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한감정 위험수위, 해법은?

김현 기자 (hyun1027@ebn.co.kr)
입력 2008.08.22 18:16
수정

´반한 넘어 혐한론으로´ 재중 기업들 ´불매운동 확산´ 걱정

전문가들 "속국으로 인식, 질투심 작용…언론 증폭 말아야"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연일 선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민들의 반한(反韓) 감정이 증폭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의 각 종목 경기장에선 중국민들인 중국과 맞붙는 경기가 아니더라도 한국과 상대하는 다른 나라를 일방적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게 현지에 파견돼 있는 기자들의 일관된 전언.

역사적 문제에서 기인한 반일감정보다 지금의 반한 감정이 더 큰 탓인지 중국민들은 한-일전에선 일본 선수단에게 ‘일본 짜요(加油, 파이팅)’라고 일방적인 응원을 보냈다는 건 이미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인터넷에선 반한 기류의 정도가 경기장에서보다 더 심하다. 중국의 최대 인터넷사이트인 바이두닷컴((baidu.com)엔 연일 국적을 불문하고 한국의 상대국가를 응원하는 네티즌들로 넘쳐난다. 한국팀을 ‘빵즈(棒子·하찮은 놈)’로 비하하는 등 욕하는 글들은 부지기수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들도 반한기류 때문에 고심을 느낄 정도다. 베이징에 진출해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추세라면 반한 무드가 한국산 불매운동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고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반한 감정을 넘어 혐한(嫌韓)론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도 중국민들의 반한감정 확산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최근 한·중친선협회 일원으로 중국을 방문해 차칭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왕자루이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양제츠 외교부장 등과 면담을 가졌던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은 21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최근 일고 있는 중국인의 반한 감정을 중국의 당국자들도 우려하고 있다”고 전한 뒤 “중국 인민들의 반한 분위기를 심도있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한감정 원인, SBS 개막식리허설 보도, 쓰촨 대지진 악플 사건 등 지적

중국민들의 이 같은 반한 감정의 원인에 대해선 여러 가지 분석들이 나온다.

가장 먼저 지적되고 있는 원인으론 ‘국가적 대사인 올림픽을 한국이 훼방놓고 있다’는 중국민들의 ‘오해’다. 이는 한국에서 올림픽 성화 봉송이 이뤄질 당시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진 상황과 ‘SBS’가 개막식 리허설을 무단 촬영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경기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 재학중인 중국인 유학생 전향란 씨(여, 26)는 22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올림픽 전 한국에서 성화 봉송을 할 때 성화봉송을 저지하는 한국인들과 충돌을 빚은 데 대해 한국에 와 있는 중국 유학생들 사이에선 ‘억울하다. 한국인들이 왜 이러느냐’고 생각이 많았다”면서 “또한 중국에선 올림픽을 정말 열심히 준비해 세계인들에게 ‘깜짝’ 알리고 싶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는데 SBS에서 먼저 내보내 비판이 쏟아졌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가수 장나라의 아버지인 배우 주호성씨도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다른 나라 사람들도 개막식 리허설을 촬영했지만, 보도하지 않기로 얘기가 돼 다른 나라들은 아무도 보도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한국에서만 보도했다. 잘못했으면 얼른 ‘잘못했다. 죄송스럽게 됐다’고 사과를 하는 태도를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을 자꾸 ‘우리는 몰래 찍은 게 아니다. 찍게 내버려뒀다’ 등 이런 핑계를 대고 있으니, 한국은 우리가 좀 우호적으로 대했지만 ‘조금 얌체 근성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들을 가진 중국인들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45만 여명의 사상자를 낸 쓰촨 대지진 당시 “하늘이 노했다” 등 한국의 일부 네티즌들이 썼던 악의적인 댓글이 중국에 알려진 것은 반한감정의 확산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진징이(金景一) 북경대 교수는 지난달 2일 <내일신문> 기고에서 “쓰촨 대지진 때 한국 네티즌의 악플이 ‘중국을 모욕한 6대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고 밝혔다. 중국인 유학생 전씨도 “쓰촨 대지진 때 한국 사람들이 ‘잘됐다’고 하는 댓글을 한국에 있는 중국 유학생들이 중국 사이트에 올렸고, 이에 대한 중국민들의 반감이 컸다”고 전했다.

중국인들의 반한 감정의 확산엔 중국 언론들이 부추긴 측면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 언론의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왜곡 보도가 중국민들의 반한감정을 자극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19일 중국 인터넷 포털 동베이왕(東北網)에선 한국이 수영 8관왕을 차지한 마이클 펠프스(Phelps)가 한국 혈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뉴스가 뉴스면 주요 기사로 올라왔다. 최근 중화권 일부 언론에선 사실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중국의 4대 발명품은 한국인이 발명한 것이고 쑨원(孫文)은 한국인 혈통’이라고 한국의 한 언론매체의 보도”라는 등의 왜곡된 보도를 하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 "중국인들의 역사적 관점이 반한감정의 배경" 분석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민들의 이런 반한감정의 배경을 ‘중국민들의 역사적 관점’에서 찾았다.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학과장인 지세화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중국민들의 반한감정의 근본적인 것을 생각해보면 중국 사람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근본적 관점의 문제”라고 전제한 뒤 “중국 사람들 생각 속엔 한국은 과거 ‘속국’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혀 있는데, 베이징 올림픽 등에서 한국이 잘 하는 부분에 대한 컴플렉스적인 사고의 발로가 일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 교수는 “이는 중국민들이 일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잘 안다. 일본 사람들이 잘 하는 것은 쉽게 수용하는데, 우리가 잘 하는 것에 대해선 쉽게 허용이 안 된다”면서 “이 같은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근본적인 정서가 밑에 깔려 있는데 최근의 일련의 사건들이 현실적으로 (반한 감정 표출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상지대학교 중국학과 정재일 교수도 “중국인들의 의식 속엔 한국에 대해 변방국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그런 한국이 세계적으로 10위권의 경제대국에 올라서 있는데다 올림픽에서도 저렇게 성적 좋으니, 쉽게 말해 ‘언제 이렇게 컸느냐’는 시기하는 마음도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근본적 배경으로 “한국의 효용가치 하락”을 꼽는 시각도 나온다.

최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전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에서 “지금까지 중국은 그럭저럭 한국의 기술력, 투자가 절실했지만 요즘은 중국의 기술, 인력수준이 한국과 어깨를 겨룰만 해졌고, 게다가 최근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하이구이파’와 ‘혁명 7세대’가 급부상하면서 중국의 애국주의를 기반으로 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면서 “중국에게 한국의 효용가치가 전과 같지 않다”고 해석했다.

전 의원은 자신이 만난 한 특파원의 이야기를 인용, “´지금 중국은 환경과 에너지가 제일 큰 문제다. 바로 그 분야 최고 기술력은 일본이 갖고 있다. 지금 중국이 원하는 것을 지닌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것이다. 최근 중·일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밀착되어 있다´”고 말했다.

반한감정 확산 차단 대책, ´인터넷 중요성´ 제기

중국민들의 반한감정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번 반한감정이 촉발된 원인과 과정의 핵심이 ‘인터넷상이었다’는 점을 감안, 인터넷을 통한 적극적 홍보의 필요성에 대체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류다.

지 교수는 “이번 반한감정은 인터넷상에서 누군가 악의적으로 말도 안 되는 내용을 퍼트린 영향이 크다”면서 “가능하다면 이런 부분에 대해 정부가 정부간 공식채널을 통하기 보단 인터넷을 통해 적극적으로 반론과 정정을 시도하고, 우리가 그간 중국에 대해 펼쳤던 유익한 활동들에 대해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엔 우리 네티즌들의 성숙한 인터넷 문화에 대한 주문도 포함됐다.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은 “네티즌이 민간 외교관으로서 위력을 떨칠 수 있는데, 국가간 신뢰를 그르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처신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고, 전 의원은 “인터넷 댓글 하나하나에도 국제적 상식 아래 조심하고 타인과 다른 나라를, 문화를 배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부에선 반한감정에 대한 우리 언론의 신중한 보도를 당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 교수는 “반한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은 중국인 전체로 보면 그렇게 많지 않고, 반한감정이 계획적·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언론에서 반한감정을 다루는 것 자체가 오히려 중국인들에게 반한감정을 확산시킬 수 있다. 때문에 언론의 신중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민간교류의 중요성도 다시금 제기됐다. 특히 한국에 유학온 중국인 유학생들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 및 홍보와 동시에 한국 국민들의 인식전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국인 유학생을 위한 장학재단 설립 등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인 유학생 전씨는 “한국에 공부하러 온 중국인 유학생들 중엔 ‘한국인들이 중국인을 업신여긴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다. 그런 감정들이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는 경우가 상당수다. 쓰촨 대지진 악플 사건의 경우도 대부분 중국인 유학생들이 댓글을 해석해 중국 사이트에 올려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중국인 유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우리 유학생들도 정확한 사실전달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유학을 온 것은 중국경제를 비춰봤을 때 엄청난 투자를 해서 온 것인데, 한국 학생들 일부가 ‘짱꼴라’, ‘뙤놈’이라고 놀리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이런 부분에 대한 지도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민들의 반한감정 확산에 대해 정부에서도 우려를 표하며 대책 마련에 나선 분위기다.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한나라당 신임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일부 최고위원들로부터 이 같은 우려를 전달받고 공감을 표시한 뒤 “후진타오 주석 방한시 이 문제에 대해 오해를 풀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향후 이 대통령과 정부가 후진타오 주석의 방한을 기점으로 반한감정을 차단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현 기자 (hyun1027@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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