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장마에 ‘금값’된 배추…김치값 2년 주기 인상 재현될까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4.08.02 07:24
수정 2024.08.02 08:23

이상기후로 배추‧고추‧마늘 가격 급등

업계 “당장 문제 없고, 제품 인상 계획 NO”

“올해도 김포족‧소비자 부담 증가할 것”

서울 시내의 한 마트에서 소비자가 배추를 고르고 있다.ⓒ뉴시스

예고 없이 강한 비를 쏟아내는 ‘도깨비 장마’가 이어지면서 배추, 상추, 깻잎 등 잎채소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당분간 이런 날씨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2년 주기 ‘김치 가격 인상’ 재현 가능성이 제기된다.


2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배추 소매가격은 지난달 26일 기준 포기당 5556원으로 전주보다 9.1% 올랐다. 이는 1년 전과 비교해도 30.6% 비쌌다. 무는 1개에 2856원으로 일주일 전보다 5.9% 올랐고, 1년 전과 비교해 31.0% 높았다.


채소 가격이 오른 것은 무더위와 장마에 따른 작황 부진 때문이다. 상추의 적정 생육온도는 15~20도지만 기온이 크게 오르면서 생산량이 감소하며 가격이 예년보다 상승했다. 이번 집중호우로 농산품 주요 산지의 피해가 커지며 농산물 가격은 당분간 크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배추의 경우 우천과 무더운 날씨로 인한 상품성 저하로 시장 내 반입량이 감소해 오름세로 거래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물폭탄이 고랭지 배추 산지인 강원 태백의 일부 농가를 휩쓸면서 공급·출하량이 다소 감소할 전망이다.


여기에 올해 건고추 재배면적 감소로 생산량이 줄면서 고춧가루 가격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내산 건고추 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중국산 건고추 재고량까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량 감소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수입산 가격도 만만치 않다. 국내산의 대체재로 주목받으며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건고추 수입량은 전년 대비 14% 증가한 1만2653톤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주요 수입국인 중국의 재고량 감소로 수입산마저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김장에 필수 재료인 마늘 역시 기상여건 악화로 작황 부진을 겪었다. 마늘 생산량은 28만4936톤으로 전년 31만8220톤 보다 3만3284톤(-10.5%) 감소한 것으로 집게됐다. 재배면적과 10a당 생산량은 2만3290㏊, 1223㎏로 전년대비 5.7%, 5% 줄었다.


이들 식재료의 가격 강세는 이달 폭염과 9월 추석 등 물가 상승 요인이 많이 남아있어 수개월간 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구내식당에서 직장인들이 식사하는 모습.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아워홈
◇ 이상기후 장기화 ‘우려’…“김치제조 업체 및 급식업계 부담 증가”


김치 제조업체들은 이런 현상이 장기화될까 걱정하고 있다. 당장 피해는 없지만 공급량이 감소하면 가격이 오르고, 농작물이 수해까지 입으면서 상품성은 오히려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장할 때 쓰이는 부재료 가격도 대폭 오를 경우 일정기간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다만 김치 제조업체들은 김치 가격 인상을 단정 짓긴 이르다고 입을 모은다. 김치 제조 기업은 통상 수개월 치 물량을 미리 비축하기 때문이다. 일정 기간 생산에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가격 인상은 제반 비용 상승에 따른 것으로 배추 수급과 별개라고 밝혔다.


김치 제조업체 관계자는 “매년 여름철 병충해, 기후 영향으로 배추 수급이 어려웠는데 올해는 이를 대비하기 위해 예년에 비해 비축시기를 앞당기고 비축량도 늘렸다”며 “포장김치 생산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배추김치를 제공하는 구내식당도 올해는 생각보다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있다. 통상 식자재업계는 폭우 등으로 배추 수급에 따른 문제가 생기면, 구내식당에 제공해 오던 배추김치를 국내산 열무김치, 깍두기 등으로 대체해 왔으나 올해는 수급에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급식업계 관계자는 “주요 식자재는 소비량을 예측해 비축하거나, 하우스 및 전용 시설을 통해 공급 안정성 제고에 힘쓰고 있다”며 “수급 이슈 발생시에는 대체 작물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유동적 대응이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포장김치를 정리하고 있다.ⓒ뉴시스
◇ 밥상물가 들썩…올 하반기 소비자 부담도 문제


소비자들은 김치 가격이 오를 것을 걱정하고 있다. 포장김치 가격은 보통 2~3년 주기로 인상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물가상승으로 인해 최근 2년으로 인상 주기가 단축됐다. 2022년 인상 후 올해가 2년이 되는 해로 국산, 중국산 원부재료 모두 크게 오르면서 인상 가능성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치 제조 업체들은 “현재로선 인상 계획이 없다”고 말을 아끼는 상황이지만 지켜볼 일이다. 김치업계는 2년 전 가격을 올린 뒤 현재까지 동결해 왔다. 대상과 CJ제일제당이 2022년 9월 각각 김치 가격을 9.8%, 11% 인상했고, 풀무원이 2022년 12월 가격을 10% 올린 바 있다.


김치 제조업체 관계자는 “원부재료 가격이 급등한다고 해서 가격 조정으로 바로바로 나타나기는 어렵다”며 “김치는 대표 국민 식품이기 때문에 최대한 부담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포장 김치 가격이 오르지 않더라도 매년 김치를 직접 만들어 먹는 소비자들의 부담도 문제다. 우리나라 식사에서 빠질 수 없는 메뉴인 김치를 만드는 주재료의 몸값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김장을 포기하는 이른바 ‘김포족’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직장인 A씨(40대)는 “배추부터 각종 속 재료까지 준비하려면 가격이 만만치 않고 집에서 만드는 것도 번거롭다 보니 주변만 돌아봐도 ‘결국 사 먹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 같다”면서도 “포장김치 가격도 만만치 않아 갈수록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서둘러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상추는 논산, 익산 등 주산지에서 다시 심기 작업이 이달 중순부터 진행돼 60%가량 완료된 것으로 전했다. 상추는 수확이 시작되는 다음 달 상순 이후에는 공급 여건이 호전될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는 배추 등 원예농산물은 주산지의 수확작업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비축 물량을 시장에 탄력적으로 공급해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농업인을 대상으로 병해충 기술자료를 배포하고, 고온기 농작물 안전 관리 요령을 안내하는 등 기술지도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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