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명대사㉗] 소설이 영화를 만났을 때 ‘명언 맛집’(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2.08.24 08:31
수정 2022.08.24 08:32

2012년에 나온 소설이 5년 뒤 일본과 중국에서 영화화됐는데 선뜻 눈이 가지 않았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그것도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게다가 히가시노 게이코다. 일본 추리소설의 대가가 쓴 잡화점 주인의 상담 편지 이야기라니 소설부터 마음의 문턱이 높았는데, 다시 또 영화라. 짐작했듯,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얘기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단순히 잡화점 벽에 붙은 메모판이나 우유상자를 통해 인생의 기로에 선 젊은이들이 고민 상담을 하고, 인생의 맛을 아는 초로의 아저씨가 답을 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묘하게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이어져 있고, 기막히게 과거와 현재의 인물들이 돌고 돌아 하나로 연결돼 있다. 살인이나 탐정이 등장하지 않아도 또 다른 차원의 긴장미를 느낄 수 있고, 사건과 인물의 인연이 맞아떨어질 때면 소름마저 돋는다.


이제야, 영화가 세상에 나오고 5년 뒤에야 영화를 봤다. 배우로 치면 유명한 성룡이 나미야 잡화점 주인으로 나오는 중국판이 진입장벽을 낮출 테지만, 연출에 아쉬움을 표하는 누리꾼의 의견을 믿고 또 원작 소설과 같은 국적의 영화가 아무래도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일본 영화를 클릭했다.


영화를 보니 소설을 읽지 않았어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게 적절하게 쳐낼 것을 쳐내며 선택과 집중을 잘했다. 소설을 읽었다 해도 도리어 이야기 구조와 전개 과정이 한눈에 들어오게 설정과 짜임새가 좋다. 소설의 명대사들도 감동의 누수 없이 마음을 파고든다. 어느 순간 불쑥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사람마다 감동 지점이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고민 상담자 ‘생선 가게 뮤지션’ ‘길 잃은 강아지’ ‘그린 리버’가 받은 답장에서 뭉클할 수 있다. 다른 이는 ‘현재의’ 3인조 좀도둑 청년 가운데 아츠야가 고민 상담이 아니라 잡화점 안과 밖의 시간연대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우유상자에 넣은 백지에 ‘과거의’ 나미야 씨가 보낸 답장에 마음이 크게 움직일 수 있다.


필자는 편지보다는, 답글을 써 준 이들이 한 말에서 ‘자꾸만 곱씹어지는’ 인생의 문장을 만났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답장을 썼을까, 어쩐지 그 말들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들은 것만 같았달까.


작게는, 내가 잡화점을 운영한다면 고민 상담을 자청할까 생각해보니, 영 자신이 없다. 내가 무슨 인생의 정답을 안다고, 감히…. 하지만 잡화점 주인 나미야 유지 씨는 말한다.


“아니, 몇 마디만 써 보내도 그쪽은 느낌이 크게 다를 거야. 내 얘기를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일, 자주 있었잖아?”


맞다. 자주 있었다. 그렇다고 누군가와 상담 편지를 주고받을 자신이 생겼다는 게 아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전부를 알고,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용기가 생겼다. 나미야 씨는 또 말한다.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익명의 누군가를 상담해 줄 수는 없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일상의 상담가’다. 친한 친구의 고민을 나누고, 해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 의견을 전한다. 실제로 그때 내가 친구에게 보내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그의 문제가 해결되어 ‘마음의 날씨’가 화창해지기를 바라는 진심, 응원이다. 본인에게 맞는 해결책은 사실 그가 이미 알고 있다.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까 말까 고민하며 눈을 질끈 감은 친구에게 실마리의 행방 정도를 일러주는 게 우리의 몫이다.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 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뜨끔했다. ‘어떤 것이든’이라는 대목에서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가능한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살려고 노력하지만 중과부적이다. 해서, 내가 아끼는 사람의 말에라도 마음을 쓰며 살아야지, 마음을 먹곤 한다. 그런데 나미야 씨는 얼굴도 모르는 이의 이야기를 존중하며 살았다. 흉내 낼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인격이다. 그러면서도 나미야 씨는 겸손하다. 내가 이러이러하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됐잖아, 자랑할 법도 하건만 나미야 씨는 감사조차 사양한다.


“이 사람은 나한테 감사하다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야. 일이 잘 풀린 건 전적으로 이 사람의 힘이야.”


흔히, 무엇을 줄 때 받을 걸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만, 평범한 우리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이랄까, 분명하달까, 편지를 쓴 이들도 빈손은 아니라는 게 좀도둑 멤버 고헤이의 말에서 짐작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늘 밤 처음으로 남에게 도움 되는 일을 했다는 실감이 들었어. 나 같은 게, 나 같은 바보가.”


살면서 돈이나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는 이유, 또 내 인생의 단짝을 만나 사랑하고픈 희망, 어쩌면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에 전해 오는 ‘이 감정’을 느끼기 위한 것은 아닐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마지막 회, 마지막 대사에서 만날 수 있는 그 단어, “뿌듯함”.


고헤이는 과거로부터 온 편지에 답장을 쓴 뒤 태어나 처음으로 태어난 이유, 태어나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됐다. 어려운 말이 아니라 ‘뿌듯함’이라는 감정을 통해 ‘존재 이유’를 느꼈다. 제2의 나미야 아저씨가 되어 상담자가 되지 않아도, 고헤이는 이제 이 감정을 반복해 느낄 수 있는 선택을 하며 인생길을 닦아나갈 힘을 얻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답장 쓰기에 적극적이었던 쇼타도, 삐딱선이었지만 백지편지에 답장을 받고 ‘아무개 씨’가 된 아츠야도.


정말 좋은 말들을 그대로 따를 수 있다면 인생의 값어치가 조금은 더해질 텐데, 절대 쉽지 않다. 특히나 친구, 연인에게보다 어려운 게 자식에게다.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사랑해서 가장 잘되기를 바라면서 가장 망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게 종종 부모다. 폭언과 폭행만 아니다, 잘하라는 잔소리 또 본인 기준에서의 성공을 입에 올리는 말들도 자식의 인생을 해한다.


상담자 명 ‘생선 가게 뮤지션’의 아버지, 아픈 몸을 이끌고 작은 생선가게를 하면서도 아들의 꿈을 응원하고 진정성을 발견해 지지해 주는 그는 최고의 부모다. 웬만해선 따라 하기 힘든, 아니 이렇게 하지 않는 게 자식 위하는 길이라고 세상의 많은 부모가 착각한다는 걸 고려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덕 있는 부모다.


“넌 음악의 길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대학도 그만뒀어. 그런데 겨우 3년 만에 포기하겠다고? 다시 목숨 걸고 열심히 해봐. 패배하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괜찮아. 하지만 네 발자국이라도 남기고 와!”


3년을 가수가 되기 위해, 아니 나만의 생각과 음률을 담은 노래를 하겠다며 꽤 오랜 시간 달려왔으나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아들을 흔들림 없이 응원한다. 적성이 아닌 듯하다고,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밥벌이를 생각하라는 조언이 훨씬 더 현실적일 수 있다. 내 부모조차 믿어 주지 않는 가능성, 그 아이가 과연 세상에서 내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다시금 반성한다, 나는 그러한 부모인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타인의 고민 따위에는 무관심하고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일이라고는 단 한 번도 없었던 그들이 과거에서 날아온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우리 현대인이 ‘그들’이다. 소설 속에서는, 또 영화 속에서는 30년 전 문을 닫은 나미야 씨 잡화점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그랬던 그들이 타인의 고민에 관심을 지니게 됐고, 그 관심은 자신의 참된 인생에 대한 고민과 새로운 출발로 이어지는 ‘기적’이 행해졌다. 그 책을 본, 영화를 본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날까. 그렇다면 세상의 마음 온도는 1도 올라갈 것이다. 일본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왓챠,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등에서 볼 수 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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