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 혐의 '엡스타인 명단'에 클린턴·앤드루 왕자도 있다

김상도 기자 (marine9442@dailian.co.kr)
입력 2024.01.04 20:56 수정 2024.01.04 20:57

2019년 미성년자 성착취 혐의로 체포된 뒤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미국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왼쪽)의 생전 모습. ⓒ AP/연합뉴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동생인 앤드루 왕자,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


미성년자 성착취 혐의로 체포된 뒤 2019년 구치소에서 자살한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제프리 엡스타인의 재판 관련 문건이 공개됐다. 재판 과정에서 익명으로 처리됐던 인사들의 실명이 공개된 이 문건에는 미 정치권과 금융계 주요 인사들이 엡스타인이 고용한 여성들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했다는 증언이 포함돼 있다.


AP·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은 3일(현지시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40건의 엡스타인 재판 관련 문건과 사건기록을 공개했다. 성착취 피해 여성 중 한 명인 버지니아 주프레가 엡스타인의 범죄 행각을 도운 길레인 맥스웰을 상대로 2015년 낸 명예훼손 소송 관련 자료다. 모두 934쪽 분량으로 피해자 녹취록과 이메일, 증언 등이 포함돼 있다. 2024쪽에 달하는 재판 문건 중 일부로 법원은 며칠 안에 더 많은 문건을 공개할 예정이다.


뉴욕 연방법원은 앞서 지난해 말 이 문건에 익명 처리돼 있던 인물 150여 명의 실명을 밝히라고 명령했다. 부와 인맥 관리를 위해 미성년자를 포함, 수십 명의 여성을 '성노예'로 유린한 엡스타인의 추악한 범죄 실체를 끝까지 밝혀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법원이 수용한 결과다. 죽음 이후에도 그의 범행에 대한 단죄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다만 문건에 실명이 거론됐다는 사실 자체가 엡스타인의 성범죄에 연루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문건에는 직접 성범죄와 연루된 인물들 외에도 재판 과정에서 단순히 엡스타인과 업무적이나 개인적으로 교류가 있다는 이유로 거론된 인물들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미소짓고 있다. ⓒ AP/연합뉴스

당초 익명으로 처리된 인물은 170명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공개된 인물은 180여명으로 더 많았다. 이날 실명이 공개된 대다수는 일찌감치 엡스타인과의 교류가 드러나 홍역을 치른 인물들이다.


예컨대 한 문서에는 그가 '클린턴은 젊은 사람(여성)을 좋아한다'고 언급했다는 피해 여성 요안나 쇼베리의 증언이 담겼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2년 9월 포르투갈의 한 공항에서 '엡스타인 성착취 사건' 피해 여성으로부터 안마를 받는 사진이 공개된 적도 있는데, 성범죄 등 불법 행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해 왔다.


앤드루 왕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쇼베리는 앤드루 왕자가 2001년 엡스타인의 맨해튼 자택에서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2001년 엡스타인 소개로 당시 17세였던 주프레를 수차례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왕실의 모든 직위에서 물러났다.


함께 공개된 별개의 녹취록에서 주프레는 정치권과 금융계 주요 인사 다수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증언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주프레는 헤지펀드 거물인 글렌 더빈,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 등과도 성관계를 맺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미국 억만장자 사업가 톰 프리츠커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증언했는데, 이 같은 증언은 앞서 공개된 적이 없는 내용이라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엡스타인은 소유한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의 별장과 뉴욕 맨해튼 자택 등으로 각계각층의 유력인사와 지인 등을 초대해 성착취 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았다. 이후 최소 36명의 10대 여성을 인신매매한 혐의로 2019년 7월 수감됐으며, 같은 해 8월 사건과 연루된 이들의 명단 일부가 공개된 다음 날 감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상도 기자 (sara0873@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