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때로는 ‘적’…배터리-완성차 공존의 법칙
입력 2022.03.31 06:00
수정 2022.03.31 09:30
GM·포드·스텔란티스, 글로벌 1등 위해 K배터리와 손 잡아
합작투자로 빠르게 시장 선두 가능성…기술 유출 문제는 부작용
'밀월관계' 종료 후 '동지→적'될 수 있어…"쫓고 쫓기는 싸움"
전기차 시대를 맞아 선두 다툼이 본격화되면서 완성차업체들이 배터리 기업과 합작(JV)해 시장 장악력을 확대하는 데 명운을 걸고 있다. 특히 K배터리사와 손잡은 GM, 포드, 스텔란티스 등이 미국, 유럽 등 세계 곳곳에 합작공장을 세우는 데 가장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다만 이런 식의 JV는 배터리 기술 유출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는 만큼 '롱런'하기는 어려운 방식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어느 정도의 '밀월관계'가 끝나면 완성차업체들이 자체 기술로 배터리사들을 긴장시킬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이들을 견제하기 위한 배터리 기업들의 '투자 셈법'도 한층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고도의 배터리 기술을 가진 한국 배터리 기업들과의 합작투자 방식으로 전기차 시장 장악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미국 GM(제너럴모터스)는 지난달 초 LG에너지솔루션과의 전기차용 배터리 합작공장인 얼티엄셀즈(Ultium Cells) 1~3공장에 이어 4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 얼티엄셀즈는 오하이오주에 제1공장(35GWh+α), 테네시주에 제2공장(35GWh+α)을 건설 중이다. 제1공장은 올해, 제2공장은 내년 양산을 시작한다. 3공장을 포함해 양사는 연 120GWh(기가와트아워) 이상의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GM이 LG에너지솔루션과 손 잡고 무섭게 시장 장악력을 확대하는 것은 그만큼 공격적인 전기차 전략 때문이다. GM은 2025년 북미 전기차 시장 점유율 1위 달성을 목표로 투자를 진행중으로, 2035년까지 모든 생산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할 계획을 갖고 있다.
LG가 GM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면 SK온은 포드와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양사는 합작법인 블루오벌에스케이(BlueOval SK)를 설립하고 테네시와 켄터키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테네시 공장 생산능력은 43GWh다. 470만평 부지에 포드의 전기차 생산공장과 함께 들어선다.
켄터키 공장은 190만평 부지에 총 86GW로 건설될 예정이다. 최근에는 코치를 포함한 3자가 참여한 터키 합작법인 설립 계획을 밝혔다. 생산능력은 30~45GWh다.
삼성SDI는 미국 스텔란티스(Stellantis)와 손을 잡았다. 2025년 상반기부터 미국에서 연간 23GWh 규모로 전기차 배터리셀과 모듈을 생산한다. 규모는 향후 40GWh까지 확장할 수 있다.
스텔란티스는 LG에너지솔루션과도 협업할 예정이다. 양사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윈저시에 합작 공장을 세우기로 하고 총 4조8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신규 공장 생산능력은 45GWh다.
다만 이 같은 협업은 단기적으로는 점유율 확대에 효과적이지만 기술 유출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는 만큼 장기적인 시너지 효과는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주행거리, 충전시간, 화재 위험 등 전기차 기술 핵심 대부분이 배터리에 있기 때문이다. LG, 삼성, SK 등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유수의 글로벌 완성차업체들과 빠르게 손을 잡을 수 있던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실제, 합작투자 발표 이후 자동차-배터리사간 불협화음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닛케이아시아 등 외신 등에 따르면 GM은 LG에너지솔루션에 배터리 기술 공유를 요청했다. 포드는 SK온에 기술 공유 약정을 제안했다.
배터리 안전성 확인이라는 이유로 이 같은 요구를 한다고는 하지만, 이는 명분일 뿐 궁극적으로는 영업 기밀인 배터리 제조 노하우를 파악해 자체 배터리 기술에 활용하려는 속셈이라는 지적이다.
자동차 회사로서는 배터리 기술을 확보하게 된다면 자체 전기차 플랫폼과 결합해 최적의 차량 성능을 구현하기 유리해진다. 또 배터리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도 원자재부터 재활용까지 다양한 투자·생산 계획도 세울 수 있다.
이런 '동상이몽' 속 자동차-배터리사들이 '밀월관계'를 지속하는 한 배터리 기술을 둘러싼 긴장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배터리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배터리 밀도 등 주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했지만, 제대로된 기술 안보를 위해서는 안전장치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합작투자는 단기적으로는 배터리-자동차업체에 '윈윈'으로 보여진다"면서도 "완성차업체들이 자체 기술 확보 노력을 지속하는 한 장기적으로는 갑을 형태는 뒤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배터리사들은 자체 기술 보호는 물론, 제조사들이 쫓아올 수 없을 만큼 혁신적인 미래 배터리 기술 개발에 매진하려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 배터리 R&D(연구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에 독립 법인을 만드는 등 판매 다각화에도 나서고 있다. 선두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한 보 앞선 기술로 더 많은 완성차업체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도화된 배터리 기술을 보유할수록 시장 장악 확대는 물론 기업 수명도 그만큼 연장시킬 수 있다. 반대로 배터리 기술이 한 번 도태되기 시작하면 그간 쌓아올린 경험과 투자가 무위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존립이 어려워진다.
경량 리튬황 배터리를 비롯해 전고체 배터리(고분자계, 황화물계)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미국 애리조나에 원통형 전용 독자 공장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2분기 착공 예정으로, 2024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SDI는 SDI연구소 내에 전고체 전지 파일럿 라인(S라인)을 착공하는 등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SK온은 중국 옌청 2공장, 헝가리 이반차 공장 등 독립 생산법인 능력을 확충해 2030년 총 생산능력(합작+독립) 500GWh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