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욱의 야단법석(野壇法席)] 공무원을 괴롭히는 사람들
입력 2022.11.07 07:11
수정 2022.11.08 14:51
모시는 의원 '국감스타' 만들기 위해 국감 때 마다 부처 공무원들 쥐어 짜는 의원 보좌진들
국회의원들의 외유성 출장, 몸종처럼 의전해야 하는 현지 공무원들…'외교관 여권'까지 탐내
표 밖에 모르는 정치인이 부처 장관으로 오는 게 '최악'…공무원 가장 괴롭히는 것은 역시 같은 공무원
이태원 참사로 나라 전체 슬픔 빠졌지만…자기 몸 갈아서 일했던 대다수 공무원들까지 비난하면 안 돼
가장 먼저 정치인들을 들 수 있다. 요즘 국정감사야 의원들의 고성과 욕설만 키우는 정쟁의 장(場)이 됐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의정의 꽃’으로 그 위세가 실로 어마 무시했다. 물론 그때도 ‘정책국감’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민적 지지와 공분을 일으키는 이슈들이 심심치 않게 국감장을 달궜다. 잔바리 막내 기자들이 하루 종일 받아치기로 초벌을 일궈 놓으면 별 할 일도 없이 어슬렁거리던 현장 반장들이 오후 늦게 나타나 ‘가장 뛰는 말’로 제목장사만 해도 제법 볼 만한 기사 한 그릇은 그냥 쏟아지던 때였다. 이미 지상파 방송이나 종이신문으로 뉴스를 보는 시대는 지났지만, 그때만 해도 방송 3사나 유력일간지들의 위상이 견고했고 국감이 끝나면 이들 언론사들이 어김없이 ‘국감스타’를 발표하는 습(習)이 있어 여기에 뽑히기 위해 혈안이 된 의원회관은 국감 기간 내내 불야성을 이뤘다.
그런데 ‘이번 국감에서 우리 영감님 한 방 터뜨리게 하자’는 일념으로 흔히 ‘사(私)노비’로 불리는 의원실 보좌진들이 밤을 새워 일군 병든 열정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불러와 정부 부처 곳곳에서 원성이 끊이지 않는다. 뭔지도 잘 모르고 제대로 보지도 않을 것이면서 일단 고압적인 으름장으로 토설하게 만드는 각종 자료요청에서부터 ‘열 몇 시간 기다려 1분이라도 증인석에 앉으면 다행’이라는 증인 출석 요구까지 국감 기간 부처 공무원들은 마른 걸레 쥐어 짜이듯이 시달리며 매일 같이 말라갔다. 같은 관가라도 행정부처 공무원들은 국회에서 일하는 입법 공무원들이 늘 부럽다고 말하는데, 민원인들에게 불친절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 없고 별 하는 일 없이 칼 퇴근 하는 호사를 매일같이 누려서라기보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에 국감으로 능욕당하지 않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의 외유성 출장 ‘의전’도 공무원들을 몸서리치게 한다. 금배지 앞세워 온갖 명분과 당위를 떼창으로 떠벌리며 어디 조사하러 가는 것이고 어디 견학하러 가는 것이라고 아무리 보도자료 뿌려 봤자 세금 탕진하며 해외에 놀러가는 일인지 모르는 국민들은 이제 없다. 그런데도 이들이 내리는 공항에서부터 몸종처럼 달라붙어 온갖 수발을 다 들고 떠나는 날까지 비위 맞춰야 하는 현지 공무원들의 고충은 1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들의 몰염치가 극에 달한 때는 꼭 1년 전, 이 나라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기도 한 모 국회의원이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할 때였다. 나라 밖에서 일 핑계로 유람 다닐 때 소지품 검사 안 받고 일부 비자면제 혜택이나 사법상 면책특권까지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이른바 ‘셀프 발의’에 나섰던 것인데, 비난여론의 철퇴를 맞은 후 법안은 아직도 외통위 소위에서 잠자고 있다. 자기들 배 채우며 특권을 누리는 데는 여야도, 진영도 없는 것이 정치인들인지라 언제 슬그머니 짝짝 쿵이 돼 통과시킬지 모르니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겠다.
설사가상으로 이런 정치인들이 누구누구의 측근이라며 정부 부처에 장관으로라도 오게 되면 상황은 최악이 된다. 오롯이 표를 위해 쌓아올린 설익은 지식과 이벤트성 쇼맨십이 여의도 밖을 나가자마자 마구잡이 칼춤을 추며 공무원들을 괴롭힌다. 어쩌다 무슨 성과라도 내는 날이면 세상이 갑절 이상으로 알아주지 않을까봐 안절부절 밑의 사람들만 들볶는다. 어느 정부에서인가 정치인 출신 장관이 말단 직원들의 고충을 들어준답시고 간담회를 가졌는데, 애로사항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제 갓 들어온 직원이 “장관님, 자꾸 이것저것 일 벌리지 마시고요, 정 해주고 싶으시면 장관님실 에어컨이나 나눠 주세요. 저희 사무실은 선풍기도 몇 개 없어요.”라고 답했다는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사진과 워딩(wording)이다. 내가 누구랑 만났는데 내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가, 내 잘난 말들은 언론에서 얼마나 받아주었는가, 따로 보고를 올리지 않는 부처는 없을 것이다. 장관을 지렛대로 더 큰 정치인이 되고 싶은 ‘그 푸른 꿈’에 사진과 워딩은 지문처럼 각인돼 영원히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담겨 있다. 지난 정부 평생 삽질도 해 본 적이 없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 나라 부동산을 얼마나 말아먹었는지, 재임 내내 진영의 이익에만 봉사했던 교육부 장관이 이 나라 백년대계를 얼마나 찢어놨는지 진정 알고 있다면, 윤석열 정부의 정치인 출신 장관들도 사진에만, 또 연설에만 매달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무원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역시 같은 공무원들이다. 일을 빨리 하면서도 잘하는 이른바 ‘효율의 위전’을 향한 갈망은 동서고금 하위 공무원들의 한결같은 지향이지만 이런 상사는 극히 드물다. 대신, 무능한데 부지런하기만 한 상사와 별 할 일도 없으면서 자정에 퇴근해야 마음이 편한 상사, 그리고 입에 걸레를 물고 하루 종일 남 탓만 하는 상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능력과 인품이 함량미달이라 도대체 저런 사람이 어떻게 저 자리까지 갈 수 있었지, 의문스러운 상사들이 한두 명이 아니겠지만 노회한 공무원들의 줄서기는 생각보다 다사다난하고 입체적이다. 언제나 실력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 천운과 함께 춤을 춘다. 소속 부처의 문 밖을 나가면 부처와 부처 간 알력(軋轢) 다툼과 이기주의가 격하게 진동한다. 공무원들의 인사권과 돈줄을 쥐고 있는 부처들의 횡포와 갑질은 익히 잘 알려진 것이고, 몇 년 전부터 자기 자식만이라도 외국에서 공부시키고 싶은 욕망에 전문 외교관들이 가야 하는 공관의 자리까지 노골적으로 빼앗으려는 부처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영어 한 마디 못하면서 기를 쓰고 ‘통상(通商)’을 도모해 기어이 수중에 넣었던 부처가 지난 정부에서 ‘탈원전 논란’과 ‘블랙리스트 의혹’만 야기한 것을 보면, 분에 넘치게 알짜배기를 챙기려다 끝내 탈이 난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공무원들에게 몇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항상 주어진 일에 70%만 정성을 쏟아라. 누군가를 위해 100%를 다했다가는 정권이 바뀌면 감옥에 간다. 한 땀 한 땀, 매사 책임소재도 분명히 해라. 당신의 상사는 언제나 당신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공을 가로챌 준비가 돼 있다. 굴러온 돌들에 대한 기대도 버려라. 아직도 힘 있는 실세 정치인 장관이 오면 우리 부처의 예산과 인력이 늘지 않을까, 이런 헛된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있는가. 그들이 부처에 잠시 머무는 목적은 당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욕심은 역시 자신의 건강을 돌보고 가능한 가족 곁에 머무는 일이다. 20년이 넘는 기자생활 동안 만났던 기라성(綺羅星) 같은 정치인과 관료들의 말년을 살펴보면, 다들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남 몰래 아프거나 홀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이도 아니면 그냥 놀면서 자꾸 옛날 얘기만 하고 까닭 없이 서운해 하며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화를 낸다. 삶의 모든 것이 다 한때이고 특별한 인생은 없다. 돈도 건강이 허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소진돼야 행복한 것이라면 결국 인간이 마지막까지 염원해야 할 것은 자신의 건강과 가족뿐이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이태원 참사로 나라 전체가 슬픔에 잠겨 있다. 당장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마음에 언제나 자기 몸을 갈아서 일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자리를 지켰던 대다수 공무원들까지 싸잡아 비난하고 사냥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번 사태를 정치적 호재로 악용하려는 세력들에게 가장 열렬히 호응하는 일이며, 덕분에 검찰 소환 날짜 며칠 벌었다고 뒤에서 조용히 키득거리고 있을 자들에게 본의 아니게 굴종하는 일이다. 어언간 또 세밑이 다가온다. 한해 업장소멸(業障消滅)도 다 안 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