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욱의 야단법석(野壇法席)] 관종(關種)이 되고 싶은 사람들

양창욱 기자 (wook1410@dailian.co.kr)
입력 2022.06.20 07:30
수정 2022.06.22 22:36

친(親) 민주당 성향 임은정 검사, 자신의 책 제목 공모中…'관종 기질' 조국 전 장관과 닮아

조국, 지난 날의 말과 글때문에 국민들의 실망·분노 더욱 커졌던 것…타인의 관심, 병적으로 열망했나

김건희 여사 행보도 관종 논란에 동참…집 밖 나오는 순간 사인(私人) 아냐, 공적인 팀 통해 관리받아야

인간, 악담·저주 보다 '무관심' 더 두려워하지만…지나치면 추해지고 위법의 대가까지 치를수도

문재인 정부가 사랑한 임은정 대구지검 부장검사가 자신의 검사생활을 담은 책을 출간한다고 한다. '나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길모퉁이에서', '계속 가보겠습니다', '끝나지 않은 길' 등 마치 구도자의 삶이라도 사는 양 낯 뜨거운 예시까지 던져주며 제법 진지하게 제목을 공모하고 있다. ‘조국 흑서’의 저자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정치검사의 말로', ‘권력에 빌붙은 X, 임은정’, ‘나는 세금 축내는 여자’ 등 격분한 네티즌 반응을 소개하며 힐난했다.


개인적으론 ‘관종검사 표류기’ 제목에 가장 눈길이 갔다. 스스로 자기 봉헌(自己奉獻)에 가까운 헌신을 하고 있다는 최면과 주술을 걸고 노골적인 ‘희생양 놀이’를 하는 것이 부모만큼 공부 못한 것 외에는 죄가 없는 아이들까지 ‘지옥의 삶’을 살게 하면서도 여전히 주막강아지처럼 떠들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관종(關種, 관심종자) 기질과 닮았기 때문이다.


조국 전 장관은 알까. 우리가 조 전 장관에게 그토록 실망했던 이유가 지난 그 숱한 세월 그가 지었던 구업(口業)때문임을. 세상의 모든 정의와 양심을 홀로 독점한 듯 시도 때도 없이 쓰고 말하면서 가르치려고 들어 ‘완전한 인간’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 날 그 추잡한 민낯을 낱낱이 목도하고 철저하게 분노했던 것이다. 어쩌면 너무도 오래 전부터 인간의 자연스러운 인정욕구를 넘어 이미 병적인 수준에 이르렀던 것은 아닐까. 타인에 대한 관심만을 열망하고 희구하다 급기야 관심의 금단증상에 시달렸던 것은 아닐까.


명저 ‘그랜드스탠딩(grandstanding·과시)’의 저자들은 ‘관종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충고한다. 드러내놓고 반응하고 부추겨주면 더욱 존재감이 커지니 아예 무시하라는 것이다. 곱씹을수록 조 전 장관을 비롯해 ‘정치적 관종’의 우산 속에서 오늘도 튀어보려고 악다구니만 세우는 수많은 정치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조선시대 당쟁을 연상시키는 망국적 진영대결로 나라 전체가 조각나 있고, 우리들 대부분은 넌더리를 내면서도 그 중 한 진영에 단단히 고착돼 있어 저자들의 주문처럼 관종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정치가 ‘사회적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서 폭주하며 전횡을 일삼는 후진적 구조를 너무 늦기 전에 타파하려면 진지하게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사실 사람은 세상이 불공평해서 불만을 갖는 것이 아니다. 내가 더 못 가져서 불만인 것이다. 그래서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정치의 본질이고, 권력을 향한 맹목적인 갈망은 필연적으로 관종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며칠 전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은 '국정원 X파일'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박지원 전 국가원장을 향해 '관종정치'에 매몰돼 있다고 질타했고, 논객 진중권에 대한 비판에 아직도 ‘관종에 목마른 불쌍한 삼류 학자’라는 원색 비난이 적극 애용되는 등 어느새 관종은 정치권 공방의 키워드로도 자리 잡았다. 자신들도 언제 관종 짓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 지적질부터 눈에 띄게 하고 보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국모(國母)의 행보마저 관종 논란에 동참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허위 학력 및 경력 기재 시비에 고개 숙이며 ‘조용한 내조’를 약속한 것이 지난 연말인데, 막상 칼자루를 쥐고 보니 집에만 있는 것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반려견이라도 끌고 남편 집무실을 찾아 주목받고 싶고 백화점과 빵집, 영화관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소소한 일상’의 이름으로 애써 연출하고 싶었나 보다. “퍼스트레이디가 움직이면 다 돈이니 제발 집에 좀 가만히 계시라”며 정치권과 언론에서 읍소해도 잇달아 전직 대통령 부인들을 만나고 여권의 중진급 의원들의 부인들을 초청하는 등 광폭행보는 멈출 줄 모른다.


딴은 이렇게도 생각된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하얀 한복 차려입고 대통령 옆에서 엄마 미소 지으며 과일이나 깎으란 말인가. 언제까지나 사진 찍으러 보육원, 양로원만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말 칩거(蟄居)하면 영부인이 집 안에서 강아지하고만 논다고 또 세인들의 입방아가 차고 넘칠 것이다.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상이 김건희 여사가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에도 어울린다. 다만, 대통령 집무실 사진이 온라인 영토에서 제멋대로 떠도는 등 대통령에게 누(累)가 돼서는 안 된다. 지지율까지 계속 까먹으면 리스크를 넘어 정권의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대외적인 활동을 하려거든 공적인 팀을 통해 관리를 받으면서 해야 한다. 아무리 우겨도 대통령 부인은 집 밖을 나오는 순간 사인(私人)이 아니다.


인간이 악담과 저주 보다 두려워하는 것이 무관심이다. 악플이 무플 보다 낫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의 관심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의 본성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우선 사람이 저급하고 추해진다. 쉼 없이 가파르게 무리수를 두다 보면 도덕적으로 비난받게 돼 있고 급기야 위법과 범법의 범주로 들어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대중들의 관심과 지지를 먹고 사는 ‘선망의 별’들은 ‘잊혀지는 것’을 가장 비루하게 여긴다고 한다. 이 비루함이 때론 극단적인 선택을 불러오지만 자신의 이미지가 쉽게 소진되는 것을 우려해 일부러 꽁꽁 숨으며 스스로를 신비주의 영역에 의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스타를 잃어버린 세상이 더 궁금하고 갈증 나도록 만들어 자신의 진가(眞價)와 유효기간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결국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기느냐의 문제이다. 탁월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오롯이 가치 있는 목표, 즉 인간이 이뤄야하는 선한 목표에만 쓴다는 니체의 말은 해묵은 잠언(箴言)이 아니다.


양창욱 기자 (wook141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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