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클린스만호가 낳은 충격의 키워드 ‘이강인 하극상’ [2024 스포츠 이슈①]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입력 2024.12.23 08:00
수정 2024.12.23 08:04

대회 후 이강인-손흥민 물리적 충돌 사실 드러나 한국 사회에 큰 충격

클린스만, 경질 당시나 후에도 아시안컵 실패 원인을 둘의 충돌 탓으로


위르겐 클린스만-이강인.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이른바 ‘이강인 하극상’은 2024년 대한민국 축구계를 강타한 충격적인 키워드다.


지난 2월 역대 최고의 전력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64년 만의 우승을 노렸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대회 내내 졸전을 거듭한 끝에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요르단에 0-2 패, 4강 탈락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재택근무’ ‘무전술’ ‘해줘 축구’ 등 대회 전부터 각종 외유 논란과 무능력으로 도마에 올랐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더욱 거세진 경질 압박에 시달렸다.


더 큰 충격은 대표팀 전력의 핵이자 상징으로 불리는 ‘캡틴’ 손흥민(토트넘)을 향한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의 하극상이었다. 아시안컵 4강 요르단전 전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손흥민과 이강인의 물리적 충돌 사실이 뒤늦게 전해져 큰 파장이 일었다.


일부 동료들과 탁구를 치려다 이를 제지한 손흥민과 물리적으로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손흥민의 오른 손가락 중지가 탈구됐다. 대표팀 내 선수 간 충돌이 없었던 일은 아니지만, 막내급인 이강인이 주장에게 물리적으로 대든 '하극상 사건'은 축구팬들은 물론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가했다.


영국 더 선 보도로 처음 알려진 해당 논란은 대한축구협회(KFA)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인정하면서 급속도로 논란이 커졌고, 대표팀 주장을 향한 이강인의 행동은 국민적인 비판을 받았다.


경질 위기에 몰린 클린스만 전 감독은 아시안컵 실패를 손흥민-이강인 몸싸움 탓으로 돌렸다. 클린스만은 전력강화위에서 가진 화상회의에서도 “선수단 불화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다. 전술 부재란 비판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대한축구협회은 결국 경질을 선택했다.


클린스만 감독 후임을 찾는 과정은 혼란과 잡음의 연속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차기 사령탑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고, 3월과 6월 FIFA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4경기에서 2명의 임시 감독을 내세웠다. 축구협회가 헛발질하는 동안, 월드컵 16강까지 진출했던 한국 축구는 바닥까지 추락했다. 손흥민과 이강인의 충돌이 알려져 세계적인 망신을 당했고, 경질 과정에서 클린스만에게 거액의 위약금을 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수들의 노력으로 ‘물리적 충돌’이 매듭을 지었다. 이강인은 손흥민을 직접 찾아가 사과했고, 대표팀 소집 직후 미디어를 통해 팬들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손흥민도 이강인을 용서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이후 한국 축구는 하극상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지난 6월 태국전에서 손흥민-이강인이 합작골을 넣은 뒤 환하게 웃으며 포옹한 둘의 모습은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손흥민-이강인.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그러나 마무리되는 듯한 논란은 뜻하지 않게 클린스만이 끄집어 냈다.


경질 후에도 클린스만은 각종 방송에 출연해 “파리에서 뛰는 젊은 선수(이강인)가 토트넘의 주장인 나이 많은 선수(손흥민)에게 무례한 언행을 했다”며 “그것을 마음에 담아둔 둘이 물리적인 충돌을 했다. 젊은 선수가 손흥민의 손가락을 탈골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전날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서 ‘팀 정신’이 사라졌다. 코칭스태프 모두 그것(물리적 충돌)을 믿을 수 없었다. 이튿날도 대화했지만 모두 충격을 받아 더 이상 ‘함께’가 아니라고 느꼈다”고 전했다. 둘의 갈등을 아시안컵 우승에 실패한 핑계로 삼는 발언이다.


한국 대표팀 감독직 경질 배경을 분석하는 자리에서도 클린스만 감독은 둘의 충돌을 또 언급했다. 팬들의 눈살은 찌푸릴 수밖에 없다. 클린스만 전 감독은 문제를 선수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마저 보였다. 재임 기간 재택·외유 논란과 전술적인 무능 등 비판 여론이 거센 감독이었다. 선수들 간 충돌 역시 사령탑으로서 선수단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 역시 크다. 정작 선수들의 갈등을 자신을 위한 도구로만 쓰는 모양새다.


월드컵 전 벤투 감독과 재계약에 실패한 축구협회는 정몽규 회장 주도 아래 새 사령탑으로 수년간 현장을 떠나있던 클린스만 전 감독을 데려와 앉혔고, 결과적으로 이때부터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독일과 미국 대표팀에서 실패한 감독으로 낙인됐던 클린스만은 한국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감독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어떤 절차를 거쳐 한때 대한민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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