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에 빗장 풀린 기재부…‘재정 당국’ 존재감 상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2.02.23 14:53 수정 2022.02.23 14:53

여당, 1차 추경 직후 2·3차 추경 예고

기재부, 정치권 공세에 매번 뒷걸음질

전문가 “전문성으로 국회 상대해야”

최근 국회가 올해 1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확정·의결한 가운데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가 존재감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추경을 7차례나 편성하는 동안 매번 정치권 입김에 휘둘리는 모습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책을 기획하고 재정을 조율하는 고유권한마저 사실상 여당으로 넘어가면서 기재부가 기본적인 기능마저 잃어가고 있다고 우려한다.


기재부는 지난달 14조원 규모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재정 여건상 예산 증액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나 국채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지대해 그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14조원 규모로 국회에 제출했다”며 국회에서의 증액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국회는 지난 21일 정부가 제출한 14조원보다 2조9000억원 늘어난 16조9000억원 규모로 1차 추경안을 의결했다.


기재부는 정치권에서 최대 50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나름 선방했다는 분위기다.


반면 전문가들은 소폭 증액에 그친 것은 기재부 반대 때문이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국채발행에 부담을 느낀 정치권이 초과 세수를 활용하는 선에서 정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여당에서 대선 이후 2차, 3차 추경을 이미 예고한 것은 이런 전문가 주장을 뒷받침한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 날인 22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추경이 충분하지 않다”며 “국민의 피해를 국가가 온전히 책임을 지기 위해 대선 이후 2차 추경도 신속히 추진하고 필요하다면 긴급재정명령도 동원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기재부 ‘패싱’ 논란은 이미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특히 코로나19 발생 이후 확장 재정을 펼치는 과정에서 기재부는 오히려 재정 당국으로서의 존재감을 계속 상실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발생 이후 첫 추경을 추진하면서 예산 증액을 논의하는 자리에 홍 부총리가 아예 빠지기도 했다. 지난해 초과 세수를 활용한 추경 편성 때도 정치권은 홍 부총리가 약속한 ‘국가채무 상환’을 고려하지 않았다.


예산뿐만 아니라 세법 개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국회는 기재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1주택자 양도세 완화 등 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당시 홍 부총리가 “정부로서는 부동산 시장이 매우 불안정하다가 최근에 안정세로 돌아섰는데 양도세 공제금액 조정이 부동산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시기적으로 신중해야 된다”고 강조했으나 정치권은 상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여당 내부에서 ‘정부 반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정치권이 세법을 개정하면서 주무 부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한 것이다.


여야를 떠나 유력 대선 후보 대부분이 대선 이후 추가 재정 지출을 공약한 상황이라 3월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곧바로 추경 논란이 재현될 전망이다. 특히 2차, 3차 추경은 초과 세수 활용을 기대하기 힘들어 국채발행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기재부 역할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기재부가 단순히 재정 건정성을 앞세워서는 정치권의 힘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에 ‘미래의 일’인 재정 건전성 문제로 맞서봐야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재정 지출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재원 마련을 위한 기재부의 고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채발행은 나랏빚을 늘리게 된다’는 원론만 앞세울 게 아니라 재정 당국으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세법 개정이나 세출 조정 등으로 재정을 마련하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행정학과 교수는 “대선 이후 2차, 3차 추경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이미 10조 이상의 적자 국채를 발행한 상황에서 재정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추가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적자 국채만 늘리는 방식을 고수할 수는 없다”고 충고했다.


김 교수는 덧붙여 “(기재부가) 세출 구조조정 가능성이 있는 안을 미리 선별해 준비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