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는 왜 현대차와 '모터스포츠' 손 잡았을까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입력 2024.10.15 06:00 수정 2024.10.15 06:00

현대차, 토요타와 함께 이달 27일 모터스포츠 개최

전례없는 양사 최초 모터스포츠 협력… 왜?

전기차 목마른 토요타, 수소 확대 간절한 현대차

오는 27일 '현대 N 페스티벌 x 토요타 가주레이싱 페스티벌'에 출전할 현대차, 토요타의 고성능 모델들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가 6년 전부터 개최 중인 모터스포츠 행사 '현대 N 페스티벌'에 토요타가 발을 들인다. 전세계에서 차를 가장 많이 판매하는 업체이자, 모터스포츠로도 글로벌 무대에서 일찌감치 인정받은 토요타가 국내 연간 행사 수준인 현대차의 레이싱에 왜 관심을 뒀을까.


글로벌 '톱3' 업체로 급속히 떠오른 현대차를 더 이상 후발주자로 생각지 않는 토요타의 태도 변화가 읽힌다. 특히 모터스포츠에서의 협업은 토요타에 존재하지 않는 현대차의 '고성능 전기차'를 벤치마킹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현대차로선 글로벌 주요 모터스포츠 강자와의 협력만으로도 N페스티벌 인지도를 높일 수 있고, 최근 힘주고 있는 '수소'와 관련한 협력 제안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토요타는 오는 27일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현대 N x 토요타 가주레이싱 페스티벌'을 연다. 양 사가 협업해 함께 개최하는 것으로, 둘 다 자사 모터스포츠 경기를 다른 완성차 업체와 협력하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아키오 토요타 회장도 한 자리에 참석한다. 두 총수는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 차량과 토요타 고성능 브랜드 'GR'의 모델들이 같은 공간에서 달리는 모습을 직접 지켜볼 예정이다.


겉으로는 전세계 시장에서 첫번째, 세번째로 차를 많이파는 글로벌 업체 간의 협업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많은 의문점이 숨어있다. 2007년 출범해 르망 24시, WRC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모터스포츠 경기에서 오랜 기간 우승을 휩쓸었던 토요타 가주레이싱이 현대차의 안방 경기에 '행차'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출범한 '현대 N 페스티벌'은 토요타 가주레이싱과 달리 글로벌 시장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경기다. 사실상 그간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국산차의 고성능을 자랑하는 '안방 경기'였던 셈이다. 글로벌 모터스포츠 시장에서의 인지도로 보면 토요타가 굳이 현대차와 손잡을 이유가 없었다.


토요타의 예상 밖 행보에는 불확실한 글로벌 시장 환경에서 비롯된 위기감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터스포츠만 보더라도 토요타의 성적은 과거 르망 24시에서 5연승을 거뒀던 영광에 멈춰있고, 최근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현대차의 경우 최근 WRC에서 연속으로 우승컵을 따내면서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게다가 전기차에 있어선 현대차가 토요타보다 앞서있단 점이 토요타에겐 위기감을 부르는 최대 요소다. 현대차는 고성능 전기차 모델인 '아이오닉 5 N'을 앞세워 국제 모터스포츠 경기에서 기록을 쌓고 있는 반면, 토요타의 고성능 브랜드 GR은 전부 내연기관차로 이뤄져있다. 토요타는 전기차 전환을 미루고, 현대차는 전기차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양산차 전략이 모터스포츠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전기차 출시는 소극적이지만 토요타가 전기차를 준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토요타는 전기차 배터리 개발에 수조원의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이미 미국 시장에선 전기차 판매로 2위에 올라있고, 고성능 전기차로 모터스포츠 경기에서 우승까지 거머쥔 현대차를 유심히 들여볼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현대차 입장에서도 이번 협력으로 얻을 것이 훨씬 많다. 모터스포츠 시장 후발주자로서 글로벌 시장에 알려지지 않았던 '현대 N페스티벌'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토요타 가주레이싱과의 협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하기 충분한 주제고, 글로벌 주요 업체 회장 간의 회동에도 전세계 업계와 소비자들의 시선이 집중될 법 하다.


토요타가 하이브리드차, 수소차 등 비슷한 사업 전략을 펴고 있다는 점도 현대차에겐 매력적이다. 현대차는 올 초 수소차에 이어 수소를 생산하고 활용하는 '수소 밸류체인' 사업을 펴겠다고 발표했지만, 경쟁 플레이어가 없는 황무지 시장이라는 한계를 안고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토요타가 BMW와 수소 협력을 맺으면서 수소차 저변 확대 의지를 본격적으로 내비쳤다.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해 생존해온 내연기관 시대와 달리 전기차, 수소차 시대가 열리면서 글로벌 완성차간 합종연횡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현대차도 창사 최초로 미국 완성차 업체인 GM과 전방위적 협력을 맺은 만큼, 토요타와 이번 협력 이후 전기차 배터리나 수소차 분야에서 동맹을 발표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업계 관계자는 "토요타의 과거 명성을 생각하면 현대차와 모터스포츠 협력을 맺을 이유가 전혀 없지만, 전기차 전환으로 자동차 시장이 과거와 달라졌고 업체 혼자서는 모든걸 다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며 "이미 토요타, 현대차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동맹을 발표하면서 혼자 살아남기보다는 함께 올라가는 방법을 택했고, 이번 모터스포츠 협력도 동맹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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