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전달된 항의서한에 달랑 백지 두 장…무슨 뜻?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3.06.08 05:30
수정 2023.06.08 05:30

민주당 의원들, 용산 찾아가서 'KBS

수신료 분리징수' 항의서한 전달해

"자세한 내용은 이 안에 들어있다"

서류봉투 열어보니 빈 A4 용지 두 장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민원실 인근에서 'KBS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 반대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KBS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에 반발하며 대통령실에 전달한 항의서한에 백지 2장만 들어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때 깊은 뜻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오갔지만, 항의서한 대신 백지가 들어간 것은 단순 실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당 언론자유특위와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소속 의원들은 7일 용산 대통령실을 항의방문했다. 앞서 대통령실이 국민제안을 근거로 전기요금과 KBS TV 수신료를 분리징수하기 위한 조치에 착수할 뜻을 시사하자, 이에 반대한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언론자유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언론 탄압과 언론 장악이라는 말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지경까지 왔다"며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지명을 앞둔 상황에서 언론 탄압과 언론 장악에 대한 반성과 사과 없이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고 규탄 발언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당초 지난 5일에 해당 조치를 발표한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할 계획이었으나, 대통령실에서 대야(對野) 관계를 담당하는 정무수석실의 전희경 정무1비서관이 현장에 나오자 전 비서관에게 이를 전달했다.


고 최고위원은 서류봉투를 건네며 전 비서관에게 "자세한 내용은 이 안에 들어있으니까 대통령과 같이 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전 비서관은 "주신 말씀을 잘 전달토록 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수신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엉터리 여론조사로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 추진 공영방송 죽이기 중단하라!'는 제목까지 인쇄돼 겉에 붙여져있던 서류봉투는 정작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인쇄되지 않은 백지 A4 용지 두 장만 달랑 들어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실이 처음 알려지자 '백지 항의'에 뭔가 깊은 뜻이 담긴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대학 특강 때에도 유명 영화의 한 장면에서 모티브를 따와 재연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 최고위원은 지난 4월 단국대 특강 당시 1989년작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가장 유명한 의자 위 기립 장면에서 모티브를 따서, 특강을 듣던 대학생 100여 명을 의자 위에 기립시킨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 항의서한에 달랑 백지만 두 장 들어있더라는 사실이 전해지자 '백지 항의도 어디선가 모티브를 딴 것이 아니냐' '조조가 순욱에게 빈 그릇을 내렸던 것을 본뜬 것일 것' '대통령실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무언의 항의라는 뜻 아니냐' 등의 반응도 나왔다.


그러나 항의서한에 백지 두 장만 달랑 담긴 것은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항의서한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단순 실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항의서한 제출에 관여한 민주당 의원실 측은 봉투 안에 입장문이 들어있지 않고 백지만 있더라는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하고, 즉시 서한을 다시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민정 의원실 관계자도 "실무진의 실수가 있었다"며 "서한을 다시 작성해 대통령실에 전달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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