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배달 중 신호위반 사고 고교생…법은 보험금 지급 인정했다 [디케의 눈물 166]
입력 2024.01.23 05:14
수정 2024.01.23 17:42
고등학생, 2022년 오토바이 운전 중 신호위반 사고 입원…법원 "요양급여 지급해야"
법조계 "순간적 집중력 저하로 신호위반 했을 가능성…고의·중대과실 없었다고 본 것"
"중대과실, 엄격·신중하게 봐야…주위상황 및 운전자 상태 감안해 과실요건 판단 필요"
"보험사기 막기 위한 급여제한 필요성 인정되지만…국민 행복추구권·재산권 침해는 안 돼"
오토바이로 야간 배달을 하다가 신호위반 사고를 낸 고등학생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선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나 판단 착오로 신호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고 음주나 과속 등 고의로 볼 수 있는 사정이 없었기에 급여 지급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신호위반이라는 과실이 사고의 원인이 됐다고 해도 보험금 지급 여부는 형사처벌과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A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환수고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했다. 고등학생 신분이던 A씨는 지난 2022년 6월 오토바이를 운전해 안양시 교차로를 지나던 중 적색 신호에서 정지하지 않고 직진하다가 당시 좌회던 차량과 추돌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A씨는 중골의 골절, 개방성, 중족골의 골절 등 상해를 입고 같은 해 11월까지 병원 치료를 받았고 건보공단은 A씨 입원 당시 병원에 요양급여비용 약 2677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A씨 사고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에 따라 신호 또는 지시위반의 중대한 과실로 발생한 만큼 A씨가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금을 지급받았다고 판단, 이듬해 3월 부당이득금 징수를 고지했다. 행정법원은 A씨의 신호 위반에 대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사고가 A씨의 고의, 중대한 과실로 발생했다고 보기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음주나 과속을 한 것도 아닌 상황에 단지 신호를 위반했다는 사정만으로 고의에 가깝도록 현저히 주의를 결여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리더스)는 "국민건강보험법 53조 1항에 따르면 자살 행위나 고의로 어떠한 침해 행위를 한 경우에 대해서는 보험급여가 제한될 수 있다. 이 사안의 경우 지급을 제한할 만한 중대한 과실로 발생한 사고였느냐가 쟁점이었다"며 "신호를 준수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나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나 판단의 착오로 신호위반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고의 내지는 중대한 과실이라고 할 수 있는 음주 혹은 과속 등 사정이 없었기에 급여 지급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호위반이라는 경과실이 사고의 원인이 됐다고 해도 지급 여부에 대해서는 형사처벌과 별도로 요건을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며 "사고가 발생한 경위와 양상, 운전자의 운전 능력과 교통사고 방지 노력 등과 같은 사고 발생 당시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승우 변호사(법무법인 정향)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신호위반이 그 자체로 고의나 중과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신호위반 사고에 대해 중과실이 아니라고 판단한 판례들도 적지 않다"며 "즉, 법원은 중대한 과실을 인정하는 것은 엄격, 신중해야 한다고 보고 있고 이 사건에서도 주위상황이나 운전자의 상태 등을 감안하면 중대한 과실요건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고 전했다.
김도윤 변호사(법률사무소 율샘)는 "사회보장법적 성격을 갖는 국민건강보험법의 취지 및 목적에 따라 해석할 경우 중대한 과실로 볼 수 없는 경우까지 이에 대한 급여를 제한하면 국민의 행복추구권, 재산권과 사회적 기본권이 과도하게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보험재정, 보험사기 등으로 인한 선량한 시민들의 피해 등 보험급여제한의 현실적인 필요성은 일응 인정하지만 그 범위를 무리하게 확대해석하는 것은 결국 일반 국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법원에서는 공단의 무리한 확대해석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