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노무현을 버렸었나?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3.03.20 06:54
수정 2023.03.20 07:52

상주보다 곡쟁이가 더 서럽다

검찰 때리기 올인하는 이재명

주검을 딛고 성립한 후계정권

지난 2012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때 모습.ⓒ 연합뉴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와 관련,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언급을 하지 않는 게 좋다.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처지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핑계 삼아 이 전 중수부장(현 변호사)을 공격하는 것은 시쳇말로 ‘너무 찌질하고 교활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분노’를 있는 대로 다 쏟아냈다.


“검찰 출신이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검사 아빠’가 계급이 되어버린 ‘검사왕국’이 되자 부정한 정치검사가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고개를 내민다. 반성하고 자숙해도 모자랄 이 전 부장이 회고록을 내더니 고인의 명예를 또 한 번 짓밟았다.”

상주보다 곡쟁이가 더 서럽다

상주보다 더 서럽게 우는 곡쟁이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 대표 역시 과거 노 전 대통령처럼 검찰수사로 인한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을 터이다. 한두 가지에 그치는 혐의가 아니다. 그 내용도 아주 중하다. 헤어날 길이 아득한데 검찰의 이미지에 다시 먹물을 끼얹을 핑계가 생겼다. 이참에 노 전 대통령과 자신을 동일화함으로써 ‘개딸’ 등 지지자들의 반검(反檢)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으리라는 계산을 했을 법하다.


순발력이 남다른 이 대표가 이런 기회를 놓치려 할 리가 없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말본새에 격이 너무 없다. 누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내지르는 말투를 거대정당 대표가 구사한 것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검사왕국’은 군중시위의 구호로도 억지가 지나치다. ‘정치검사’는 또 뭔가. 이 변호사가 이 대표처럼 정치권 안을 휘젓고 다니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왜 그가 낯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없다.


‘부끄러움’을 들고나왔으니 말인데 누가 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가. 대한민국 역사상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경우는 노 전 대통령이 처음이자 유일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직 대통령이었다. 그 때문이었겠지만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자살’이 금기어가 됐다. ‘극단적 선택’이 공식 용어인 양 쓰였다. 자연스레 죽음에도 급(級)이 있다는 인식을 그의 추종자들과 언론들이 강요한 셈이다.


용어만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적으로 비난한 바람에 고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은 한강에서 투신자살했다. 자신의 형을 지키고자 남 전 사장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면서도 그가 진정어린 사과를 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떳떳하지 못한 행실이 남의 억울한 죽음을 초래했는데도 노 전 대통령의 형 또한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고 들은 기억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은 뇌물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중에 자살이라는 방식을 통해 검찰수사로부터 영구히 도피해버렸다. 장례식 후 사흘째 되던 2009년 6월 1일 한겨레에 실린 인터뷰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당시)은 고인의 혐의를 인정하는 말을 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이 ‘아이들을 위해 미국 집 사는데’ 쓰였다는 것이었다. 그 수사는 ‘정치적 음모’가 아니라고도 했다. 그런데 이 대표의 말은 다르다.

검찰 때리기 올인하는 이재명

“공작수사를 벌이고 정치보복 여론재판과 망신주기에 몰두한 책임자가 바로 이인규입니다. 어디 감히 함부로 고인을 입에 올린단 말입니까? 검찰은 안하무인 막 나가도 되는 프리패스라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던 문 전 대통령도 아니라고 했는데 이 대표는 무엇을 근거로 ‘공작수사’ ‘정치보복’ ‘여론재판’이라고 단정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 변호사가 회고록에서 지적한 것처럼(언론에서 인용한 데 따르면) 당시 이른바 진보언론으로, 노 당시 대통령의 주요 지지기반이었던 매체들도 모질게 그를 비판·비난했었다.


“국민들 앞에 석고대죄 하십시오. 다 까발리고, 다 털어놓으시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죽을 때 죽더라도 하찮은 하이에나 떼에 물려 죽지 마시고, 지도자답게 산화하십시오. 당신이 죽어야 이 땅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가 부활합니다”(미디어오늘, ‘시평: 노무현 전 대통령께’, 2009.04.14.).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경향신문, 칼럼 ‘굿바이 노무현’, 2009.04.15.).


“지금이야말로 그의 예전 장기였던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깨끗이 목을 베라’고 일갈했던 옛 장수들의 기개를 한번 발휘해볼 일이다.……그는 죽더라도 그의 시대가 추구했던 가치와 정책, 우리 사회에 던져진 의미 있는 의제들마저 ‘600만 달러’의 흙탕물에 휩쓸려 ‘동반 사망’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아직도 남아 있다”(한겨레, ‘아침햇발: 비굴이냐 고통이냐’, 2009.04.30.).


(이 글을 쓴 사람들의 이름은 굳이 적을 필요가 없겠다. 개인만의 생각이 아니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특히 진보언론들은 노 전 대통령이 이념공동체의 도덕적 기반을 무너뜨린 점에 대해 격렬한 분노를 느꼈던 듯하다. 보수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고 김동길 교수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자살’을 거론한 바 있다.)


그때 문재인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다.


“극단적 선택을 할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미국 주택 구입 사실이 밝혀져 자신의 거짓말이 드러나는 등 스스로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고 하소연 할 만큼 궁지에 몰렸다. 친구이자 동지인 문재인 변호사마저 곁에 없었다. 이게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노무현의 주검 위에 거짓의 제단을 만들어 대통령이 됐다.”

지난 18일 서울 시내 대형 서점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 이인규 변호사의 회고록이 진열돼 있다.ⓒ 뉴시스
주검을 딛고 성립한 후계정권

이 변호사의 이 같은 기술로 미루어 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을 방치했다. 거기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적극적으로 그를 구해내려는 열의는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랬던 그가 대통령이 된 데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그 뒤에 숨으려 했던 것이라고 썼다지만(책이 아직 서점에 배포되지 않았다) 어쨌든 권 여사와 아들, 딸 모두 사법적 책임에서 벗어났다. 재산도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상황 전개까지 고려했음 직하다. 물론 확신할 근거는 없다.


이 일련의 과정이 노무현·문재인 정권의 진면목이다. 정치적 순결성을 과시하던 정권의 이미지가 뇌물로 일그러지고, 그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린 리더의 주검 위에서 후계정권이 성립했다. 이들 정권을 받쳐준 것이 맹목적이면서 격렬한 군중이었다. 이들은 리더의 선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메시지의 진실성 여부는 상관없다. 군중을 움직이는 힘은 메시지의 내용이 아니라 소리 그 자체다.


우리보다 민주정치가 훨씬 성숙했다는 미국에서조차 도널드 트럼프의 말 몇 마디에 군중이 의회에 난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중선동정치는 그렇게 무섭다. 우리사회의 정치군중은 더 격렬하고 거칠다. 그 군중을 지금 이 대표가 이끌고 있다. 탁월한 선동술을 가졌다는 그가 ‘검사공화국’을 넘어 이제는 ‘검사왕국’ 운운하기 시작했다. 검찰을 무력화시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검사가 재판하는 게 아니다. 유무죄나 죄의 경중을 판단하는 사람은 판사다. 그런데 이 대표와 민주당은 판사 앞에 가기 싫다고 한다. 무죄를 확신한다면 피할 이유가 없다. 바꿔 말해 판사 앞에 안 가겠다고 버티는 것은 죄를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대표는 선동의 힘으로 검찰을 압도할 요량인 것 같은데 군중을 잘못 부추기다가 되레 그들의 발밑에 깔릴 수도 있다.


“인륜과 도리를 저버린 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역사의 심판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이 대표의 이 변호사에 대한 경고다. 정작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사람은 그 자신인 것 같은데?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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