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의제' 평행선 달리는데…한동훈, 더 돋보이는 이유는 [정국 기상대]
입력 2024.08.28 06:00
수정 2024.08.28 06:00
"여야 대표 회담, 추석 전 개최" 뜻 모았지만
'의제 갈등' 지속…野선 '회담 무용론' 표출
韓, '금투세' 이어 껄끄러운 '의정갈등 해법'
꺼내면서 정면승부 선택…이재명 압박감↑
여야가 추석 전에 개최하자는 대표 회담 추진이 난항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테이블에 올리고 싶어하는 의제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다. 정쟁 유발 의제를 중심으로 회담을 이끌어가길 원하는 민주당 내부에선 '회담 무용론'까지 불거지며 점점 발을 빼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한동훈 대표는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힘을 싣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각오를 하며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의정갈등 문제를 회담 의제로 내세우면서 이재명 대표에 한발 앞서게 됐단 정치권의 분석이 나온다.
한동훈 대표는 27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거래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회담을) 미룰 이유는 없다. (대표 회담은) 국민을 위해 새롭고 좋은 정치, 투명한 정치를 하자고 의기투합해 만들어진 절차"라며 "정치를 복원하자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여야 대표 회담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한 대표 본인이 직접 표명한 셈이다.
이날 한 대표가 거래소를 찾은 이유는 '국내 자본시장과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현장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금투세 폐지를 강조해온 한 대표가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선택한 현장 행보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서 한 대표는 "당과 나는 이 문제(금투세 폐지)에 적극 공감한다"며 "곧 있을 여야 대표 회담 주제로 올려서 결론을 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한 대표는 금투세 폐지가 1400만 개인투자자를 위한 정책일 뿐 아니라,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주식투자에 나서는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금투세 폐지 또는 유예에 뚜렷한 입장을 내지 못하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특히 금투세 문제를 대표 회담의 의제로 설정하겠다는 의사를 직접 피력한 것은 회담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그에 비해 민주당은 지속해서 한 대표를 향해 채상병 특검법을 주요 의제로 설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한 대표의 '제3자 추천 특검안'에 대한 논의를 핵심 의제로 올리길 요구하는 모양새다. 아울러 이재명 대표가 총선 당시 꺼내든 전국민 25만원 살포법(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법) 역시 민주당이 대표 회담 테이블에 꼭 올리고 싶어하는 주제다.
이처럼 의제에 대한 여야 간 셈법이 다른 만큼 회담을 대하는 태도 역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지난 26일 박정하 국민의힘 당대표 비서실장은 이해식 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과의 실무 회담에서 추석 전 회담을 열자는데 합의했다는 사실을 밝힌 뒤 "국민의힘은 생중계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민주당이 요구하는 일부 공개 방식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대표 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다면 앞서 한 대표가 요구했던 생중계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만날 수 있단 입장을 내놓으며 한 발 양보한 셈이다.
반면 이 실장은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채해병 특검법과 민생회복지원금, 지구당 부활을 제안했고 국민의힘은 정쟁 중단, 정치 개혁, 민생 회복 등 세 가지를 제안했는데 너무 간극이 크다"며 "어떤 면에서는 (양당 대표 회담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도 들고 꼭 해야하나 이런 생각도 든다"고 언급했다.
민주당의 노골적인 의제 요구 압박은 이날 더 심화됐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해 "(의제 조율이 되지 않는다면) 서로 입장 차이라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한 대표가) 만나자고 할지 모르겠지만 실무적인 입장에선 그런 대표회담은 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본인들이 원하는 의제를 중심으로 회담이 설정되지 않을 경우 굳이 대표 간 회동을 통해 이 대표의 이미지를 소비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야권이 의제 설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원하는 의제로 회담을 주도하지 못할 경우 이재명 대표가 얻을 것이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서다. 이 대표는 과반 의석을 점유한 제1야당의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대통령 거부권에 가로막혀 입법능력을 증명하지 못했다. 행정적인 능력은 증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이 대표 입장에선 정쟁을 길게 이끌어갈 수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정부·여당을 압박해야만 돋보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이 대표와 민주당 입장에선 회담에서 정쟁을 유발할 의제들을 꼭 올리려 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해 국민의힘 내부에선 오히려 한동훈 대표가 주도권을 쥘 기회를 잡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대표가 직접 회담 성사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쳤고, 생중계란 형식을 양보할 수 있다는 뜻까지 밝힌 상황에서 회담을 거부한 부담감은 민주당이 지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민주당이 회담에서 얘기하고 싶어 하는 건 어디까지나 대통령 탄핵 빌드업을 위한 재료들만 얽혀있는 정쟁 유발용 주제들이 아니냐"라며 "이걸 민생 관련 얘기로 돌려서 진행하자는 게 한 대표의 주장인데, 이 주장이 의제라는 문제로 계속 벽에 막히게 되면 국민들은 이 대표와 민주당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 대표가 당정갈등 우려까지 감수하면서 의정갈등 해결에 직접 뛰어든 점 역시 이 대표와의 회담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실·정부와 직접 대립각까지 세워 갈등 해결에 나서고 있는데,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제1야당 대표가 이를 넘어서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할 경우 민생에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어서다.
한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의료 공백 해소와 각종 민생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여야 대표 회담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며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해결책을 마련해 국민 기대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표의 화답을 기다리겠다"고 이 대표를 직접 압박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시점에 한 대표가 대통령과 각까지 세워가면서 굳이 의정갈등 문제를 건드린 건 해결사로의 면모를 강조하기 위함"이라며 "동시에 대표 취임 후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이 대표를 압박하기에도 의정갈등은 최고의 카드다. 한 대표에게 있어 의정갈등 해법은 꽃놀이패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