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지원 없는 ‘친환경 음반’ 컨설팅…빈 수레만 굴리는 환경부 [D:가요 뷰]
입력 2024.06.21 12:19
수정 2024.06.21 12:20
“지원도 규제도 없이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앨범을 만들라는 것처럼 무책임한 말이 또 있나 싶죠. 그것도 전체 가요계 음반 판매량의 10% 수준도 되지 않는 소규모 기획사들만 모아놓고….”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회원사를 대상으로 음반 과대포장 규제를 소개하고, 규제의 기준인 포장공간비율, 포장 횟수를 최소화하는 방안 등을 안내하는 컨설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연예기획사가 앨범 제작에 사용한 플라스틱 폐기물은 2017년 55.8t에서 급증해 2022년 801.5t으로 집계됐다. 5년 만에 약 14배 이상 폭증한 셈이다. 음반 판매량 집계 사이트 써클차트에 따르면 지난해 톱400 기준 1∼12월 앨범 누적 판매량은 약 1억2000만장으로 전년(약 8000만장)보다 약 50% 늘면서 플라스틱 폐기물 역시 급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대부분의 앨범 케이스는 플라스틱 소재지만, 분리배출에 대한 내용이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게다가 그 커버와 구성품 또한 대체로 코팅지로 이루어져 있어 재활용이 불가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종이류’로 분류되는 앨범 내 구성품 쓰레기들은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에 적용되지 않을뿐더러,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폐기물 부담금 또한 기획사들의 수익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때문에 연간 1억장이 넘는 이례적 음반 전성기 뒤엔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도 뒤따른다. 이에 2021년 글로벌 케이팝 팬들은 ‘케이팝포플래닛’을 조직하고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No K-pop on a Dead Planet)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기후위기에 적극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도 몇 해 전부터 친환경 음반에 대한 관심을 보이곤 있지만 사실상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과대포장이나 중복 구매를 유도하는 사행성 마케팅에 대한 당국 규제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케이팝 음반 제작에 있어서 환경은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더구나 앨범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수익성’ 부분에 있어서 친환경 소재의 활용은 두 배 이상의 제작비를 투입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원이나 규제 방안 등의 대책 없는 환경부의 ‘친환경 음반 컨설팅’은 빈 수레만 굴리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한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케이팝 음반에 대한 환경 문제가 거듭 거론되면서 환경부가 액션만 취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경제적 이윤이 맞지 않는 상황에서 기획사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긴 역부족이다. 제대로 된 규제, 친환경 제안과 함께 지원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친환경 앨범이 보편화된다면 자연스럽게 친환경 소재의 단가도 내려가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환경부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면서 “케이팝 음반의 90% 이상은 아이돌 팬덤에 의해 소비된다. 그런데 인디 레이블 등 소규모 기획사를 상대로 컨설팅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음반 판매량 집계가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음악 순위 프로그램 등에 반영되는 음반 판매량 집계를 없애면 음반 판매 자체가 줄어들게 되고,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음반 쓰레기나 ‘밀어내기’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며 “아이돌 팬덤이 음반을 구매하는 것도 아티스트의 포토북이나 이벤트 응모권 등을 위함이지 사실상 음반에 대한 수요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청취 수단으로써의 기능이 사라진, 무늬만 CD인 음반은 환경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시장을 왜곡하는 등의 문제들만 가져온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