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끗하는 '용산의 정책'…무슨 '일' 하는지 체감이 안된다 [정치의 밑바닥 ⑩]

김수현 기자 (water@dailian.co.kr)
입력 2023.12.21 06:00
수정 2023.12.21 06:00

노동·교육·연금 세 가지 국정 방향, 계획 완전 실종

전문가 "국민 각인시킬 아젠다 대신 정치적 측면만 부각"

"1년 7개월 권력이 힘 가장 셀 때인데…동력 없어 아쉽"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당시 배우자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인사하는 모습. ⓒ뉴시스

레임덕은 언제나 지도자 집권 말기 △불안 △공백 △무너진 권위와 권력 누수를 타고 퍼져 나간다.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지르는 게 레임덕의 시초라면, 통상 뚜렷한 '주요 정책 실패'에 이은 '국정 동력 상실'에 따라 그림자처럼 책임론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내년 집권 3년 차를 맞을 윤석열 정부의 삐끗거리는 정책이 이른 레임덕론을 펼치기에 최적의 토양이 되고 있다. 레임덕은 집권당이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얻지 못한 경우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번 정부는 스스로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하는 게 체감되지 않는 정부'라는 비판의 중심에는 대통령이 있다. 취임 이래 윤 대통령은 야심차게 노동·교육·연금개혁이라는 3대 국정과제를 내놨다. 그러나 그 누구도 현재 3대 개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른다.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운전대를 사실상 놓쳤다는 평가다. 나아가 '민생'을 외치지만 구호처럼 되뇌일 뿐, 국민은 정부가 외치는 '민생'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쏟아진다.


집권 초기 주요 공약들을 살펴보면 대개 논의 과정에서 흐지부지됐다. 우선 노동정책은 노조와의 전쟁 후 상흔만 남았다. 지난 15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의 대표자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지만, 노동계는 근로시간제 개편, 계속 고용 등을 '노동개악'이라 규정하고 입을 닫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정 대화가 이뤄지려면 의제별 위원회가 필수다. 위원회 구성은 본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노동계가 반대하면 의결할 수가 없다. 사실상 대화 자체가 막힌 셈이다. 주 69시간제는 프레임이 잘못 잡히면서 시작하자마자 여론 역풍에 좌초돼, 소득 없이 실패만 했던 울림이었다.


교육개혁과 연금개혁도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연금개혁의 경우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등이 움직이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비판하고 있다. 재정계산위원회가 1년간 만들어 지난 10월 내놨지만, 보험료율·소득대체율 등 핵심이 없다. 의견이 다양하다는 이유를 들어 모수 개혁을 국회 공론화로 넘겼다. 책임을 둘러싼 핑퐁게임이라는 지적이 이는 이유다.


영유아 교육·보육 통합 등을 골자로 하는 교육개혁 역시 주무 부처 장관의 잇따른 낙마로 관제탑이 부재했다. 이주호 장관 취임 1년 이후 국가책임 교육·돌봄, 디지털 기반 교육 혁신, 과감한 대학개혁을 추진했지만, 아직 과제가 산적해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30%대 박스권에 갇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2~14일 윤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평가를 설문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긍정평가는 직전 조사(지난 5~7일) 대비 1%p 하락한 31%, 부정평가는 3%p 오른 62%로 집계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최근에는 '민생'을 강조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된 '알맹이'가 없다는 관측이다. 최근 용산에 잦은 말실수나 반향이 두려워 정책 발표나 홍보를 사리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민생 행보에 꼭짓점이 없는 것도 '건전 재정'기조를 정해놔서라는 평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비슷한 모습만 계속되고 있다"며 "정책을 추진하려면 지르고 보는 게 아니라, 사전에 물밑 작업을 충분히 해야 한다. 현재는 저질러 놓고 찬반 양론이 대립하는 걸 관망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용두사미와 같은 상황이다. 국민에게 성과·진행을 수시로 보고하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민생이나 정책에서 국민에게 크게 각인시킬만한 아젠다가 없고, 한동훈·이준석·김기현 등 정치만 떠오른다. 한시라도 빨리 보이지 않는 민생이나 경제를 밖으로 부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개혁은 당사자들과 대화·타협하고 동의를 얻어 진행돼야 하는데 절차를 밟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며 "이익단체와 긴밀하게 대화하고 조정하기보다는 결정해놓고 따라오라는 식이다. 추진력을 받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민생 정책 추진에 대해서도 "마스터플랜이나 비전, 계획이나 목표가 없어 보인다"며 "1년 7개월 차 권력이 가장 힘이 셀 때 추진하지 못했다면, 앞으로 계획을 잡아도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총선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많은 물음표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수현 기자 (water@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