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캐릭터탐구㉔] 한효주, ‘해적’보다는 ‘해피니스’
입력 2022.02.04 09:12
수정 2022.02.04 09:13
배우 한효주에게는 호방함이 있다.
과거 영화 ‘오직 그대만’, ‘쎄씨봉’, ‘해어화’ 등에서 봐왔던 청초한 모습도 잘 어울리지만,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댈수록 드러나는 미모가 돋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호방한 모습의 배우 한효주를 좋아한다. 영화 ‘감시자들’, 드라마 ‘해피니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이하 ‘해적2’) 같은 작품에서처럼 여성성을 줄이고 인간적 개성이 주를 이루는 모습일 때 배우 한효주의 가치가 빛난다.
빛난다고 얘기하는 건 두 가지 측면에서다. 하나는 경쟁력의 측면이다. 여성성이나 섹시미를 갖춘 여자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많지만, 성을 각인시키지 않고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해내고 앞장서서 무리를 이끄는 캐릭터가 가능한 여자 배우는 흔치 않다. 배우 한효주에게는 캐릭터를 여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또 하나는 여자 배우군의 다른 이와 비교할 것 없이, 한효주 자신의 연기 모습들 가운데 어느 쪽이 배우로서 더욱 매력 있는가를 볼 때 호방할 때가 더욱 반짝인다. 그저 형사로서 임무에 몸을 던지고(감시자들), 특공대 경찰이자 이웃으로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때로는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하고(해피니스), 강압과 완력이 아닌 현명한 지도력과 타당함으로 수하를 이끌고 팽 당했을 때조차 때를 기다릴 줄 아는(해적2) 인물을 연기할 때 배우 한효주의 정체성이 뚜렷이 확인된다.
이미 대중적으로 검증된 배우이고, 배우로서 밥벌이를 하는 직업인인 만큼 어떤 연기를 맡기든 못하겠는가마는 배우들에게도 특별히 어울리는 이미지가 있거나 인성의 뿌리와 맞닿아 있는 연기를 할 때 빛나는 건 사실이다. 배우 한효주의 호방함을 볼 때 그것이 한효주의 인간적 캐릭터와 닮아 있다 싶어 진정성 있는 연기로 다가와 개인적으로 더욱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기자가 한효주의 인간적 면모 전체를 결코 알지는 못한다. 작은 에피소드지만, 그 호방함을 느꼈던 때가 있다.
때는 영화 ‘감시자들’(감독 조의석, 제작 영화사 집, 배급 ㈜NEW, 2013) 시사회 날이다. 이미 ‘오직 그대만’(감독 송일곤, 제작 ㈜HB 엔터테인먼트·㈜51k, 배급 ㈜쇼박스, 2011)의 송일곤 감독으로부터 한효주라는 배우의 무한한 가능성과 그 담대함을 들었던 터라 기대를 지니고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의 신참 하윤주를 눈여겨봤던 것도 사실이다. 긴말하면 입 아픈 연기의 대가 설경구가 황 반장으로 포진해 있고, 진경이라는 배우를 새롭게 보게 한 이 실장이 어깨에 상의를 걸친 채 버티고 있었고, 가수임을 잊게 하는 이준호가 다람쥐 역할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스타 배우는 공백기가 있었든 비중이 크든 작든 작품에 존재감을 드리운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 제임스 역의 정우성이 있어 만족감 높은 관람이었다.
과거에는 영화 시사회 당일 제작진과 출연진, 기자, 배급과 홍보 스태프의 일부가 맥주 한잔 하는 ‘미디어데이’가 있었다. 공식적 행사들을 통해 묻기 어려웠던 얘기들을 소소하게 물을 수 있는 자리였다. 당시 기자는 영화 초반부의 지하철 장면에 대해 의문점을 하나 가지고 있었고 배우 설경구에게 확인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자가 장면을 잘못 본, 오해한 상황이었다. 설경구는 매우 점잖게 또 친절하게 그 장면에 문제가 없음을 차근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기자는 계속 꼬치꼬치 되물었다. 그때 옆 테이블에 있던 배우 한효주가 말했다. 얼마나 많은 분이 그 장면을 쓰고, 읽고, 준비하고, 연기하고, 촬영했겠느냐고. 그 정도 빈틈이나 오류는 이미 걸러졌을 게 아니겠느냐고.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단지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작은 구멍도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또 좋게 본 영화를 복기하는 재미로 화제를 삼은 것이었는데, 본의와 다르게 열과 성을 다해 작품을 만든 이들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언사라는 걸 깨닫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자신이 참여한 작품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있고, 그 자긍심이 가능할 만큼 매진했을 한효주의 노력이 느껴졌다.
배우 한효주가 변함없이 작품에 자신을 쏟아붓는다는 것은 드라마 ‘해피니스’(2021) 관계자의 전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해피니스’ 출연 제안을 받고, 시나리오를 읽은 뒤 새로운 느낌의 작품과 윤새봄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 한효주는 차기작 촬영 직전까지 모든 시간을 집중했다고 한다. 밀도 있게 진행된 현장이었지만 지친 내색 없이 함께 주연을 맡은 박형식, 조우진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캐릭터를 구축하고 합을 맞추며 즐겁게 촬영에 임했다고. 결과는 드라마 안에서 확인된다. 윤새봄 역에 한효주 외에는 다른 배우가 연상되지 않을 만큼 강인함과 인간미가 오락 가락으로 보이지 않게 그 인물이 되어 감염자가 넘치는 세상을 헤쳐 나간다.
현재는 ‘해적: 도깨비 깃발’(감독 김정훈, 제작 어뉴·오스카10스튜디오,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로 극장가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호쾌한 액션 활극의 중심에서 당차게 바다를 누빈다. 김남길-손예진-유해진이 주축이었던 해적 1편을 잊게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층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해적선의 선주이자 진정한 두목 해랑을 형상화했다. ‘해적2’ 관람하기 전에 ‘해피니스’를 보고 간다면 그 호방함이 더욱 크케 느껴질 것이고, 영화를 본 뒤 ‘해피니스’를 본다면 그 호쾌함이 단단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것이다.
‘해적2’ 해랑을 연기한 한효주에 대한 칭찬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개인적이라는 전제 아래, 해적보다는 경찰특공대 일원일 때 더 잘 어울린다. 배우에게는 특유의 이미지가 있는데 호방하고 옹골찬 모습에 더해 한효주에게는 ‘방향성’이 중요한 요소다. 왜구들의 배만을 소탕한다는 전제를 깐다 해도 ‘무엇’을 훔칠 때보다는 ‘누구’를 지킬 때 설득력이 크고 잘 어울린다. 해적선을 중심으로 운명을 함께하는 수하들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까지 염려하고 책임지려는 해랑도 멋있지만, 공명심과 뽐내지 않는 희생에 또 욱하는 성질까지 겸비한 ‘해피니스’ 윤새봄일 때 더욱 입체적으로 살아있다.
설 명절 연휴의 후유증으로 멀리 이동은 피하고 싶은 주말, 가까운 극장에서 ‘해적: 도깨비 깃발’로 크게 웃고 집에 틀어박혀 ‘해피니스’ 보며 신종 좀비가 출현한 세상에서 오들오들 떠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