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 반응' 평가 받은 문대통령, '노무현 트라우마' 뭐길래
입력 2022.02.14 04:01
수정 2022.02.14 10:53
文, 윤석열 '전 정권 적폐 수사' 발언에 이례적 발끈
盧 서거, MB 정권 정치 보복 의한 것이라 여겨
사저 논란에 "좀스럽다"…트라우마 연관 해석돼
'대통령 당선 시 문재인 정부의 적폐를 수사하겠다'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발언에 대선을 20여 일 앞둔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여권이 '대놓고 정치 보복 의지를 드러냈다'며 폭발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면서 마치 이번 대선이 현직 대통령과 야당 대선 후보 간 전면전 양상이 된 모습이다.
이번 대선이 예측 불허의 격랑 속으로 더 빠져들게 된 건 윤 후보 발언에 대한 문 대통령의 반응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가 "매우 부적절하고 불쾌하다"는 공식 입장을 낸 지 하루 만에 직접 등판, 윤 후보를 향한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윤 후보를 향해 "(문재인 정부에서)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데도 못 본 척 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며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수사의 대상·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반응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원론적인 이야기에 문 대통령이 과민 반응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책사로 꼽히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11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왜 꼭 제 발 저린 사람처럼 과민 반응을 보일 필요가 뭐 있느냐"며 "정색을 하고 정면에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문 대통령이 이처럼 여과 없이 분노를 표출한 적은 거의 없다. 정가에서는 문 대통령의 분노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명박 정권 시절 정치 보복을 위해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무리하게 수사해 비극적 선택을 불렀다고 여기는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전 정권 적폐 수사' 발언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두 사람은 매우 친밀한 사이였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 '운명'에서 자신의 정치 입문과 관련해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 하게 됐다"며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온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중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언급을 몇 차례 했다. 문 대통령은 당선 첫 해인 2017년에 열린 노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노 대통령님이 그립고 보고 싶지만, 앞으로 임기 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다"며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했다.
2018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언급하자, 문 대통령은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3월 야당의 사저 의혹 제기에 "선거 시기라 이해하지만 그 정도로 하시지요.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직접 반박한 것을 두고도 '노무현 트라우마'와 연관 짓는 해석이 많았다. 노 전 대통령 퇴임 직후인 2008년 당시 한나라당은 봉하마을 사저를 초호화판이라고 주장하면서 '아방궁' '노방궁(노무현+아방궁)'이라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던 2011년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봉하마을을 찾았을 때 "절반은 사저고, 절반은 경호동인데 '아방궁'이라고 한 것은 너무한 것"이라며 "전직 대통령 예우에 신경을 써달라"고 항의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때 상황과 자신의 상황이 유사하다고 판단한 듯 "노 전 대통령의 봉하 사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 모든 절차는 법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윤 후보의 '적폐 수사' 발언이 보도된 지난 10일 세계 7대 통신사 및 연합뉴스와의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중 탄핵 후폭풍과 퇴임 후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서도 우리 정치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며 "아무리 선거 시기라 하더라도 정치권에서 갈등과 분열을 부추겨서는 통합의 정치로 갈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