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연초부터 헝다發 경제위기 먹구름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3.01.08 07:07
수정 2023.01.08 07:07

헝다, 지난해 7월에 12월 말 구조조정안 발표 또 연기

홍콩본부 매각입찰 수차례 무산돼 유동성 확보에 난항

“헝다 파산, 58조 달러 규모 中 금융시스템에 큰 타격”

일각선 中 시장통제력 고려하면 금융위기 가능성 낮아


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 부동산 업체 헝다그룹이 매물로 내놓은 홍콩 차이나에버그란데센터 빌딩. 7년 전 125억 홍콩달러에 매입한 이 빌딩의 시세는 80억~90억 홍콩달러를 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새해 벽두부터 중국 경제위기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갑작스런 ‘위드코로나’ 정책 실시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는 마당에 파산위기에 몰린 중국 2위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그룹((Evergrande Group)이 구조조정 계획안 발표를 또다시 연기한 것이다.


헝다그룹은 지난해 말까지 홍콩 증권거래소에 1조 9665억 위안(약 363조원) 규모에 대한 채무조정안을 제출하기로 했지만, 시한을 지키지 못해 투자금 회수를 노리는 해외 채권단을 실망하게 하고 있다고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1일 보도했다. 헝다는 지난해 7월에 이어 또다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함에 따라 홍콩에서 청산소송에 직면할 공산이 커졌다.


특히 헝다는 홍콩 본부인 차이나에버그란데센터 입찰이 지난 3일 무산되는 바람에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7년 전 125억 홍콩달러(약 2조원)에 매입한 이 빌딩의 시세는 90억 홍콩달러를 밑돌고 있다.


중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건설·인프라 투자를 크게 늘린데 힘입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부문 비중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런데 부동산 업체들의 부채비율도 함께 치솟자 중국 정부가 규제를 강화해 분양시장이 급랭하는 바람에 부동산 기업의 경영여건이 급속히 악화됐다.


중국 건설·인프라 투자의 GDP성장 기여율은 연평균(2008년~2020년) 50%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신규차입 규제를 강화하는 등 부동산 업체에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축소)을 유도하면서 부동산업계가 침체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부동산 업체들의 부채비율은 396.5%로 제조업(108.0%)보다 훨씬 높다. 헝다의 경우 478.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97년 설립된 헝다는 지방 소도시에 소규모 주택을 싼값에 대량 공급하는 ‘박리다매’ 전략이 먹힌데 힘입어 단기간에 중국 2위 업체로 떠올랐다. 2021년 미 포춘지의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122위를 차지했다. 창업자 쉬자인(許家印) 회장은 2017년 알리바바그룹의 마윈(馬雲) 회장과 텅쉰(騰訊·Tencent)의 마화텅(馬化騰) 회장을 제치고 중국 최고 부자에 등재되기도 했다.


헝다그룹 자회사 헝다자동차가 지난해 10월 29일 판매를 시작한 첫 전기차 ‘헝츠5’. ⓒ 헝다그룹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전기자동차·생수·식용유·분유·테마파크·관광·헬스케어 등 문어발 사업 확장으로 부채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총자산이 2조 3775억 위안에 이르지만 총부채 역시 2조 위안 돌파가 눈앞이다. 중국 GDP 대비 2% 수준이다. 리창안(李長安) 대외경제무역대 국가대외개방연구원 교수는 “헝다그룹은 신에너지·스포츠·금융 등 핵심 사업과 관련 없는 너무 많은 분야로 확장해 유동성이 한계에 달했다”고 비판했다.


더욱이 주택 선(先)분양으로 받은 계약금을 투자금으로 이용하고, 회사채 발행과 은행대출에 자금조달을 의존하는 헝다 방식은 부동산 호황이 계속돼야만 지속 가능하다. 그런데 중국 당국이 금융리스크를 줄이고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자 금방 유동성 위기에 노출됐다. 헝다의 위기로 중국 전역에서 주택건설이 중단되고 부동산업계 전반에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줄을 이었다.


헝다는 당초 지난해 7월말 구조조정 계획안을 제출하기로 했다가 약속을 한 차례 어겼다. 계획안 제출을 1주일 앞두고 샤하이쥔(夏海鈞) 최고경영자(CEO)와 판다룽(潘大榮}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자금유용 혐의로 사임하는 등 경영 전반에서 혼란에 빠진 탓이다. 지난달에 달러화 채권을 보유한 채권자들을 만났지만, 끝내 구조조정안 제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특히 헝다는 지난해 6월 회사 청산소송도 당했는데, 11월 말 재판에서 헝다 측 법정대리인은 “2월 말이나 3월 초까지 해외 채권단으로부터 지원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헝다는 오는 3월 예정된 다음 공판까지 더 구체적인 조정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헝다의 파산이 현실화할 경우 부동산 시장뿐 아니라 중국 경제에도 초대형 악재가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헝다가 파산하면 58조 달러(약 7경원) 규모의 중국 금융시스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234개 도시에서 798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헝다에 계약금을 선지급한 부동산만 150만채에 이른다.


이에 따라 헝다 부실채권 리스크에 노출된 금융사는 은행 128곳, 신탁업체 등 비은행 금융기관 121곳에 이른다. 헝다 채권을 보유한 중국 건설사와 중소형 은행의 연쇄 파산 가능성이 제기된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망가진 중국 경제에 초대형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쉬자인(사진) 헝다그룹 회장이 지난 1일 밤 직원들에게 보낸 신년사에서 올해 채무를 해결하고 계획한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 EPA/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2021년 하반기 이후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부동산 급랭에 따른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해지자 지난해 말부터 부동산 부양책을 쏟아냈다. 부동산 업체의 대출상환 기한연장, 은행 지급준비율 인하, 부동산 기업의 자금조달과 인수·합병 지원책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부채비율에 따라 신규대출을 제한하는 핵심 규제인 '3대 레드라인'의 적용도 유예했고, 상장 부동산 기업의 증자 및 주식매각도 12년 만에 허용했다.


그럼에도 부동산 시장은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시장정보 업체 중국부동산정보(CRIC)에 따르면 중국 100대 부동산 업체의 지난해 12월 신규주택 판매액은 6775억 위안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30.8% 쪼그라들었고 감소폭은 전달(25.5%)보다 더 커졌다. 2021년 7월(-8.3%) 시작된 신규주택 판매 감소세가 18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연간 신규주택 판매액도 7조 5968억 위안으로 전년보다 41.3% 급감했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구제책을 내놓는 데도 위기는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주택판매 증가율 역시 지난해 5월 -59.4%로 정점을 찍은 뒤 11월에는 -25.5%로 호전됐다. 물론 2021년 하반기부터 침체가 시작된 만큼 지난해 하반기에는 상대적으로 지표가 좋아 보이는 기저효과 덕분이다.


그렇지만 12월에는 방역완화로 전국에 코로나 재확산으로 구매심리가 꽁꽁 얼어붙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CRIC는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업체가 자금이 부족해 인도 기일을 맞추지 못하면서 소비자 신뢰가 떨어진 게 시장 침체의 핵심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의식한 듯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경제참모인 류허(劉鶴) 부총리는 “부동산 산업은 경제의 기둥”이라며 “부동산업계의 재정환경을 개선하고 신뢰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 자료: 블룸버그, 국제금융센터 등

전문가들은 코로나 확산세를 막지 못한다면 현 상황이 쉽게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천원징(陳文靜) 차이나인덱스홀딩스(China Index Holdings)의 리서치 부국장은 “코로나 확산이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기회복세는 여전히 매우 약하고 주택구매자들의 소득 전망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헝다 사태는 건설투자 부진, 소비회복 지연 등을 통해 중국경제의 성장둔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 경제 내 부동산 부문 비중이 높아 주택경기 둔화, 건설투자 부진으로 이어질 경우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한 만큼 부동산 시장 붕괴에 따른 경기둔화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가계자산 중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59.1%)이 높아 주택시장 둔화는 가계소비 회복세를 제약할 소지마저 있다. 가계와 마찬가지로 지방정부 재정수입의 46%가량을 토지사용권 판매수입에 의존하면서 토지사용권 판매수입이 줄어들 경우 지방 재정여건이 악화될 공산이 크다.


다만 금융기관의 제한적 익스포져(위험노출액), 정부의 시장통제력을 감안하면 금융위기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낙관론도 상존한다. 헝다의 은행 관련 차입금 규모는 중국기업 은행대출의 0.2% 수준에 불과한 까닭이다. 한국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헝다 사태는 중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보는 게 대체적 평가”라며 “중국 정부가 헝다 사태의 충격이 부동산 전반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유동성 지원을 늘리는 한편 기존 건설프로젝트도 계속 진행되도록 관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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