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철이 기억한 2011년 한일전 참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축구회관 = 김평호 기자 (kimrard16@dailian.co.kr)
입력 2025.01.15 08:23
수정 2025.01.15 09:43

한국 축구 역대 한일전 굴욕 중 ‘삿포로 참사’ 겪어

유럽 진출 이후 첫 A매치, 살인적 항공 경유 일정에 최악 컨디션

‘필사즉생’의 각오로 나선 런던올림픽 한일전 승리로 최초 동메달 주역

은퇴 기자회견에 나선 구자철. ⓒ 한국프로축구연맹

한국 남자 축구는 최근 들어 일본에 두 차례 연속 0-3 패배 굴욕을 겪으며 체면을 구기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 시절이던 2021년 3월 원정서 열린 일본과 친선 경기서 0-3으로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고, 이듬해 7월 일본 나고야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서도 또 다시 0-3으로 완패했다.


동아시안컵의 경우 유럽파가 나서지 않았지만 양 팀의 유럽파가 합류해 겨룬 2021년 친선전 패배는 ‘요코하마 참사’로 기억될 정도로 아직까지 한국 축구의 흑역사로 남아 있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축구대표팀 레전드 구자철 또한 한국 축구 역사에 흔치 않은 한일전 참사를 겪은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 76경기에 나서 19골을 기록한 구자철은 지난 2011년 8월 삿포로에서 열린 일본과의 친선경기에 나섰다가 0-3이라는 굴욕적인 패배를 겪었다.


국민적 정서를 고려했을 때 세 골 차 완패는 납득할 수 없었고, ‘삿포로 참사’로 기억되는 이 경기는 당시 팀을 이끌었던 조광래 감독이 경질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구자철은 풀타임 활약했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한일전 패배는 그의 축구 인생에서 여전히 아픔으로 남아 있다.


국가대표로 활약한 구자철. ⓒ 데일리안DB

14일 은퇴 기자회견에 나선 구자철은 “유럽에 진출하고 첫 번째 A매치로 일본서 열린 원정 경기에 나섰다. 당시 볼프스부르크에서 하노버, 다시 프랑스를 거쳐 인천에 들어온 뒤 삿포로에는 경기 이틀 전에 도착했다”면서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몸이 ‘이걸 어떻게 하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결과가 0-3으로 패했는데 국민들, 대선배님들부터 이어온 ‘한일전은 지면 안된다’는 정신을 갖고 있었는데 지게 돼 부끄러웠다”고 돌아봤다.


축구 인생에서는 씻을 수 없는 상처였지만 당시 한일전 패배는 구자철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당시 구자철은 한일전 패배 이후 ‘다시는 지지 않겠다, 지면 축구화를 벗겠다’고 다짐했고, 그로부터 1년 뒤에 열린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후반 쐐기골을 성공시키며 한국 축구가 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획득하는데 견인했다.


런던올림픽 동메달 주역 구자철. ⓒ 데일리안DB

제대로 이를 갈고 나온 주장 구자철은 일본 선수를 태클로 넘어뜨린 뒤 반칙을 선언한 주심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와이, 와이”를 외치며 불타는 승부욕을 보여주기도 했다.


런던올림픽의 기억에 대해 “다음 한일전 때 지면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필사즉생’의 마음으로 경기에 들어갔다. 그 경기는 내가 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앞을 가로막으면 용서하지 않겠다란 생각을 많이 했다”며 “경기 후 가장 먼저 했던 이야기가 1년 전 0-3으로 패했던 경기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 패배를 통해 승리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필사즉생의 각오로 한일전 굴욕을 씻은 구자철은 “우리나라 최초로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멤버 중 한 명으로 기억되면 행복할 것 같다”며 “그래도 2012년도에는 즐거움을 드렸던 것 같다. 즐거움을 드린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는 바람을 마지막으로 전했다.

김평호 기자 (kimrard16@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