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가리지 않는 한국인"…할리우드서 한층 흥미로워진 한인 이민자 서사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3.07.26 08:57 수정 2023.07.26 08:58

'성난 사람들', 에미상 13개 부문 후보

'미나리', '파칭코'에 이어 올해도 이민자 서사가 할리우드에서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최근 개봉한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이 초반 흥행 부진을 딛고 역주행에 성공한 가운데 월드 와이드 수익 3억 5663만 3827달러를 벌어들였다. 북미 수익은 1억 3723만 3827 달러, 해외 수익은 2억 1940만 달러로, 제작비 2억 달러를 넘겨 손익분기점을 한참 넘어섰다.


국내에서도 500만 관객을 돌파, '인사이드 아웃'을 제치고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작이 됐다.


'엘리멘탈'은 한국계 감독 피터 손 감독의 작품으로 불, 물, 공기, 흙 4원소가 살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재치 있고 불처럼 열정 넘치는 앰버가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물 흐르듯 사는 웨이드를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으며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원소들은 자칫하면 서로를 없애버릴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물은 불을 꺼버릴 수 있으며, 불은 흙에 있는 존재들을 모두 태워버릴 수 있다. 이에 원소끼리는 서로 섞이면 안 된다는 규칙 하에 살아가고 있다.


특히 불은 다른 원소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어 자신들끼리의 도시 안에서 집단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남을 해칠 수도 있는 존재로 비치는 불 종족인 엠버는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인물이지만, 흔히 어린 시절부터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성장한 앰버는 몸이 약해진 부모님의 가게를 물려 받아 그들의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한다.


피터 손 감독은 불의 종족에 한국인 이민자의 정체성을 투영했다. '엘리멘탈'을 본 관객들은 엠버를 향해 'K-장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가정에 보탬에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 살아가며 하고 싶은 일도 참다 보니, 남모를 화가 많은 엠버에게서 한국인의 특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엠버라는 캐릭터 서사가 아닌, 한국인의 보편적인 캐릭터 서사로 비치며 공감을 얻었다. 그런 엠버가 물의 종족인 웨이드를 만나 서로의 차이를 하나씩 아름답게 극복해 나간다.


물불 가리지 않고 불을 뿜어버리는 엠버의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도 연결된다. 엠버와 '성난 사람들'의 대니는 삶의 무게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향한 분노를 참지 않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 분노는 사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들에게 향한다.


두 작품은 한국인의 분노, 혹은 불같은 성질에 초점을 맞춘 후 이 특징을 내면을 진중하게 들여다보는 계기와 타인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성난 사람들'의 성과도 높이 살만 하다. 한국계 배우와 제작진들이 만든 '성난 사람들'은 미국 방송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올해 에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11개 부문 13개 후보에 올랐다.


스티브 연은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두고 '블랙 버드'의 태런 에저턴, '다머의 에반 피터스, 조지 앤 태미'의 마이클 섀넌' 등과 경쟁한다. 지난해 '오징어 게임'이 비영어권 작품 최초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등을 휩쓴 바 있지만, 한국계가 만든 영어권 작품이 후보에 오른 건 사실상 처음이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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