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위태롭고 비밀스러운 사랑이야기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06.30 14:01
수정 2022.06.30 10:13

영화 ‘헤어질 결심’

“당신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내 사랑은 시작됐다...”


살다보면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이 있다. 좋은데 너무 밉고, 가까워지고 싶지만 두렵고, 잡아서는 안 되는데 붙잡고 싶다. 이런 감정은 특히 사랑할 때 많이 느끼게 되고 그래서 사랑처럼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없다고 한다. 장르의 달인으로 불리는 박찬욱 감독은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형사 해준(박해일 분)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 수사를 맡게 된다. 조사 과정에서 만난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보인다. 해준이 서래에게 처음 품었던 의심은 곧 호기심과 관심으로 발전하고 이어 연민과 애정을 느낀다. 서래 역시 자신이 의심받는 상황인 걸 알면서도 태연하게 해준을 받아들인다. 배우자가 있는 형사와 사건의 용의자로서 만난 이들은 끌리면 절대 안 되는 관계임에도 묘한 유대감을 유지한다. 결국 해준은 서래를 용의 선상에서 없애지만 이후 의심할 만한 단서가 등장하면서 둘의 관계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멜로 장르를 통해 인간 본질을 탐구한다. 인간의 존재를 제일 잘 드러낼 수 있는 장르는 멜로가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과정에서 성격, 가치관, 성향 등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잘 나타나며 더 나아가 인간의 본질까지 꿰뚫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녀의 차이는 명확하다. 해준은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경력에 치명타를 입자 ‘자신은 붕괴됐다’고 말하며 서래를 멀리하는데 반해, 서래는 사랑하는 남자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을 내던진다. 영화는 결정적인 순간이면 이성적으로 변하는 남성과 감성적인 여성의 속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랑 앞에 인간의 속성을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담는다. 우리는 보통 가질 수 없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갈망하고 욕심을 낸다. 사랑에 있어 가질 수 없는 것은 금지된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애달프고 간절한 것이다. 도덕과 사회관습에 어긋나는 사랑에는 대표적으로 불륜이 해당된다. 해준 역시 도덕과 신념 그리고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한다. 영화는 모든 인간이 마음 깊숙한 곳에 품은 어둠이 가진 위험한 매력을 누구보다 감각적이고 매혹적으로 끌어냈다. 형사와 용의자를 통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어느 때보다 매혹적으로 그려냈지만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포장하든 금지된 것이다.


정교하고 독특한 미장센도 돋보인다. 유부남 형사가 용의자 여성을 사랑한다는 부도덕한 발상은 거장 감독의 정교한 미장센으로 완성됐다. 벽지부터 독특한 색감, 음악까지도 누가 봐도 박찬욱 감독 영화다. 불륜과 도덕 사이에 갈팡질팡하는 박해일의 연기와 탕웨이의 담담하면서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연기, 특유의 아우라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는다. 그들의 위태롭고 비밀스러운 사랑은 영화 중간에 자주 나오는 테마곡 ‘안개’처럼 표현되고 관객들을 쥐락펴락한다.


박찬욱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이다. 박 감독은 ‘올드보이’(2004년 심사위원대상)와 ‘박쥐’(2009년 심사위원상)에 이어 이번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해 K-무비의 위상을 높였다. 한국 배우와 감독에 중국 여배우 탕웨이의 연기를 더해서 한국영화의 국제화에도 큰 진전을 이뤘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썰물처럼 밀려오는 강렬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각박한 삶에 지친 현대인에게 오래도록 짙은 여운을 남긴다.


양경미 /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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