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연설 자리 지켰지만 '신사협정' 파기한 野?…與는 29차례 '박수'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입력 2023.10.31 12:23
수정 2023.10.31 12:53

민주당, 尹 대통령 입장에 앞서 '침묵 시위'

본회의장 안에서도 '박수·고성' 없이 침묵

국민의힘은 연설문 중간중간 尹 향해 응원

'신사협정' 무용지물 됐단 비판 제기되기도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위해 입장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정기조 전환, 민생경제 우선" "국민을 두려워하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31일 내년도 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든 피켓에 적힌 내용이다. 앞서 국민의힘과 본회의장에서 피켓 시위나 고성 지르기 등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신사협정을 우회적으로 파기한 행태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9시 20분께부터 로텐더홀에 도열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의 도착 시간으로 예상됐던 9시 30분에 앞서 미리 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이후 윤 대통령이 9시 40분께 야당 의원들을 쳐다보지 않은 채 국회에 들어서자, 일부 민주당 의원은 "여기 한 번 보고 가세요" "여기 좀 보고 가" 등을 외치며 침묵을 깨트리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해 대통령의 시정연설 때도 로텐더홀에서 '야당 탄압 중단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선 바 있다.


문제는 민주당이 지난 주 국민의힘과 국회 회의장에서 고성·피켓시위 등을 하지 않기로 신사 협정을 맺은지 채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전날 의원총회를 열고 윤 대통령을 향한 로텐더홀 피켓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은 회의장 내로 한정된 만큼 로텐더홀에서의 피켓 시위가 협정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회의장 밖의 문제에 대해서는 신사협정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신사협정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대통령이 1년에 두 차례 국회를 방문하는 만큼 이 기회에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의원들이 대통령께 국민 목소리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선 윤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국민의힘과 민주당 의원들 간의 차이는 뚜렷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10시 1분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기립 박수를 보냈지만, 민주당과 정의당·진보당 등 야당 의원들은 자리에 앉아 침묵했다. 오히려 윤 대통령이 들어서기에 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입장할 때는 민주당 의원석에서 야유가 들리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의 연설을 보이콧했던 것과 달리 민주당 의원들 전원은 본회의장에 모습은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31일 국회에서 열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에 앞서 로텐더홀에서 침묵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입장과 함께 자리에 서 있던 홍익표 원내대표와 먼저 악수를 한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와도 인사를 나눴다. 이어 연단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가면서 윤 대통령은 총 18명의 야당 의원들과 악수를 나눴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의원들은 일어서서 대통령과 악수를 나눴지만, 일부 의원은 앉아서 악수를 받았다. 특히 당대표 비서실장인 친명계 천준호 의원은 정면만을 응시했고, 윤 대통령도 머뭇거리다 천 의원을 건너뛰고 다른 의원에게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후 윤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는 건전재정이다. 건전재정은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 없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라는 내용의 연설을 발표하는 동안에도 여야는 서로 다른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 대통령의 입장과 퇴장 당시를 포함해 연설 중간 중간 총 29번의 박수로 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에 반해 민주당에선 단 한 차례의 박수도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의 연설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노동 개혁을 강조하면서 "합법적인 노동운동은 철저히 보장하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노와 사를 불문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는 발언을 꺼냈을 때 잠시 웅성거렸지만 큰 소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민주당 쪽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온 건 윤 대통령이 연설을 마친 직후인 10시 36분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악수를 나눴을 때였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마친 이후에도 민주당·정의당 등 야당 의원석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악수를 청했고, 대부분 의원들은 악수에 응했다. 이 상황에서 연설 내내 '줄일 건 예산이 아니라 윤의 임기!' '피눈물 난다! 서민 부채 감면!'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던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윤 대통령을 향해 피켓을 더 높게 치들기도 했다.


야당 의석을 돈 윤 대통령은 이어 기립박수를 이어가던 여당 의원들과도 악수를 나눴다. 특히 우리나라 정당사 최초의 시각장애인 최고위원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에게는 몇 마디 말을 건네면서 안내견 '조이'를 쓰다듬기도 했다.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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