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發 통화정책 완화 '찬물'…고심 커진 한은의 셈법
입력 2024.12.20 06:00
수정 2024.12.20 06:00
연준 금리 인하 속도 조절 시사에
환율 1450원대까지 오르며 '발목'
경기 부진과 강달러 사이 '줄타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또 다시 내렸지만, 내년 추가 인하엔 속도 조절에 나서겠다며 통화정책 완화 기조에 찬물을 끼얹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탄핵 정국 영향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있고 트럼프발 보호무역 리스크가 존재하지만, 한국은행도 섣불리 기준금리를 내릴 수 없게 된 분위기다.
원·달러 환율마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50원을 돌파한 만큼 한은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 연준은 18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내렸다. 지난 9월 4년 6개월만에 금리를 내린 이후 이후 3번 연속 인하다. 연준은 지난 9월 0.50%p 내리는 ‘빅컷’을 단행한 데 이어 지난 11월에도 기준 금리를 0.25%p 내렸다.
동시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내년 추가 인하에 속도 조절을 시사하는 '매파적' 발언을 덧붙였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전망이 다시 높아짐에 따라 금리 전망 중간값도 다소 높아졌다"면서 "인플레이션이 더 강해지면 금리 인하 속도를 더 늦출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가 상당히 덜 제약적"이라며 "최근 석 달에 걸친 금리 인하 조치로 인해 앞으로 통화정책 결정을 더 신중하게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내렸지만 내년에는 금리 인하가 당초 전망보다 느리게 진행될 가능성을 언급한 거다.
연준이 향후 금리 수준 전망을 표시한 점도표를 보면 연준 위원들은 내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로 3.9%를 제시했다. 기존 9월 전망치인 3.4%보다 0.5%p 높아진 것으로, 4.25~4.50%인 현재 금리 수준을 고려하면 내년에 당초 예상한 네 번이 아니라 두 번 정도만 더 내리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최근 한은에 대한 기준금리 인하 압박이 커졌다는 점이다. 트럼프발 보호무역에 '탄핵 정국'까지 겹치면서 경기가 침체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최대한 빨리 인하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임시 금통위는 고려치 않고 있다"며 선을 그었지만 여전히 압박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실제 한은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 여력 자체는 커진 상황이다. 이번 연준의 금리 인하로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는 기존 1.75%p에서 1.50%p로 다시 좁혀져서다. 금리 차이가 줄면 외국인 자금 유출과 원·달러 환율 상승 압박 수위도 줄어든다.
그러나 한은의 발목을 잡는 건 치솟는 환율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50원을 넘어섰다. 파월 의장의 매파적 발언으로 달러화지수가 강세를 보이면서다. 강달러가 유지되면서 환율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한은이 기준금리까지 빠르게 낮추면 환율이 더 뛸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연준의 내년 금리 인하가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오히려 내년 1월이 한은이 금리 인하에 나설 적기라는 의견도 나온다. 고환율 역시 다른 나라 통화도 약세 압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11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 한 금통위원은 "높은 환율 변동성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은 대체로 감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경기부진의 심화로 기준금리 인하 필요성이 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고환율 등 기준금리 인하에 따르는 댓가를 고려 하면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리는 게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