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행복" 안세영 금메달, 통증 안고도 중국서 완벽한 설욕 [항저우 AG]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입력 2023.10.08 09:24
수정 2023.10.08 09:28

배드민턴 여자 단식 29년 만의 금메달..중국서 천위페이 꺾어

5년 전 아시안게임 1회전 탈락, 도쿄올림픽 8강 탈락 안긴 상대 완파

세계랭킹 1위 오른 최정상급 기량과 함께 투혼·정신력도 최고 입증

안세영 ⓒ 뉴시스

“정말 행복하다.”


‘세계랭킹 1위’ 안세영(21·삼성생명)이 부상 투혼 속에 금메달을 차지하고 포효했다.


안세영은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빈장체육관에서 펼쳐진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 천위페이(중국·세계랭킹 3위)에 2-1(21-18 17-21 21-8) 승리했다.


한국 선수의 아시안게임 여자 단식 우승은 역대 두 번째이자 1994년 히로시마 대회 방수현 이후 29년 만이다. 안세영은 단체전 우승에 이어 대회 2관왕에 등극했다.


올해 참가한 12개 국제대회에서 우승 8차례·준우승 3차례 차지한 안세영은 지난 3월 배드민턴 최고 권위 대회인 전영오픈에서 정상에 섰다. 8월에는 야마구치 아카네(일본)를 제치고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하며 금메달을 ‘예감’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도 50여분 만에 천위페이를 꺾으면서 “역시 안세영이다. 금메달은 떼어 놓은 당상 아닌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예상대로 안세영은 개인전 단식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결승까지 무난하게 올라왔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단 하루도 잊지 못했던 ‘과거 천적’ 천위페이를 결승 무대에서 만났다.


천위페이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안세영을 1회전에서 탈락시킨 선수다. 당시 고교 1학년이던 안세영은 AG 데뷔전에서 천위페이에 0-2(15-21, 8-21)완패했다. 어린 나이에 치른 첫 아시안게임이지만, 이용대 이후 학생 선수로는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던 ‘배드민턴 천재 소녀’ 안세영에게는 너무 아픈 과거였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단식 8강에서도 천위페이와 접전을 펼쳤지만 패했다. 당시 천위페이는 금메달을 획득했다.


천위페이(맨 왼쪽) 옆에서 금메달 들고 있는 안세영. ⓒ 뉴시스

모두 과거다. 그때의 안세영이 아니다. 천위페이는 더 이상 ‘천적’이 아니다. 올해만 6번 꺾었고, 항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도 완파한 상대인 만큼 금메달을 놓고 다투는 자리에서는 반드시 제압해야 했다.


고향에서 관중들의 뜨거운 응원을 등에 업고 나선 천위페이를 상대로 안세영은 생각보다 어려운 경기를 했다.


팽팽한 양상으로 진행된 1세트에서 안세영은 18-16 리드를 잡았지만, 경기 중 무릎 부상을 당했다. 경기 전에도 무릎 상태가 완전하지 않았던 안세영은 무릎에서 좋지 않은 소리가 나는 것도 들었다. 잠시 코트에 주저앉은 안세영은 스프레이를 잔뜩 뿌리는 응급 처지만 하고 다시 게임에 나섰고, 가까스로 1세트를 따냈다.


여파는 2세트에 크게 미쳤다. 안세영은 2세트 초반 7점차까지 끌려갔다. 안세영의 오른 무릎 부상 상태를 간파한 천위페이는 집중적으로 그 부분을 공략했다. 안세영은 통증을 참고 어려운 수비를 해내며 점수 차를 좁혀나갔고, 막판에는 17-19까지 따라붙었다. 그러나 강력한 공격을 시도하기 어려웠던 몸 상태 때문에 결국 2세트는 내줬다.


하지만 2세트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긴 랠리를 펼치면서 천위페이의 체력을 떨어뜨렸다. 그 효과는 3세트 들어 확연하게 나타났다. 투혼을 발휘하는 안세영 앞에서 지친 천위페이는 급격히 무너졌다. 3세트 초반부터 5-0 앞선 안세영은 아프지만 미소를 되찾으며 21-9로 여유 있게 이겼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치르지 않아도 될 3세트로 보일 만큼 실력이나 체력, 투혼에서 모두 앞섰다. 천위페이를 응원하던 중국 팬들은 3세트 들어 무너지는 천위페이와 투혼의 안세영을 지켜보며 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안세영 ⓒ 뉴시스

경기 후 절뚝거리며 걸어 나온 안세영은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며 “통증은 계속됐지만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신 차리고 뛰자’고 반복하며 뛰었다”고 말했다.


한때 천적이었던 천위페이를 중국에서 누른 안세영의 다음 목표는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이다. 세계선수권 우승, 아시안게임 우승을 일군 안세영은 그랜드슬램을 꿈꾸고 있는데 올림픽은 가장 어려운 무대일 수 있다. 그러나 올해 보여준 최정상급 기량과 이날 보여준 투혼과 정신력을 떠올린다면, 안세영의 그랜드슬램은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로 보인다.


완벽한 설욕에 성공한 안세영의 더 큰 도전을 지켜보는 팬들은 정말 행복하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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