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이 '보통의 가족'으로 던지는 질문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4.10.15 08:51 수정 2024.10.15 08:51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주연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 한국 멜로 영화를 대표주자 허진호 감독이 신작 '보통의 가족'으로 첫 서스펜스 장르를 선보인다. 장르는 달라졌지만 아름다운 영상미와 촘촘한 플롯, 캐릭터들의 색깔을 통해 이야기를 개연성 있게 전개시키는 허진호 감독의 장기는 여전했다.


ⓒ㈜하이브미디어코프·㈜마인드마크 제공

'보통의 가족'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로,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했다. 원작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100만 부 이상 판매됐으며 리메이크만 네 번째다.


원작이 탄탄하고 리메이크가 여러 차례 됐음에도 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유는 그 동안 느껴왔던 사회의 부조리함, 문제 등을 향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영화는 두 형제 부부가 아이들의 범죄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를 통해 '당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이 무너졌을 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일관성 있게 흐른다.


"처음에는 김원국 대표가 읽어보라고 대본을 줬어요. 읽고서 재미는 있는데 '이걸 왜 나한테 줬을까' 생각했죠. 그 동안 제가 만들었던 이야기들과는 결이 달랐으니까요. 그래서 과거 리메이크 됐던 영화들을 찾아보고 원작 소설을 읽어봤습니다. 영화들이 잘 만들어졌더라고요. 그런 경우는 보통 감독들은 잘 안 하려고 해요. 그만큼 못 만들 것 같기도 하고 '이걸 또 만들어?'라는 생각이 들게 되니까요. 그런데 '보통의 가족'에는 제가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의 양면적인 부분을 다뤄져 있어 끌리더라고요. 또 하나는 제가 사회 문제에 대해 영화에서는 일부러 배제시킬 정도로 등장시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용기를 얻었죠."


앞서 만들어졌던 영화들과의 변별력은 한국 사회, 정서를 녹여내면서 로컬 색깔을 조금 더 짙게 만들었다. 공기처럼 접하는 사건, 사고 뉴스를 보며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왔지만 그 사건의 주인공이 나, 혹은 지인이 될 수 있는 상황을 통해 관객이 감정적으로 깊이 연결되도록 연출했다.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 가족, 교육 적인 부분을 녹여내려 했어요. 아이 대학 입시를 위해 이사를 가는 거나, 노모를 모시고 사는 아들 부부, 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보복운전 등 한국에서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왔어요. 시작이 보복운전으로 사람을 치는 것 부터 시작되잖아요. 사실 뉴스로 봤을 때 가해자를 우리랑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어요? 우리와 전혀 관계 없는 동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뉴스를 접할 겁니다. 그런데 극중 보통의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캐릭터를 통해 접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걸 표현하는 데 염두에 뒀습니다."


'보통의 가족'의 포스터는 재완(설경구 분), 재규(장동건 분), 연경(김희애 분), 지수(수현 분)이 식탁을 가운데로 두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로 위치한 '보통의 가족'이란 제목이 평범했던 이들 가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졌는지 유추하게 만든다. 영화의 첫 인상인 포스터에 등장한 이 형제 부부는 세 차례의 저녁 식사를 통해 벌어진 사건 앞에서 설전을 주고 받는다. 평범해 보였던 가족 식사 장면들은 결국 이들 관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 순간으로 기능한다.


"첫번 째와 세 번째 장면은 같이 찍었어요. 두 번째는 세트에서 찍었고요. 초중반에는 아이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걸 처음 인식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이전까지 인물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어요. 여기에 유머가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두 번째 식사 장면은 사건을 알고 나서, 이들이 이제까지 살아왔던 신념, 윤리적인 방식을 가지고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하려는 지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두 번째 식사 장면은 진지하기 보다는 소동극 같이 그려보려고 했어요. 이제 세 번째 식사 장면에서는 네 명의 부모의 본모습이 나오면서 감정이 부딪치게 돼요. 아이들에 대한 또 다른 사실도 알게 되고요. 그래서 정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집중했습니다."


ⓒ㈜하이브미디어코프·㈜마인드마크 제공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화려한 액션 장면이나 CG가 투입된 볼거리 등 물량 공세가 아닌, 네 명의 인물들이 캐릭터 변화가 서서히 드러나며 긴장감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관객의 몰입을 이끈다. 사건을 마주하며 갈등이 점차 깊어지고, 각자의 가치관과 숨겨진 감정들이 부딪히면서 영화는 감정적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허 감독은 지루하지 않도록 염두에 두고 연출했다.


"초중반은 아이들의 범죄나 인물들의 설명으로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겠더라고요. 유머를 그 부분에 더 집어넣은 이유입니다. 워낙 제가 블랙코미디 같은 유머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이 영화가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보니 후반에서는 관객과의 접점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제 나름 지루하지 않고 어떤 장면이 나올 지 예측할 수 없게 이야기를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관객들이 '보통의 가족'을 지루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했죠."


마지막 식사 장면에서는 재완과 재규 모두 처음 가져갔던 생각과 대처를 뒤집고자 한다. 허 감독은 영화적 설정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재완이 변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재완은 자신과 자식의 미래를 위해 가장 실리적인 선택을 할 뿐이죠. 만약 그냥 범죄를 넘겼을 때 재완이 편할 수 있었을까요? 재완에게도 최소한의 선이라는 게 있을 텐데 그 선을 넘어갔을 때 분명 고민하게 될 겁니다. 재규도 사실 처음부터 신고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 거고요. 형제들의 모습을 통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라고 관객들도 고민하게 될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실리적인 판단도 못하고 정말 사회가 엉망으로 가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보통의 가족'의 또 한 명의 주인공을 꼽으라고 하면 음악이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음악을 통해 우아하게 긴장감과 인물들의 감정을 함께 조율한다. 2001년 개봉한 '봄날은 간다'와 함께 꾸준히 허진호 감독과 손발을 맞춰 온 조성우 음악감독이 이번에도 함께했다.


"저와 오랜 시간 함께 한 친구이자 철학박사예요. 둘 다 서스펜스 장르 해보지 않아 고민이 있었어요. 우리가 뭘 더 가져가야 할지 대화를 많이 했죠. 저는 지루하지 않게, 흥미롭게 관객들이 쫓아갈 수 있으면서도 서정적인 면도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영화제에 갈 때마다 음악에 대한 호평이 유독 많았어요. 음악의 몫이 굉장히 큰 영화였어요."


'보통의 가족'은 앞서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부터 제26회 우디네극동영화제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까지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 19회를 초청 받으며 호평을 받았다. 허 감독은 이 흐름이 흥행에도 이어질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잘 만들었어도 관객들이 보지 못한다면 '보통의 가족'과 같은 영화들이 설 자리가 줄 수 밖에 없는 한국 영화계 현실을 우려해서다.


"영화 장르가 조금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이게 잘되면 또 이런 장르의 영화들이 계속 제작이 될 텐데 흥행하지 못하면 '평 좋아봤자 관객들이 안 본다'라는 식으로 나오게 될 테니까요. 장르적인 재미와 함께 인간에 대한 본성을 생각할 부분이 많은 영화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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