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 뉴삼성] 잠잠했던 삼성 'M&A'…올해 베일 벗는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4.02.08 06:00
수정 2024.02.08 06:00

41개월 만에 벗는 '사법 족쇄'…삼성 이미지·투자 제약 회복 전기

무죄 선고 직후 오른 출장길…중동·동남아서 사업 기회 모색

유럽서 반도체·전장 협력 물꼬 관심…하만 이후 대형 M&A 가동 가능성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6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아랍메미리트연합(UAE)으로 출국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마침내 사법리스크를 덜었다. 2020년 9월 공소장 접수 이후 41개월 만이며, 106차례의 재판 끝에 받아든 첫 결과다. 법원이 검찰이 주장한 19개 혐의를 모두 물리치고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이 회장은 '사법 족쇄'를 벗고 글로벌 삼성 경영에 한층 매진할 수 있게 됐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삼성의 '잃어버린 10년'을 재건하는 데 힘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한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이후, 리더를 잃고 흔들린 삼성을 정상화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 차원에서 조만간 이 회장이 '뉴삼성'을 위한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41개월 만에 벗는 '사법 족쇄'…삼성 이미지·투자 제약 회복 전기 마련

5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417호. 오후 2시부터 약 50분간 진행된 1심 판결은 피고인과 재판을 지켜보는 관계자 모두에게 긴박한 순간이었다.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판결을 경청하던 이 회장은 재판장이 "주문, 피고인들은 모두 무죄"라고 밝히고 나서야 옅은 미소를 띠었다. 41개월간 줄곧 그를 따라다닌 사법리스크가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검찰의 칼날은 훨씬 이전부터 이 회장을 겨누고 있었다. 이 회장은 2016년 9월 부회장일 당시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경영 전면에 나섰지만 그 해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사실상 경영 활동이 마비됐다. 2017년 구속 기소 이후 2022년 광복절 특별사면까지만 무려 5년이 걸렸다.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제일모직-삼성물산을 둘러싼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이었다.


이 사건 1심 판결까지 이 회장은 3년 5개월간이나 법정을 오갔다. 공격하는 검찰과 방어하는 삼성의 공방 속 법원이 이 회장의 손을 들어주기까지 그는 긴 해외 출장은 모두 포기해야 했다. 그 사이 대만 TSMC와 삼성의 파운드리 격차는 커졌고, 인텔은 파운드리 재진입을 선언하며 미국, 유럽 등에 속속 투자 깃발을 꽂았다.


메모리 반도체 라이벌인 SK하이닉스는 HBM(고대역폭메모리) 기술 전쟁에서 삼성을 고전하게 만들었다. 애플은 지난해 스마트폰 출하량에서 삼성을 앞섰고, LG전자는 가전에서 영업이익을 2배로 따돌려 "삼성은 1등 기업이 맞는가"하는 '위기론'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이 회장이 '사법 족쇄'에 매인 지난 10년 동안 삼성은 글로벌 이미지 하락은 물론, 경쟁자 추격마저 허용하는 내상을 입었다. 신기술 투자, 신사업 발굴은 총수의 감각과 판단능력, 무엇보다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결단이 요구되나 이 회장의 운신의 폭이 워낙 좁았던 터라 제대로 된 대응이 어려웠다. 올해를 계기로 상황이 달라진만큼 이 회장이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정신을 이어받아 뉴삼성 재건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22년 9월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멕시코 하만 공장을 방문해 생산 현황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무죄 선고 직후 오른 출장길…중동·동남아서 사업 기회 모색

실제 이 회장은 5일 무죄 선고 직후 다음날인 6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이번 출장은 현지 사업장을 점검하고 직원들을 격려하는 '명절 현장 경영' 일환이라고는 하지만, 신사업 투자 및 글로벌 기업들과의 전략적 투자 제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이는 그의 행선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올해 첫 대외 행보로 중동과 동남아시아를 택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아랍에미리트) 등 '오일머니' 국가와 말레이시아 등을 방문해 신시장 개척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중동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성사되는 등 다양한 사업 기회가 열리고 있어 우리 기업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이집트 등 중동 3개국을 찾아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선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서북부 타북주에서 삼성물산이 참여하고 있는 친환경 스마트시티 '네옴(NEOM)' 산악터널 공사 현장을 점검했다. 이집트에서는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해 TV·태블릿 생산 현장을 점검했으며 이스라엘에서는 삼성전자 R&D센터에서 혁신 스타트업과 신기술 투자 현황을 보고 받았다.


이번 출장에서는 삼성이 신성장 사업으로 육성중인 AI, 6G, 로봇, 바이오, 디지털 부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기업들과의 만남도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과정에서 주요 기업인 뿐 아니라 유명 석학을 만나 사업 아이디어 이해도를 높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투자 단행으로 이어질지도 관심사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일 서울 우면동 삼성리서치에서 연구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유럽서 반도체·전장 협력 물꼬 관심…하만 이후 대형 M&A 가동 가능성

그는 중동·동남아 출장 이후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주요 완성차 업체와 반도체 및 전장(전자장비) 협력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이 포진한 독일을 찾아 차량용 반도체, 전장 사업 등을 논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스페인에서 열리는 'MWC 2024' 행사장을 찾아 주요 관계자들과 미팅을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한 달 내 다수의 국가를 오가는 빡빡한 일정은 그만큼 이 회장이 삼성을 제대로 일으키겠다는 간절함이 녹아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결심공판에서 "사업 선택과 집중, 신사업, 신기술 투자, M&A를 통한 보완, 지배구조 투명화" 등을 언급하며 이재용식 '뉴삼성' 밑그림을 공개했다. 내부적으로는 기술 투자 및 지배구조를 강화를, 대외적으로는 인재 확보 및 신사업 기회 확대로 삼성 재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런 차원에서 하만 이후 멈춘 대형 M&A도 올해 가시화가 점쳐진다.


인수 대상은 반도체, 로봇, AI 신사업이 꼽힌다. 지금까지 삼성은 국가 경쟁력으로 부각될만한 신성장 산업에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온만큼 이 영역 투자를 대폭 늘릴 가능성이 있다. 앞서 지난해 로봇기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에 전략적 지분 투자를 했고, 삼성의 전장·오디오 자회사인 하만은 음악 관리·검색·스트리밍 플랫폼 '룬'을 전격 인수했다.


같은 해 삼성디스플레이는 미국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기업인 이매진(eMagin)을 약 3000억원에 인수하며 XR(확장현실) 시장 공략에 나섰다. 삼성SDS는 클라우드 사업 뿐 아니라 생성형 AI 기술 역량 확보 등을 위해 올해 M&A에서 성과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1월 8일(현지시간) 열린 CES 삼성 프레스 콘퍼러스에서는 AI 컴패니언(동반자) 로봇 '볼리'를 깜짝 공개하며 삼성의 자체 생성형 AI 기술을 과시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삼성은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지능형 로봇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 '보핏'은 로봇과 헬스케어 분야에 안성맞춤이다. 해당 로봇은 실버타운, 피트니스, 필라테스 등 기업 간 거래(B2B) 위주에서 시작해 일반 소비자(B2C)도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전날 새해 첫 경영행보로 6G(6세대 이동통신) 기술개발 현장을 택한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6G는 AI를 내재화해 더 높은 에너지 효율과 더 넓은 네트워크 범위를 제공하며 ▲AI ▲자율주행차 ▲로봇 ▲확장현실(XR) 등 첨단 기술을 일상생활에서 구현할 수 있게 하는 핵심 기반기술이다.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한 선제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 내 AI 컴패니언 로봇 '볼리'. ⓒ삼성전자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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