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욱의 야단법석(野壇法席)] MBC의 봄

양창욱 기자 (wook1410@dailian.co.kr)
입력 2023.12.30 18:16
수정 2024.02.14 22:41

'위대한 MBC' 갈등, 처음에는 배부른 패거리들의 밥그릇 싸움인 줄…진영의 대리전 알고 '절절'

왜 6년 넘는 세월 동안 각종 유배지서 이토록 악랄하게 짓밟고 조리돌림하고 유령처럼 유폐시키는가?

피의 조국은 결코 이념의 조국 이길 수 없어…지극히 현실적인 주고받기로 공영방송 되찾아와야

배지 달기에만 혈안된 '여의도 모리배들', MBC 이대로 두고 총선 힘들다 외치지만 당장 봄 오지 않을 듯

MBC 사옥 전경.ⓒ

처음에는 그저 배부른 패거리들의 밥그릇 싸움인 줄 알았다. 이런 저런 구호와 당위(當爲)가 절실하게 난무했지만 일단 이 둥지에 입성해 말석에라도 이름 올리고 대충 십여 년 세월 보내면 1억 연봉은 그냥 주어지는 등 따신 회사에서 서로 침 뱉어가며 싸울 것이 자리 밖에 더 있겠는가, 기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욱이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가. 지난 반세기 세월의 눈부신 성취로 ‘위대한 MBC’의 아성을 구축한 후부터는 이 나라 어떤 취재원이 MBC 기자의 전화를 안 받고 리콜(recall)을 거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MBC 옷만 걸쳐도 거들먹거릴 수 있는 가히 압도적인 위상의 공장이었다. 기자 본령의 집요함과 열정으로 이뤄내든, 연합뉴스 적당히 베낀 뒤 인터뷰 살짝 넣어 말아내든 이 조직이 만들어낸 성과물은 그 자체로 타사에게는 전범(典範)이 됐고, 지금이야 직군 전체가 기레기의 오명으로 참담하게 몰락하고 있지만 그 옛날, 천 년은 더 명예롭게 주유할 것 같았던 기자들의 유금세월(流金岁月) 시절에는 맨 선두에서 그 세월을 견인하던 부러움의 안식처였다. 그래서인지 밖에서 듣는 이런 회사에서의 다툼이란, 흔하디흔한 조직의 상투적인 파열음 혹은 내일 아침이면 금새 시시덕거릴 수 있는 ‘잠시 불편한 일상’ 정도로 여겨졌다.


이 회사 갈등의 본질이 진영의 대리전임을 알고 나서부터는 오랜 세월 벗으로 지냈던 MBC 지인들의 비인간적인 대우와 핍박 소식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왔다. 한 때는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함이었던 동료들이 웃으면서 빚어내는 배신감은 차치하고서라도, 6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잡스러운 사내 유배지 곳곳에 조리돌림으로 전시하고 유령처럼 유폐시키자는 발상은 가장 먼저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을까. 기자가 지인들에게 물었다. 도대체 저들은 왜 저러느냐고. 왜 이렇게까지 악랄하게 사람을 짓밟고 가루가 될 때까지 난도질을 하느냐고. 혹여 이 병든 재앙의 시작이 당신들로부터 비롯됐고 거기에 대한 눈 먼 복수심으로 이 광기의 배설이 끝도 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냐고. 우리에게 당한 것에 대한 앙갚음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그 수준과 도를 넘어섰다... 지난 정부부터 계속되고 있는 거대 야당의 노골적인 지지와 지원은 어느새 이들의 모든 행위를 죄의식도 없는 재미있는 놀이로 만들어 버렸고, 어줍지 않은 세치 혀의 말 같지도 않은 변명조차 사라졌을 무렵부터는 이들 모두가 기꺼이 즐기고 있었다...


MBC 사옥 전경.ⓒ

언젠가는 서로 이해하고 화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은 버려야 한다. 지난날 선후배, 동기로서 신뢰와 믿음의 시절도 있었으니 우리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 피의 조국은 결코 이념의 조국을 이길 수 없다. 너희가 가진 가치와 지향으로 이렇게 오래 해먹었는데도 이 정도 밖에 안 됐고 국민들도 외면하니 이제 우리에게 넘겨라, 우리가 한 번 해보겠다. 우리도 부족하고 모자라 국민들에게 버림받으면 다시 너희에게 주겠다... 이런 식의 지극히 현실적인 주고받기가 돼야 한다. 하물며 국가도 이렇게 굴러가는데 한 줌 회사 조직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세밑에도 여전히 불법취득 정보로 보복 보도를 일삼고 갈라치기 뉴스쇼의 방송 장악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일국의 공영방송이 극좌 유튜브와 공조해 영부인 몰카 방송을 도모하고 이 치부를 가리고자 꼬리자르기 인사발령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는 이 나라를 분열과 반목으로 두 동강 냈던 전직 법무부 장관의 북콘서트를 유튜브로 생중계하는 공중파가 됐다고 해도 별로 놀랍지 않다. 달콤함과 안락함의 유효기간이 끝나간다고 해서 추한 악다구니로 몸부림 칠 일은 아니다. 자기 진영 앞에서만 춤추고 헌신하는 외눈박이 물고기들의 소음 같은 외침 정도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낄낄거리며 간직할 수 있다. 사실 인권이나 복지 운운하며 종북(從北) 좀 한다고 해서 진보의 탈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군사독재시절 잠깐 정의의 강(江)에 발을 담갔다는 이유로 지난 20년 넘게 기득권의 정점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다가 이제는 허위와 구태, 무능과 부패에 찌들어 어느덧 잡놈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이 이 나라의 운동권이다. 그래놓고 아직도 자신들만의 전유물인양 오갈 데 없이 궁지에 몰리면 어김없이 김대중과 노무현을 소환해 욕보이고 있다.


이 겨울이 다가도 MBC의 봄은 오지 않을 성싶다. 말로는 MBC를 이대로 두고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여당 발(發) 돌림노래가 되풀이되고 있지만 당장 자신들의 배지 달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여의도 모리배(謀利輩)들의 안중에 MBC가 있을 리 없다. 오히려 총선을 앞두고 언론의 비위는 아예 건들지 않는 게 좋겠다며 눈을 감고 있는 듯하다. 용산과 정부쪽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는데, 사실 윤석열 정부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여름의 끝에서 실기했다.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낙마시킨 후 해임하려고 했던 김 모 이사가 도망 다니자 절차 운운하며 안일하게 시간을 낭비했고 이후 권 이사장은 그 짧은 틈을 타고 김명수 사법부 잔당의 도움으로 살아 돌아왔다. 그 뒤로는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뭐를 해도 안 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차라리 저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문진 야권 이사 전부를 한꺼번에 해임시켰어야 했다는 진한 아쉬움이 진영 전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 비싸고 좋은 변호사들 끼고 자신만만해 하던 방통위가 어떻게 권 이사장의 복귀를 그렇게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는지, 왜 그 많은 결정을 하면서 MBC 내부의 아군들과는 의논 한 마디 없었는지 돌이켜 생각하면 기가 찰 뿐이다. 처참하게 고꾸라진 MBC 뉴스의 시청률을 위로 삼아 지금의 MBC가 무슨 힘이 있어 내년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누구를 되게는 못해도 안 되게 할 정도의 힘이 지금 MBC에게는 남아 있다. 이들이 언젠가부터 탄핵놀이로 하루해를 지새우는 야당과 총선에서 승리한 후 배를 맞추면 대통령 탄핵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돈 들여 장사하지 않는 정치판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정녕 관(棺)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는가.


양창욱 기자 (wook141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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