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는 끝났어도, 특권은 남았다…대물림되는 '반란의 유산' [데스크 칼럼]
입력 2025.12.12 07:00
수정 2025.12.12 08:08
▲ 이재명 대통령의 "국가폭력은 나치 전범처럼 영원히 형사처벌하고, 필요하다면 상속인의 재산 범위 안에서도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발언이 정치적 논란을 부른 이유는 그가 이 나라가 오랫동안 회피해온 질문을 다시 꺼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스스로 책임의 끝을 정할 수 있는가."
▲ 이 질문을 가장 극적으로 부정한 세력이 바로 12·12 군사반란의 주역들이었다. 46년 전 오늘, 총칼로 권력을 빼앗고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은 반성이나 단죄가 아닌 '자기 종결'로 사건을 봉합하려 했다.
"잊자", "과거는 이미 평가됐다"는 그들의 선언은 곧 국가폭력의 책임을 가해자 본인이 스스로 매듭짓는 구조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 자기 종결의 결과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삶을 잔혹할 만큼 대비시켰다. 합법적 지휘 체계를 지키려 했던 장태완, 정병주, 김오랑 등은 파면·구금·죽음의 길을 걸었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법정이 아닌 일상 속에서, 처벌이 아닌 관용 속에서 자기들이 선택한 속도로 노년을 누렸다.
전두환은 끝내 5·18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회고록에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정당하고 불가피한 조치'라며 스스로 면죄부를 줬다.
▲ 노태우는 사후 국가장이라는 최고 수준의 예우까지 받았다.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조성된 묘역은 1810㎡(약 550평)에 달해, 서울 현충원에 안장된 역대 대통령 5명의 묘역을 모두 합친 면적(1690.5㎡)을 웃돈다. 가해자의 책임은 희미해지고, 상징적 권위는 오히려 복원되는 역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노태우 일가가 어린이 도서관에 배포한 '만화로 읽는 인물 이야기, 대통령 노태우'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 책은 12·12와 5·18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은 채 노태우의 경제·외교·문화·안보 등의 치적을 두루 자랑한다. 하지만 노태우는 12·12 군사 반란, 광주학살의 주범이다.
대통령에 올라 천문학적 뇌물까지 챙기며 호의호식했다. 아무리 과를 떠나 공을 인정한다 해도 결코 미화의 대상은 될 수 없다. 죄를 지은 자가 "나는 이미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용서가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을 지워버리는 폭력이다.
▲ 12·12 이후 한국은 국가폭력의 주체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 형사적 책임도, 경제적 책임도, 역사적 책임도 온전히 묻지 못했다. 가해자가 정한 '끝'이 너무 오랫동안 통용됐다. 그 결과,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선 '900억대 비자금' 정황이 튀어나왔고,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은 이재명 정부의 첫 주중 대사로 임명됐다. 군사반란의 폭력은 끝났어도, 그로부터 비롯된 이익과 지위는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의 고통을 기준으로 역사적 책임을 매길 것인가."
이것이 지금 우리가 다시 마주한 질문이다.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한, 12·12는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나라의 제도와 특권 구조 속에서 여전히 계속되는 역사다.
*12·12란? 12·12 군사반란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군 총책임자였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 체포하고 군부를 장악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