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알펜시아가 6800억에…공정위, ‘KH사태’ 입찰담합 510억 과징금

세종=데일리안 맹찬호 기자 (maengho@dailian.co.kr)
입력 2024.04.17 12:00 수정 2024.04.17 13:54

‘혈세 먹는 하마’…애물단지 리조트로 전락

5차 입찰서 자회사 설립해 ‘들러리’로 참여

텔레그램서 리츠-강원개발 간 투찰가 공유

배상윤 회장 모든 과정 지켜봐…귀국 ‘잠잠’

스키점프 경기가 열리는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스키점프 센터 ⓒ뉴시스

KH그룹 소속 6개사가 사업비 1조6400억원에 육박하는 알펜시아리조트 매각 관련 입찰 과정에서 담합한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제재를 받게 됐다.


공정위는 17일 지난 2021년 6월 강원도개발공사가 발주한 알펜시아리조트 자산매각 공개입찰에서 낙찰예정자, 들러리, 투찰가격 등을 담합한 행위를 벌인 이들에게 시정명령과 과징금 510억4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들은 KH필룩스, KH전자, KH건설, IHQ, KH강원개발, KH농어촌산업 등 6곳이다.


공정위는 KH필룩스, KH건설, KH강원개발, KH농어촌산업과 배상윤 KH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평창 알펜시아, 공개경쟁입찰 4차례 무산된 이유
알펜시아리조트 자산매각 공공경쟁입찰 결과. ⓒ공정거래위원회

당초 1조6400억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들여 지어진 알펜시아리조트는 부채가 쌓이며 수차례 매각을 시도했다. 최초감정가는 약 1조원이었으나 입찰담합이 이뤄지며 입찰 예정가는 3000억원가량 줄어들었다.


알펜시아리조트는 강원도가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조성한 사계절 복합관광리조트다.


알펜시아리조트는 강원도가 2005년 평창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개발했으나 4년 뒤 분양에 실패해 천문학적인 빚더미에 올랐다.


10년 넘게 지방채를 발행하며 간신히 버텨오다 지난 2021년 6월 KH그룹 특수목적법인인 KH강원개발에 낙찰됐다. 총 양수도 대금은 7115억 원이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강원도와 강원도개발공사는 강원도개발공사 경영개선을 위해 지난 2016년부터 알펜시아 자산매각을 본격 추진했다. 이에 강원도는 외국인 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투자 유치를 통한 매각에 나섰다.


그러나 강원도 중심의 투자유치가 성공하지 못하자 강원도개발공사는 공개경쟁입찰을 통한 매각을 결정했다.


공개경쟁입찰은 4차례 진행됐었지만 모두 유찰됐다. 계속된 2차례의 수의계약 절차도 결렬됐다.


입찰 과정을 보면 1차 입찰 공고 시점인 2020년 10월 전후로 강원도와 KH필룩스는 공개입찰 유찰 시 KH필룩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수의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전제로 한 ‘알펜시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1차 입찰 투찰 마감은 지난 2020년 12월 이뤄졌다. 예정가격은 9708억원이었다. 5개사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했으나 투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지방계약법 시행령에 따르면 유찰 등으로 재공고한 입찰이 다시 불성립한 경우에만 예정가격 인하가 가능하다.


2차 입찰도 투찰자가 없어 결렬된 후 3차 입찰에는 최초 매각 예정가격인 9708억원에서 10%가 감액된 8738억원으로 공개경쟁입찰이 나왔으나 또다시 유찰됐다. 4차 입찰 예정가격은 20% 감액된 7767억원으로 나왔으나 투찰차가 없어 결국 유찰됐다.


수의계약 단계에서도 지방계약법령에 따라 4차 입찰과 동일한 가격 조건으로 진행돼 계약 체결이 결렬됐다.


한원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위원회에서 1~4차 입찰담합은 없었다고 판단했으며 입찰담합의 경우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해서 부과 기준율을 정한다”며 “이 건의 계약금은 6800억7000만원이며 중대한 위반 행위로 보고 부과 기준율을 5%로 상향했다”고 설명했다.


알펜시아리조트 공개매각 입찰 절차 개요. ⓒ공정거래위원회
‘한 회사’로 꾸며 입찰 나서…투찰결과 텔레그램 공유
5차 입찰 관련 합의 및 실행 구조.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 조사결과 이 사건 6개사는 5차 입찰에서 예정가격이 1차 입찰 대비 30% 감액될 것이라는 정보를 투자유치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입수했다.


먼저 KH필룩스가 설립한 자회사를 통해 알펜시아리조트를 낙찰받기로 하고 유찰로 인한 일정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KH건설이 자회사를 설립해 들러리로 참여하기로 합의했다.


결국 두 회사가 사실상 KH계열사라는 뜻이다. 하나의 회사가 계열사를 설립해 정상적인 입찰인 것으로 꾸민 것이다.


이후 KH필룩스와 KH건설은 알펜시아리조트 인수가 본사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입찰에 참여하기로 했다. 지난 2021년 5월 초 필룩스는 강원개발을, KH건설은 KH리츠(현 KH농어촌산업)를 각각 설립했다.


KH전자는 강원개발 지분 30%를 인수하고 입찰보증금을 KH필룩스와 나눠 대여하는 등 사실상 컨소시엄 형태로 인수에 참여했다.


또 IHQ는 리츠가 들러리로 입찰에 참여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알면서 리츠 지분 100%를 인수한 후 KH건설과 입찰 서류를 준비하고 입찰보증금을 대여하는 등 공동 합의로 실행했다.


5차 입찰 투찰 당일인 지난 2021년 6월 18일 KH리츠 측이 예정가격에 근접한 6800억10만원에 먼저 투찰한 후 결과를 강원개발 측에 텔레그램으로 공유했다.


이에 강원개발은 리츠 투찰 이후 6800억7000만원을 투찰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지난 2021년 리츠 측이 예정가격에 근접한 가격에 먼저 투찰한 후 결과를 강원개발 측에 텔레그램으로 공유한 내역. ⓒ공정거래위원회
모든 과정 지켜본 ‘배상윤’…2년째 행방 묘연
서울 강남구 KH건설 사무실 모습. ⓒ연합뉴스

배상윤 KH그룹 회장은 KH필룩스가 SPC인 강원개발을 설립해 낙찰자가 되고 나머지 4개사들이 들러리 혹은 지분참여 등의 방식으로 담합에 참여하는 모든 과정과 세부사항을 보고받고 이를 승인하는 등 이 사건 담합을 주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배 회장은 배 회장은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인수 자금을 마련하고자 계열사에 4000억원대 손해를 끼치고, 650억원대 계열사 자금을 빼돌려 횡령한 혐의 등으로 수배 중이다.


동남아시아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배 회장은 지난 2022년 사업상 이유를 들어 출국한 뒤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진 상태다.


한 국장은 “지방공기업이 보유한 대규모 자산매각 관련 입찰담합을 적발·제재한 건”이라며 “담합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모든 사업자를 제재하고 과징금 납부에 대한 연대책임을 부과하는 등 엄정한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맹찬호 기자 (maengh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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