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엔빵'은 되고 '십원빵'은 안 된다…표현의 자유 '줄다리기'

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입력 2023.07.21 14:45 수정 2023.07.21 14:55

한은 "위변조 조장…신뢰·품위↓"

"권위주의적·후견적 발상" 비판도

업체 디자인 변경 중…일본은 허용

시중에 판매되는 십원빵. ⓒ데일리안 김효숙 기자

한국은행이 경주 명물 '십원빵'에 대해 화폐 도안 규정을 위반했다며 디자인 변경을 요구한 가운데,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입장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은은 위변조 심리를 조장한다며 영리 목적의 도안 사용을 금지한다는 입장이지만 문화적 이용을 위해 도안을 창조·변형한 사례를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게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주장이다.


특히 일본 정부가 십원빵을 따라 만든 '십엔빵'이 문제가 없다고 결론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화폐 도안 이용에 대한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10원짜리 동전을 본떠 만든 경주의 십원빵 업체와 함께 기준을 위반하지 않는 한에서 디자인 변경을 논의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해당 업체와 잘 논의한 끝에 디자인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며 "현재는 업체가 변경한 디자인이 또 다시 한은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앞서 한은은 지난달 십원빵이 화폐도안 이용기준을 위반했다며 디자인 사용권을 제한했다. 한은 기준에 따르면 화폐 도안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별도로 허용될 경우라도 유효기간은 6개월이다. 화폐 도안이 남용될 경우 위변조가 조장되고, 화폐의 품위와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한은이 디자인 변경을 요구하며 든 법적 근거는 저작권법이다. 한은이 발행 화폐 도안에 대한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니, 이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현행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화폐도안을 방석, 속옷, 전단지 등에 사용한 사례도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별개로 화폐를 위·변조할 경우 형법에 따라 처벌된다고도 덧붙였다.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 ⓒ데일리안

다만 한은의 이같은 제지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위축시킨다는 비판도 맞서고 있다.


비정부기구 사단법인 오픈넷은 지난 19일 입장문을 통해 "한은이 저작권을 들어 위변조라고 볼 수 없는 화폐도안의 창조적 변형, 놀이적 변형 등과 같은 문화적인 이용에도 적용해 대중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 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픈넷은 "화폐유통체계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화폐 위변조뿐만이 아니라 실물화폐와 엄연히 구별할 수 있는 화폐도안의 문화적인 이용과 변형에까지 한은이 개입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이고 후견주의적인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한은의 이같은 조치가 저작권법의 입법취지에도 역행한다고 말했다.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의 권리 역시 보호하고 동시에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픈넷은 "십원빵 400개로 4000원짜리 십원빵을 살 수 없으니, 십원빵은 해당 조항으로 보호된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앤디워홀의 달러 지폐 디자인을 그대로 실크스크린에 담은 '1달러 지폐'를 예로 들어 저작권 침해가 아닌 문화적 이용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현지에서 판매되는 십엔빵. ⓒ온라인커뮤니티

특히 최근 일본 현지에서는 십원빵을 따라한 십엔빵의 경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 한국 사례와 비교되고 있다. 일본 재무성은 이달 초 빵에 화폐 도안을 사용하더라도 문제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해 9월 도쿄의 한 업자가 경주의 십원빵을 모티브로 십엔빵을 개발해 판매를 시작했고, 현재는 오사카 등 점포를 확대한 상태다.


한은도 법적 소송이라는 강제적 절차가 아니라, 공문 발송 등 지도 편달로 디자인 변경 요청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 관계자는 "몇몇 업체들이 십원빵을 두고 프랜차이즈 사업 등으로 확장하면서 도안 기준 위반, 저작권법 침해 상황이 심각해졌다고 봤다"며 "다만 대부분 이런 이용 기준이 있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아 구두나 공문으로 안내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용 도안 위반을 두고 법적 소송까지 간 사례는 여태까지 한 건도 없었다"고 부연했다.

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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