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수인 줄 알았다"…이웃에 빙초산 건네 숨지게 한 시각장애인, 집행유예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입력 2024.10.25 09:23 수정 2024.10.25 09:23

재판부 "피고인, 내용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피해자 사망하는 중대한 결과 발생"

"피해자, 술 취한 상태서 빙초산 확인 없이 마셔…유족 처벌 불원하는 점 등 고려"

ⓒ연합뉴스

빙초산을 음료수로 착각해 이웃에게 마시게 해 숨지게 한 80대 시각장애인이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울산지법 형사4단독 정인영 부장판사는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금고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이날 밝혔다.


시각장애 1급인 A씨는 지난해 9월 울산 자택 인근 평상에서 이웃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70대 B씨와 C씨 목소리가 들리자 집에서 비타민 음료수를 건넸다. 두 사람은 이를 받아마셨는데 B씨는 별다른 이상이 없던 반면, C씨는 곧바로 속이 답답하다고 호소하면서 화장실로 가 구토를 했다.


옆에서 보던 다른 이웃이 C씨가 마셨던 음료수병을 들고 근처 약국을 찾아가 문의했다. 병에는 '식용 빙초산'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A씨가 빙초산을 비타민 음료수로 착각한 것이다.


C 씨는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받던 중 사망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 측은 시각장애인으로서 문자를 볼 수 없고, 색깔을 구별할 수도 없으며 눈앞에 움직임이 없으면 사물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과실이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가 시각장애인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음식물을 건넬 때 독극물은 아닌지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즉, 시력이 나빠 구분할 수 없다면 주변 사람에게 음료수병이 맞는지 물어보고 확인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A씨가 B씨에게 건넨 비타민 음료수병은 매끈하지만, C씨에게 건넨 빙초산 병은 주름이 있어 A씨가 촉감으로라도 서로 다른 병인 것을 구분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내용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피해자가 사망하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다"며 "다만,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신이 받은 병의 내용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마신 점, 유족들과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나이 등을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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