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추경①] 해마다 늘어나는 ‘부득이한’ 예산 수정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2.01.24 15:41 수정 2022.01.24 15:41

외환위기 이후 거의 해마다 편성한 추경

헌법·국가재정법 ‘부득이한 사유’로 제한

전문가 “잦은 추경 본예산 체계 흔들어”

정부가 이례적으로 1월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하자 추경이 본래 기능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전문가들은 특히 본예산 집행 시작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추경을 편성하는 것은 “정부가 추경의 본래 기능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예산을 포퓰리즘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14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했다. 이번 정부 들어 10번째 추경으로, 그동안 편성한 추경 총액만 151조원을 웃돈다. 특히 정부가 1월에 추경을 편성한 것은 한국전쟁 도중이던 1951년 이후 71년 만이다.


추경의 사전적 의미는 ‘(본)예산이 성립한 후에 생긴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이미 성립된 예산에 변경을 가하는 예산’이다. 헌법 56조에 따라 정부는 예산에 변경을 가할 필요가 있을 때 추경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


국가재정법에도 추경 편성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국가재정법 89조에 따르면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 추경을 편성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헌법과 국가재정법에 나타난 추경 편성의 핵심은 ‘불가피성’이라고 강조한다. 나라 살림은 기본적으로 전년도에 편성한 예산을 바탕으로 한다. 세금 등 예상되는 수입을 바탕으로 지출 규모를 정하고, 예측에서 벗어나 모자라는 경우 국채를 발행하고 남는 경우 나랏빚을 갚는 형태가 기본이다.


정부는 이런 기본(예산)을 바탕으로 살림을 하되 천재지변과 같은 예측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했을 때 불가피하게,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게 추경이다. 잦은 추경은 국가 예산편성 체계를 흔드는 문제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편성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다.


법취지와 달리 우리나라 추경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보수와 진보 구분할 것 없이 거의 연례적으로 편성되는 상황이다. 1998년부터 올해까지 25년 동안 추경을 편성하지 않은 해는 다섯 차례(2007·2010·2011·2012·2014년)뿐이다. 한 해 두 번 이상 추경을 편성한 사례도 여러 번이다.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이유로 무려 4차례나 편성했다.


과거 추경 내용을 살펴보면 법적 요건, 즉 부득이한 사유가 아닌 경우가 다수다. 2000년 의약분업 지원이나 2001년 지역건강보험 확대, 2005년 주한미군기지 이전, 2006년 지방교부금 정산, 2008년 고유가 극복, 2013년 경기침체 대응, 2016년 구조조정 대응, 2017년 일자리 창출 등은 본예산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번 추경도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선 현재 코로나19 확산은 지난 2년간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더불어 추경을 통한 재정 확장은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금융당국에서 금리 인상을 추진하는 정책과도 모순된다. 무엇보다 올해 예산을 확정한 지 두 달, 실제 집행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새로운 살림을 계획한다는 건 정부의 예산편성 능력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방식의 추경은 효과도 없고 문제점만 생산한다. 추경의 본래 의미를 이렇게 상실시켜선 안 된다”며 “(정부가)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잘못된 선택을 했다. 이번 추경은 국민경제에 악영향 주는 거라서 잘못된 정책으로 비난받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누더기 추경②] 외환위기 이후 재정운용 ‘쌈짓돈’ 됐다에서 계속됩니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