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비례 투표'…민주 혁신위도 '노인 폄하 퍼레이드' 동참?

김은지 기자 (kimeunji@dailian.co.kr)
입력 2023.07.31 12:03 수정 2023.07.31 16:40

野 잇단 실언 몸살…30일 청년 좌담회 발언

"왜 미래 짧은 분들 1대1 표결 해야 하냐

민주주의 국가서 할 수 없지만 '합리적'"

혁신위 "중학생 아이디어 예로 들었을 뿐"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지난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여명 비례 투표'를 언급하면서 당의 고질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노인 폄하와 경시 풍조'가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과거 민주당이 나이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드러내는 듯한 발언을 해서 선거를 그르친 경험이 있음에도, 당을 일신해야할 혁신위가 이를 쇄신하기는커녕 동승를 하고 말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혁신위는 31일 미래세대의 관점으로 당을 주도할 청년자문단인 '미래혁신단'을 가동한다. 이에 앞서 김은경 혁신위원장과 당 혁신위는 전날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2030 청년 좌담회를 열고 당의 쇄신에 대한 청년 의견을 청취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둘째 아들이 22살이 된지 얼마 안 됐는데 중학교 1~2학년일 때 '왜 나이 든 사람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느냐'라는 질문을 했다"며 "(아들의 주장은) 평균 연령을 얼마라고 봤을 때 자기(아들)의 나이로부터 여명까지, 엄마 나이로 여명까지 해서 비례적으로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되게 합리적이죠?"라고 자리에 참석한 이들에게 반문하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라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맞는 말이다.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 1 표결을 해야 하느냐"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청년 표심을 의식해 소개한 '여명(남은 여생)에 비례한 투표'는 기대수명을 80세라고 가정할 때, 20세 유권자는 여명이 60년이 남았고, 60세 유권자는 여명이 20년이 남았으므로 20세 유권자가 60세 유권자의 세 배에 해당하는 표를 비례 행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또 불필요한 발언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청년들의 정치 참여와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취지의 발언이라지만, 앞서도 당의 면모를 혁신해야할 혁신위원장이 계파 갈등성 발언을 하거나 초선 의원을 '학력 저하가 심한 코로나19세대 학생들'에 빗대 뭇매를 맞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KBS라디오 '최강시사' 출연에서 그 전날 있었던 더민초(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모임) 의원들과 간담회 분위기에 대해 "코로나 때 딱 그 초선들"이라고 수식하면서 "소통이 잘 안 되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에 가르쳤던 학생과 코로나 세대를 겪었던 학생들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아주 심각할 정도로 있었다. 일단 그들은 학력 저하가 심각했다"며 "내가 많은 국회의원을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초선이 코로나 때 딱 그 초선들인 것"이라고 해, 당내 초선 의원들을 폄하했다는 논란을 자초했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발언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민주당에는 과거 어르신 연령대의 유권자와 관련된 발언을 함부로 했다가 홍역을 치렀던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지던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현 민주당 상임고문)은 "60세 이상은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쉬시라"는 발언을 해 유리했던 흐름을 스스로 뒤집었다. 같은해 당시 유시민 열우당 의원은 "50대에 접어들면 뇌세포가 변해 사람이 멍청해진다"는 발언을 해 후폭풍이 거셌다.


지난해 지방선거 과정에서는 윤호중 민주당 의원이 충북 증평 지원유세 과정에서 상대 후보였던 송기윤 국민의힘 전 증평군수 후보를 향해 "일흔이 넘어서 새로운 걸 배우기에는 좀 그렇다"고 말해 뭇매를 맞았다.


신현영 민주당 의원도 지난 6월 대정부질문에서 "일본 후쿠시마 오염처리수가 WHO(세계보건기구) 음용 기준에 맞는다면 마시겠다"라는 한덕수 국무총리를 상대로 '기대수명'란 단어를 쓴 적이 있다. 신 의원은 "젊은 세대들은 기대수명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은 최소화하는 게 맞다"며 "의학적으로 봤을 때 총리의 기대수명이 젊은 세대들의 기대수명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발언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과거 노인 폄하 발언들로 홍역을 치렀음에도 이를 혁신해야할 김 위원장이 논란을 잡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비슷한 맥락의 실언을 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나이에 대한 편견 등 노인들에 대한 극심한 폄하이자 상식 밖의 이야기"라고 김 위원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이외에도 "혁신위의 아무말 대잔치가 지속되고 있다" "반대로 세금을 얼마나 냈는지로도 투표권 행사의 비례를 가늠해야 한다는 소리라도 나와야 하는가"라는 쓴소리도 나왔다.


이와 관련, 민주당 혁신위 관계자는 "중학생의 순수한 아이디어를 예시로 들어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했을 뿐으로 '1인 1표'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부인한 바 없다"며 "노인과 청년 세대 갈라치기는 구세대적 프레임"이라고 해명했다.

김은지 기자 (kimeunji@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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