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포격에 엄마 잃은 우크라 자매 '애국 콘서트 동원'…"역겹다"
입력 2023.02.26 11:26
수정 2023.02.26 11:26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흉흉해진 민심을 다잡기 위해 개최한 이른바 ‘애국 콘서트’에 자국 군의 포격으로 엄마를 잃은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며 공분을 사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조국 수호자들에게 영광을’이란 이름의 콘서트에서 러시아 군인에게 감사를 표했던 어린 우크라이나인 자매가 8개월 전 러시아군의 포격에 어머니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정부 및 군 관계자들과 수만 명의 관람객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에서 푸틴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러시아 장병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영웅적으로, 용기 있게, 용감하게 싸우고 있다. 우리의 역사적 영토, 우리의 인민을 위한 전투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는 말로 침략 전쟁을 정당화했다.
이어, 지난해 러시아가 점령한 남부 해안도시 마리우폴에서 현지 어린이 367명을 구출했다는 설명과 함께 유리 가가린이라는 이름의 러시아 병사가 소개됐다.
동생의 손을 잡고 무대에 선 우크라이나 어린이 안나 나우멘코(15)는 가가린을 올려다보며 “유리야 삼촌, 마리우폴에서 내 동생이랑 아이들 수백명을 구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나 자매는 전쟁 발발 초반인 지난해 4월 러시아군에 의해 어머니를 잃는 아픔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마리우폴에 머물던 안나의 가족은 러시아군의 공습을 피해 건물 지하실을 전전하며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중, 안나의 어머니가 잠시 외출했다가 러시아군의 포격에 숨졌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 우크라이나의 이웃들은 이번 콘서트에 불려나온 안나와 아이들의 얼굴을 곧장 알아봤고, 러시아군과 껴안는 장면에서는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한 이웃은 “마리우폴의 아이들은 배우가 아니다”라며 러시아 측을 향해 “혐오감이 든다”고 맹비난했다.
아이들의 부모가 친 러시아 성향이 아니었다며 “아이들이 금전적인 동기나 다른 이유로 이 쇼에 나서게 된 것 같다”고 의문을 표한 이웃도 있었다.
러시아군은 지난해 마리우폴을 점령하기 위해 포격으로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심지어 아이들이 피신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주민들이 러시아어로 ‘어린이들’(дети)이란 표식을 새긴 극장 건물에도 미사일을 날려 파괴하면서 비난의 대상이 됐다.
가디언에 따르면, 방송으로 이를 지켜본 마리우폴의 한 주민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역겹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