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백서 ⑥] '찻잔 속 태풍'이었던 與 캠페인과 한동훈의 정치적 향방

김찬주 기자 (chan7200@dailian.co.kr)
입력 2024.04.19 07:00
수정 2024.04.19 09:10

여당, 지역 후보에 韓 지원유세 일정 공유 안돼 혼선

후보 일정파악 안되거나 한동훈 이름값 내걸다 낙선

정치권 "인지도를 지지도로 착각한 게 커다란 패착"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4·10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22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한 번만 더 일할 수 있게 해달라"며 민심에 읍소했지만, 오로지 '정권 심판론'만 앞세운 더불어민주당에 참패했다. 한동훈 총괄선대위원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다만 그간 일부 후보들의 선거 과정의 면면을 보면 사실상 예견된 결과였다는 관측도 나온다.


총선 캠페인이 △선거 캠프 내부 분열 △시·도당 차원의 한동훈 위원장 지원유세 일정 공유 누락 △비계획적 선거 스케줄 △후보 개인의 선거 역량 미비 △캠프와 후보자 간 소통 미흡 등 각종 혼란 가운데 치러진 '찻잔 속 태풍'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총선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4일, 수도권에 출마한 국민의힘 A 후보 측은 "후보자가 본투표 한다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캠프 관계자는 하루 만에 후보자가 사전투표를 완료한 사진을 담은 보도자료를 뒤늦게 냈다. 일찌감치 파악했더라면 취재진이 따라붙었을 텐데, 기본적 스케줄 확정도 안되는 모습이었다.


본투표를 예정했다가 갑작스레 사전투표를 하게 된 이유는 '한 위원장이 사전투표를 독려했기 때문'이었다. 정작 한 위원장이 모든 지역구 후보자의 사전투표를 당부했던 것은 훨씬 전부터였다. 후보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해야 하는 캠프에서부터 총괄선대위원장의 메시지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후보와 캠프간 소통의 미흡함마저 드러낸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광장에서 열린 지원유세에서 성남지역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같은날 국민의힘 수도권 지역구의 정치신인 B 후보가 한 위원장 현장 지원유세에 뚜렷한 사유 없이 불참하는 일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지역 유권자를 만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그러나 확인 결과 B 후보는 "애초 도당에서 연락을 받은 게 없다. 한 위원장 지원유세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오히려 도당에서 내게 일부러 알리지 않은 게 아니냐"고 토로했다. '열세'로 분류되던 B 후보가 최종적으로 경쟁자인 더불어민주당 전직 재선 후보에 4.17%p 차이라는 간발의 차이로 석패한 것을 고려하면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수도권 지역에서 열세인 당세와 정치신인이란 타이틀 치고는 괄목할 만한 성적표다. 틈만 나면 지역 유권자들을 만나던 B 후보였다. 당초 민주당 텃밭 지역구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한 정치신인이 한 위원장 유세 일정을 공유받지 못해 지원 유세에 참석하지 못한 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어떤 심경이었을지는 짐작하기 쉽지 않다.


총선 기간에 여론조사를 많이 돌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는 경기권 국민의힘 C 후보의 탄식도 있었다. 법령에 의한 여론조사 공표·보도 금지 시점(지난 4일)에 임박해서였다.


C 후보는 "실무 경험이 많은 내가 유권자들에 자연히 먹혀들 것이고 이미 한 위원장도 자신을 충분히 신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자신의 경쟁력을 스스로 고평가하면서 여론조사가 선거에 미치는 파급력을 간과했다. 그에 더해 한 위원장 이름값으로 선거를 치르려는 듯한 태도는 후보 본인의 독자적인 '선거력' 부족을 증명했다는 지적이다.


대본을 외워 낭독하는 듯한 지지 호소 메시지도 지역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수도권 접전지에 출마한 국민의힘 D 후보는 선거 유세차량에 탑승해 마이크를 들었지만 지역민들의 반응은 뜨듯미지근했다. 원체 보수세가 강한 지역구라 승리를 전망하는 관측이 많았지만, 후보 개인 면모로만 봤을 땐 아쉬운 소구력이었다.


D 후보의 부족한 소구력은 한 위원장의 현장 지원유세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한 위원장 도착 전 마이크를 잡은 D 후보 발언이 한 위원장이 온 뒤에도 지루하게 이어지자, 현장에 모인 당 지지자들은 "한동훈 말할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내려오라"는 야유를 보냈다. 이날 한 위원장은 오전 10시부터 경기·인천권 11개 선거구 지원유세에 나서는 등 그야말로 철인 일정을 소화했고, 이같은 일정은 총선 막판까지 이어지다 결국 탈진에 이르렀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과 인요한 국민의미래 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9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22대 총선 파이널 총력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2년 통치를 향한 '정권심판론'의 거센 역풍 속에, 당과 후보 모두 체계적이고 치밀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정치신인들은 혼란 속에서 오로지 한 위원장만 바라보다 허무하게 끝난 선거라는 평가가 타당해 보인다. 한 위원장이 막판 총력 유세에 나서며 하루에만 수십 곳의 선거구 지원유세에 나서 고군분투한 노력이 무색해진 선거 결과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총선을 치르며 민심에 직면하다보니 인지도를 마치 국민 '지지도'로 착각한 게 가장 큰 패착이었다"며 "좀 더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린 다음 시작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현재 한 위원장 홀로 100일간 이어진 혈투는 국민의 동정론을 사고 있다. 국회 앞에 늘어선 "돌아와요 한동훈" 화환들이 그의 사투를 평가해주고 있다. 정치 경험이 적은 한 위원장이 위기의 집권여당 선거를 총괄하며 여기까지 이끈 것만 해도 그에겐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될 터다. 한 위원장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김찬주 기자 (chan72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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