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계약 7년의 딜레마…어쩌다 케이팝 발목 잡는 ‘족쇄’됐나 [표준계약서 도입 16년①]
입력 2025.12.13 14:01
수정 2025.12.13 14:01
시대 변화에 따라 수정됐지만, 여전히 케이팝 산업 환경 반영 못해
“수익 낼만하면 ‘재계약 시즌’…단순 규제 대신 ‘계약 유연성’ 필요”
2009년, 그룹 동방신기의 일부 멤버가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제기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근간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당시 13년에 달했던 장기 계약 기간과 불투명한 수익 정산 문제는 ‘노예계약’이라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대중문화예술인과 기획사 간의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2009년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를 제정·공표했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계약 기간의 제한이었다. 공정위 표준약관 제3조 2항은 “계약기간은 7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하며, 7년이 넘는 경우 아티스트에게 계약 해지권을 부여했다. 이는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과도한 장기 계약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이후 ‘마의 7년’이라는 용어가 생겨날 정도로, 데뷔 7년 차에 해체하거나 재계약을 맺는 것이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표준계약서는 이후 시대 변화에 맞춰 몇 차례 수정을 거쳤다. 특히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연습생과 미성년자를 위한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 ‘연습생 계약 기간을 3년으로 원칙화하고, 데뷔가 무산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를 명문화했다. 그리고 지난 2024년 6월에는 ▲저작권·퍼블리시티권 등 지식재산권의 귀속 ▲매니지먼트 권한 및 예술인의 의무 ▲정산 및 수익분배 ▲탬퍼링(멤버 빼가기) 유인 축소와 관련한 내용들이 담긴 개정안을 고시했다.
문제는 과거 내수 시장 중심이었던 아이돌 산업이 이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고비용, 고위험 구조로 재편되면서 산업 환경이 달라졌음에도 표준전속계약서가 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5년 기준 4세대, 5세대 아이돌 그룹 하나를 론칭하여 흑자 전환(BEP) 시점까지 도달하는 데 드는 비용은 평균 100억 원을 상회한다. 글로벌 프로모션, 월드 투어, 고퀄리티 콘텐츠 제작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초기 투자 비용을 회수하고 수익을 내기 시작하는 시점이 과거 데뷔 2~3년 차에서 이제는 4~5년 차로 늦어지는 추세”라며 “그런데 계약 기간은 여전히 7년으로 묶여 있다 보니, 회사가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간은 고작 2~3년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이는 기획사로 하여금 신인 개발에 대한 보수적인 투자를 야기하거나, 데뷔 초부터 무리한 스케줄을 강요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한국음악연대 윤동환 본부장은 “과거에는 3년 정도 투자하고, 2년 동안 이를 회수하고, 남은 2년 동안 수익을 내는 구조가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중소기획사 관계자 역시 “신인 1팀 데뷔에 평균 30~50억 원이 소요되며, 이는 모두 기획사가 떠안는 선투자 리스크”라고 강조했다.
윤 본부장은 “투자금이 너무 커져서 원금을 회수하는 데만 3년 넘게 걸린다. 7년이라는 계약 기간 안에 의미 있는 수익 구조를 만드는 것은 이제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고 토로했다. 결국 기획사 입장에서는 수익 구간에 진입하자마자 재계약 시즌이 도래하는 구조적 모순에 빠진 것이다.
반면, 아티스트에게 7년은 정반대의 의미로 ‘애매한’ 시간이다. 급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7년이라는 시간은 한 아티스트의 이미지가 소모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다. 최근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개인 활동과 그룹 활동을 분리하거나, 계약 기간 만료 전이라도 전속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은 이 ‘시간의 딜레마’를 방증한다.
최근 출범한 아이돌 노조 방민수 위원장은 “현재 표준계약서상 7년인 기간을 5년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돌로서의 수명과 경험치를 고려할 때, 기획사와 타협할 수 있는 최대치가 5년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모순이 소위 ‘방치형 아이돌’이라는 문제를 낳는다고도 말했다. 방 위원장은 “99%의 무명 아이돌들은 회사가 투자금 회수를 위해 무분별하게 지역 축제 등을 돌리거나, 아예 방치해버린다”며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역주행’ 가능성 때문에 계약 해지는 해주지 않아 다른 경제 활동도 못 하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기획사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장기 계약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핵심은 ‘유연성’이다. 한국매니지먼트연합(이하 한매연) 이남경 국장은 “기획사라고 무조건 긴 계약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높은 산업 특성상, 적자가 지속되는 그룹을 7년이나 의무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회사에 막대한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 국장은 “수익이 나는 아티스트와는 오래 가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유연하게 정리하고 싶은 것이 회사의 니즈(Needs)”라며, 현행 계약서의 경직성을 지적했다.
중소 기획사의 경우 재계약률이 극히 낮아지면서, 1~2년 활동 후 팀이 와해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윤 본부장은 “주목받지 못한 멤버는 팀 활동 종료 후 개인 활동이 어렵다는 것을 학습했기에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7년이라는 숫자는 대형 기획사에게는 ‘수익 창출의 제한선’으로, 무명 아이돌에게는 ‘기회의 박탈 기간’으로 작용하며 양측 모두를 옥죄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