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원제 폐지'에 쪼개진 민주당…지도부 '이견' 친문모임도 '거부'
입력 2023.08.12 06:00
수정 2023.08.13 04:40
혁신위, 사실상 대의원제 무력화한 혁신안 발표에
비명계 지도부 "총선과 무관한 데 굳이 왜 지금"
의원 싱크탱크도 "갈등만 부추겨" "타당치 않다"
친명계는 "마음에 안 든다고 거부? 자각하라"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회'의 최종 혁신안이 계파 갈등에 기름을 부은 모습이다. 혁신위가 전당대회에서의 대의원 권한 폐지를 골자로 하는 혁신안을 내놓은 것을 두고, 비명(비이재명)계는 "수용할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반면 친명(친이재명)계는 당원들의 지속적인 요구사항이었다며 혁신안에 힘을 실으면서 내홍이 심화하고 있다.
최종 혁신안에 대한 이견은 발표 하루 만인 11일 당 지도부에서부터 감지됐다. 혁신위는 전날 당대표·최고위원 선출 시 권리당원 투표 70%, 국민여론조사 30%를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현행 당헌·당규에 따른 반영 비율은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국민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로, 대의원과 일반당원 반영을 제외하고 권리당원의 비중을 강화하는 것이다.
비명계 고민정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의원제 폐지는 총선에는 전혀 적용사항이 없고 오로지 전당대회, 즉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곳에만 적용된다"라며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총사퇴하지 않는 한, 내년 총선 이후에 전당대회는 치러지게 될 것이다. 내년 총선이 끝나고 해야 할 일을 굳이 지금으로 당겨야 할 시급성이 무엇이냐"라고 따져물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룰은 당헌 25조에 비율이 정해져 있어 수정하기 위해서는 당헌을 개정해야 하고 중앙위를 소집해야 한다"며 "국민이 선출해야 할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 민생과 관련된 시급성을 다투는 것도 아닌 일로 오로지 민주당 대표와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해 이런 무리수를 두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반면 서은숙 최고위원은 "더 많은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 혁신에 저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이해하고 포용하되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은숙 최고위원은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새롭게 한다' 혁신의 사전적 의미"라며 "그러므로 단체가 조직을 혁신할 때 반대하고 저항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혁신의 과정은 혼란스러워 보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혁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혁신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낡은 존재로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 함께 자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혁신위원으로 활동한 이해식 조직사무부총장은 KBS라디오에서 "대의원의 가중치를 없애 대의원·권리당원 '1인 1표제'를 하자는 것"이라며 "대의원제가 존속하는 한 '돈 봉투' 같은 부패 문제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어렵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서영교 최고위원은 혁신안에 대해 "의미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대의원 표의 가중치를 완전히 없애는 것에 대해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날 MBC라디오에 나와 "국민의힘은 대의원의 가중치가 없는데, 전광훈과 같은 사람의 입김이 최고위원을 뽑거나 당대표를 뽑는데 좌지우지하는 부정적인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동안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의원총회나 의원 워크숍을 통해서, 최고위에서 의견을 수렴하면서 논의하도록 하겠다"라고 했다.
당내 싱크탱크인 '민주주의 4.0'과 '더좋은미래'에서도 혁신안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주의 4.0'은 친문(친문재인)계 핵심인 전해철 의원을 이사장으로 한 친문 모임이다. '더좋은미래'는 86그룹(운동권 출신 60년대생·80년대 학번)의 초·재선 의원을 주축으로 약 50명이 속한 당내 최대 연구 모임이다. 대의원제 폐지는 현 시점에서 시급한 과제가 아니며, 당내 갈등만 증폭시킨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민주주의 4.0'은 성명문을 내고 "2024년 총선 뒤에 있을 당 지도부 선출에서 대의원 표의 반영 비율 30% 폐지를 제일 큰 혁신과제로 제안했는데, 과연 이것이 국민 눈높이에서 가장 시급한 혁신안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며 "대의원제도는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당이 어려운 지역의 의견 반영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운영해 왔는데, 대의원제도 자체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민주주의 4.0'은 "혁신안은 당내민주주의 원칙만 강조하며 당 조직체계나 대의기관 등이 어떤 상황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발표됐다"며 "당의 변화를 위해서는 혁신안에 대한 당내 수용성과 실천력이 중요한데, 혁신위가 신뢰와 권위를 상실한 상태에서 발표한 혁신안을 민주당의 혁신안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더좋은미래'도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 반영 여부와 비중 등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주제지만, 이는 1년 뒤 개최되는 전당대회 문제다. 국민적 관심 사안도, 국민이 바라는 민주당 혁신의 핵심도 아니다"라며 "이미 지난 몇 달간 대의원제 폐지 등을 둘러싸고 당내 갈등이 심화되어 온 상황에서 지금 이 문제로 당내 논란과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국민적 시각에서 매우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총선 이후 전당대회 준비위 차원에서 국민 여론과 당내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도록 하고, 이 사안에 대해서는 총선 전 더 이상 논의를 진행하지 말 것을 지도부와 의원총회에 제안한다"며 "전당대회와 공천 관련 사안은 이후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와 선거대책기구에서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혁신위발(發) 계파 갈등이 고조되고 있지만, 이재명 대표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혁신안은 혁신위의 제안이기 때문에 당내 논의를 거쳐 합당한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당내 반발이 큰데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