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이슈] ‘대역’ 있어도, 없어도 공연 취소?… 코로나19로 드러난 공연계 시스템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2.03.22 09:27
수정 2022.03.22 09:27

'엔젤스 인 아메리카 파트 투' '리어' 등 잇따라 공연 취소

코로나19 이후 공연계는 취소와 연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출연 배우 확진 이후 선제적 조치로 공연을 일정기간 중단하는 것이 아닌, 확진자를 대신할 배우가 없어 공연을 이어가지 못하는 건 공연계 시스템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지난 19일 국립극단은 지난달 28일부터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리고 있는 연극 ‘엔젤스 인 아메키라 파트 투: 페레스트로이카’의 공연을 21일부터 나흘간 중단한다고 밝혔다. 출연 배우가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다. 이에 앞서 지난 11일에도 확진자가 발생해 공연이 취소됐고, 이후 배우들이 줄줄이 확진되면서 지금까지 공연이 재개되지 못했다.


지난 20일 막을 내린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도 10일부터 5일간 공연이 취소된 바 있다. 휘 역의 배우 윤태호가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다. 또 창극 ‘리어’도 출연 배우의 확진으로 개막이 17일에서 20일로 미뤄져 4회차 공연이 취소되는 등 공연계에서 출연 배우 확진으로 인한 공연 중단이 잇따른다.


무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연을 이어가기 위해 커버 배우를 두는 게 당연한 일이다. 커버 배우에는 언더스터디, 얼터네이트, 스탠바이, 스윙 등이 존재하는데 각각 정해진 주연 배우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조연, 앙상블 등이 무대에 오르지 못할 경우 그 배우의 대타로 무대에 오르는 식이다.


해외에서는 커버 배우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일부 대극장 뮤지컬 공연에 한해 이런 시스템이 도입돼 있다. 또 라이선스 작품의 해외 프로덕션 방침에 따라 커버를 두는 경우도 있다. 물론 중소규모의 작품에서도 만일을 대비해 커버 배우를 두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대역’을 두기 힘든 공연들이 허다하다.


앞선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공연계에서 대역은 필수적임에도 국내에서 아직까지 이런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데에는 여러 문제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예산’의 문제가 가장 크다. 특히 연극계에선 예산 문제로 대역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극단 관계자는 “현재 공연되는 연극 중 99%는 대역이 없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예산이 빠듯해 배역마다 대역을 두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그나마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짐에도 일부 뮤지컬이 계속해서 공연될 수 있었던 건 보편화된 멀티캐스팅 덕이다. 주연 배우가 확진된 경우라도 같은 배역에 적게는 2명, 많게는 4명까지 배우들이 캐스팅 됐기 때문에 서로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다. 뮤지컬 ‘팬레터’ ‘썸씽로튼’ ‘시카고’ ‘드라큘라’ 등 뮤지컬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준에 그친다. 국내에선 배우 중심으로 티켓을 구입하는 관람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배우를 보고 티켓을 산 관객들의 경우 멀티 캐스팅된 다른 배우가 대신 출연할 경우 취소표가 다수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실제로 캐스팅 변경 공지가 나간 후에 많은 관객들의 취소표가 발생한다. 본인이 관람하고자 하는 배우에 대한 니즈가 확실한 관객들이 많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커버 배우가 무대에 선다고 하면 공연을 취소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의 취소표가 발생하지 않겠나. 때문에 애초에 커버 배우를 두지 않는 제작사도 많고, 멀티캐스팅으로 대체 배우가 있음에도 공연을 취소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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