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위자료 고작 500만원?…향후 배상금액·소송규모 눈덩이처럼 커질 것" [디케의 눈물 136]
입력 2023.11.10 05:03
수정 2023.11.10 21:02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제조사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대법, 민사 배상책임 첫 인정
법조계 "피해자 입증책임 전환 및 감경 노력 그간 많이 이뤄져…시대 흐름 부합하는 판결"
"기존 구제급여, 이번 법원 판결 손해배상과는 별개…단계별 청구 금액 기준도 마련, 전향적 판결"
"실제 피해에 비해 위자료 액수 적은 점은 아쉬워…法, 손해 더욱 폭넓게 인정하고 액수도 늘려야"
대법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확정 판결이 나왔다. 법조계에선 폐 질환과 살균제 간 인과관계를 인정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손해배상 청구 금액의 기준도 마련됐다는 점에서 전향적인 의미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피해에 비해 위자료 액수가 500만원으로 너무 적지만 이번 판결은 법원에서 제조사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고 다른 피해자들도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만큼 제조사들이 향후 배상해야 할 금액과 소송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김모 씨가 제조·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와 납품업체 한빛화학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이날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제조물 책임에서의 인과관계 추정, 비특이성 질환의 인과관계 증명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김씨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옥시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고 2013년 5월 간질성 폐 질환 등의 진단을 받았다. 질병관리본부는 조사 결과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질환 가능성이 낮다며 2014년 3월 3등급 판정을 내렸다. 3등급은 다른 원인을 고려할 때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질환 가능성이 작다는 의미다. 김씨는 2015년 2월 옥시와 한빛화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 법원은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2심은 "피고들이 제조·판매한 이 사건 가습기 살균제에는 설계상 및 표시상의 결함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원고가 신체에 손상을 입었다"며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의료법 전문 이동찬 변호사는 "어떤 원인과 결과가 있을 때 그 결과가 건강 악화일 경우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렵다. 특히 경험칙상 인과관계가 있을 듯 보이나 과학적으로 입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폐 질환과 살균제 간 인과관계를 인정받지 못한 피해자가 위자료를 받을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다. 또한 입증 책임을 전환하거나 감경하는 노력들이 그동안 다방면에서 많이 이뤄졌는데 이번 판결은 그러한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판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법에서 최종적으로 가습기살균제 업체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업체들이 구제급여 분담금 지급을 미루고 있어 완전한 보상이 요원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환경부가 올해 초 피해자 구제급여를 위한 사업자 분담금을 재부과했을 때도 옥시 등 일부 기업은 납부 기한이 임박해서야 겨우 돈을 지급했다. 이후 옥시는 '분담금을 낼 수 없다'고 환경부에 통보했고 애경산업은 낸 분담금을 돌려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구제급여라는 것은 정확한 인과관계가 없어도 사회·도덕적 책무상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지급하는 급여인데, 이는 법원의 판결에 따른 손해배상과 별개다. 이번 판결은 법원에서 제조사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며 "다른 피해자들도 배상받을 길이 넓게 열린 만큼 제조사들이 배상해야 할 금액과 소송 규모는 향후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예림 변호사(법무법인 심목)는 "일반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경우 손해액을 청구하는 사람이 직접 밝혀야 되는 까닭에 소송이 어려운 경우들이 많았다"며 "단계별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금액의 기준이 어느 정도 마련됐다는 점에서 전향적인 의미의 판결이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만 원고가 받게 될 위자료를 500만원 밖에 인정해주지 않은 점은 아쉽다. 오랜 기간 겪은 피해에 비해서 배상의 정도가 약해 보인다"며 "인과관계가 객관적으로 입증될 때만 손해로 보기 때문에 치료비나 정신적 위자료 외엔 인정이 안 될 수 있고 피해가 경미할 경우엔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치료비 밖에 없어서 인정받기 더 어렵다. 향후 법원에서 피해자의 손해를 책정할 때 재량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위자료 액수를 증액해 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상민 변호사(법무법인 에이앤랩)는 "'제조물책임법'에 따른 제조사의 배상책임을 대법에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가습기살균제 제조사들에 대한 행정처분도 있었고 업체 대표에 대한 형사 처벌도 있었던 만큼 손해 발생에 대한 제조사 책임이 점차 인정되고 있는 추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