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새 국면?…상속세 개편에 쏠리는 눈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4.07.01 11:31
수정 2024.07.01 11:31

7월 말 상속세재 개편…최고세율 인하, 최대주주 할증 폐지 가능성

경총 "현행 50% 상속세율, OECD 평균 25%까지 낮춰야"

상속세 인하시 정몽구 명예회장 보유 지분 활용 여지 커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차그룹

정부가 20여년 만에 상속세제를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정의선 회장의 지분상속과 맞물려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새 국면을 맞게 될지 관심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8년 지배구조의 핵심 축인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분할합병하는 방식의 개편을 시도하다 시장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1일 재계에 따르면 현재 세계 최상위 수준인 우리나라의 상속세제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으로 낮출 경우 오너 중심 경영체제 기업들은 경영승계 고민을 상당부분 덜 것으로 보인다. 당장 대표적인 기업이 현대차그룹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편집인 포럼’에서 각종 세재개편 논의 중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상속세 개편을 꼽으면서 이달 말 세법개정안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전체적으로 우리의 상속세 부담이 높은 수준이고, 현재 제도 자체가 20년 이상 개편되지 않아서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기본적 인식이 있다”며 “어느 게 우선순위에서 시급한 건지에 대해선 다양한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대주주 할증, 가업상속공제, 유산취득세 전환 등 기업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사안들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방향은 동의한다”고 밝혀 재계의 기대감을 높였다.


경제단체들도 이같은 정부의 이같은 기조를 뒷받침하는 ‘지원사격’에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취 부총리의 발언 이후 ‘한국 경제 레벨업을 위한 세제개선 건의서’를 기재부에 제출했다. 건의서에는 상속세율을 인하하고 최대주주 할증을 폐지해 달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현재 상속세율은 최고 50%로, OECD 평균(25%)의 두 배에 달한다. 여기에 최대주주 주식할증을 반영하면 상속받은 재산의 6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과세방식 또한 유산 총액을 기준으로 하는 ‘유산세’로 돼 있어 여러 자녀에 유산이 분할되더라도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다.


경총은 상속세와 관련된 현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속세율을 OECD 평균인 25%까지 낮추고, 일률적인 ‘최대주주 주식할증 평가’ 역시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세 방식 역시 글로벌 추세에 맞춰 개인이 실제로 상속받은 재산에 비례해 합리적으로 과세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5월 ‘상속세제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현 상속세제는 부의 재분배 보다는 경제 역동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하다”며 “1996년 40%에서 2000년 50%까지 지속 인상된 상속세율을 인하하고, 기업이 출연한 공익법인의 상증세 부담을 완화하는 등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기아 사옥 전경. ⓒ데일리안DB

상속세제가 개편될 경우 지난 2018년 무산 이후 7년째 멈춰서 있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도 활로를 찾을 수 있다.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현대모비스와 정의선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를 합병하는 방식이 아니라도, 좀 더 유연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큰 틀에서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이 고리를 끊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은 기아→현대모비스의 모-자회사 관계를 해소하고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하는 지배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정의선 회장이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야 한다. 현재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2018년 당시 정 회장이 20%의 지분을 쥔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분할합병을 시도했던 것도 이같은 지분 구조에 근거한다.


분할합병 방식이 아니라면 정 회장이 기아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17.5%를 인수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문제는 지분 인수에 필요한 3조원이 넘는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동안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현대엔지니어링 등의 지분과 정 회장이 20%의 지분을 투자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나스닥 상장을 통한 지분 가치 상승 등이 자금줄로 언급돼 왔다. 이들 지분의 매각 혹은 지분을 담보로 한 대출로 현대모비스 지분을 인수하는 그림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재원 확보로는 충분치 않은데다, 지분 매각이 계열사 주가에 미칠 영향, 보스턴 다이내믹스 상장의 불확실성 등까지 감안하면 100% 안정적인 구상은 아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현대차그룹

정몽구 명예회장의 재산 상속이 이뤄질 경우 지배구조 개편은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 정 명예횢아은 현재 상장사 지분으로만 5조원에 가까운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 지분 5.4%(약 2조7000억원), 현대모비스 7.2%(약 1조5000억원), 현대제철 11.8%(약 4000억원) 등이다.


동일 상속권을 가진 정의선 회장과 정성이‧정명이‧정윤이 등 4남매가 그룹 지배력 확보를 위해 정 회장에게 현대모비스 지분을 몰아줄 경우 지분 매입 부담은 줄어든다. 기아로부터 현대모비스 지분 5.2%가량만 인수하면 정 회장이 최대주주에 오를 수 있다.


현 상속세제 대로라면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7.2%를 상속받더라도 9000억원의 상속세 부담을 져야 하지만 상속세제가 개편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총의 건의대로 상속세율이 25%까지 낮아지고 최대주주 할증까지 폐지된다면, 상속세 부담은 3750억원까지 낮아진다.


상속세제 개편이 재계 요구 수준대로 이뤄진다면 현대차그룹의 안정적인 지배구조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애초에 현대차그룹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합병이라는 무리수를 두게 된 것도 경영승계를 어렵게 만드는 무리한 상속세제 때문이 아니었겠느냐”면서 “상속세제 개편이 이뤄진다면 한층 유연한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