 모양새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선수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규정을 만들어 놓고 선수를 노예 부리듯 하는 국내 프로 스포츠계의 문제가 근본적인 개선책을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쟁점은 김연경의 소속이다. 흥국생명 소속이냐 FA냐의 문제 바로 그것이다.처음 논란이 불거졌던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쟁점은 변함이 없고 분명하다. 좀 더해진 부분이 있다면 김연경 측과 흥국생명 측의 감정의 골이 더 깊어 졌다는 정도.
선수 측은 2012년 6월30일을 끝으로 흥국생명과의 계약이 만료돼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흥국생명은 FA자격을 얻기 위해 국내에서 6시즌 뛰어야 하지만 김연경은 2시즌 남아 여전히 소속 선수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문제로 김연경과 흥국생명이 대립하자 정치권과 체육계가 여자배구의 런던올림픽 4강 진출로 형성된 ‘좋은 분위기’ 속에서 사태 해결을 위해 모두 나섰지만 결과는 임시적인 권고에 그쳤다. 논란의 불씨가 남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논란의 불씨는 다시 1년 만에 다시 큰 불로 번졌다.
흥국생명은 1일 KOVO에 김연경에 대한 임의탈퇴를 요청하면서 '규정을 준수하고 성의 있는 사과를 한다면 김연경의 해외활동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김연경의 해외활동의 전제조건이 ‘사과’? 김연경의 선수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임의탈퇴’로 선수를 압박하면서 사과를 강요하는 듯한 이 같은 행동이 흥국생명이라는 구단 이미지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연경은 기자회견을 통해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선수생명을 끝낼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연경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김연경의 기자회견 내용은 마치 자신이 이길 때까지 내기를 하자고 조르는 어린 아이처럼 비쳐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각은 어떨까.
계약과 규정,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석 문제가 쟁점인 이번 사안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의문점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이번 사태의 결론이 팬들의 생각과 전혀 딴판인 방향으로 나온다면 팬들의 외면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김연경, 그의 에이전트, 흥국생명, KOVO, KVA 그 어느 쪽이 될 수 있다.
모든 팬들의 의견을 아우를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김연경이 코트 밖에서 배구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는 것. 김연경이 코트 위에서 뛰는 대신 소송 서류를 들고 법원을 들락거리는 장면이나 눈물을 흘리며 기자회견 하는 모습을 팬들은 더 이상 보고 싶어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서비스업계에는 ‘고객의 눈으로 보라’는 말이다. 김연경에게는 팬이 있다. 흥국생명에도 팬이 있다. 그리고 프로배구판 전체는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 따라서 팬들이 바라는 방향이 곧 선수나 구단, 연맹의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이번 사태를 대하는 모든 당사자들이 규정이나 계약조항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이 같은 팬들의 시각과 바람에서 사태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좀 더 창의적인 해결책 내지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한다면 흥국생명 측에서 ‘결국 김연경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말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문제를 바라보는 흥국생명의 시각과 팬들의 시각은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다.
흥국생명 권광영 단장은 지난 15일 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를 통해 “제도상으로는 6시즌을 뛰게 돼있다. 우리 구단 소속으로 4시즌을 뛰었고, 일본에서 2년, 터키에서 2시즌 해서 총 8시즌을 뛰었다”며 “국내 정규리그에 25% 이상 뛰었을 경우 1시즌으로 인정을 하는데, 김연경 선수는 국내에서 4시즌밖에 뛰지 않아 2시즌에 대한 권리는 흥국이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팬들의 시각에서는 “흥국생명이 김연경을 외국에서 뛰게 할 때 외국 구단들에게 김연경을 공짜로 임대해줬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결국, 흥국생명이 주장하는 것처럼 김연경이 흥국생명의 유니폼을 입고 뛴 시간이 FA 자격을 얻는데 부족할지는 몰라도 김연경이 흥국생명의 유니폼 대신 다른 외국팀의 유니폼을 입고 뛰던 기간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경기력 대신 김연경을 매개로 금전적 이익을 얻지 않았느냐는 물음이다. 1인칭 시점과 2인칭 시점, 그리고 관찰자인 3인칭 시점에서 바라볼 때 사안의 내용은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안을 대하는 모든 당사자들은 규정과 계약조항에만 돋보기를 들이댈 일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어떤 선례와 향후 한국 프로배구의 앞날에 지표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원칙을 마련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사태 해결에 나설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KVA는 김연경이 요구한 임시 국제 이적동의서를 발급, 김연경이 원하는 구단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한편으로 흥국생명과 김연경 측은 각자 위치에서 가능한 공식적인 활동을 통해 김연경의 소속 문제를 법적으로 확실하게 매듭짓는 과정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김연경 거취를 조정하거나 금전적 배상을 하는 등 필요한 후속 조치다.
팬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이번 사태 해결 과정의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은 김연경을 코트에 서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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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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