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방역지침→소송→수정…정부 '누더기 방역'에 혼란·불신만 가중

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입력 2022.01.18 05:04
수정 2022.01.17 22:01

법원 판단에 따라 대형마트·영화관 등 6종 시설 해제…청소년 방역패스는 유지 방침

미접종자들 "종교시설·대중교통 제외,식당·카페는 대상…여전히 형성평 안 맞는다" 불만

청소년 방역패스 강행, 학부모단체 추가 소송 고려…"이미 헌법소원 제기, 3월부터 식사도 힘들어"

전문가 "정부, 국민적 합의·과학적 근거 토대로 방역패스 진행하지 않아 패소한 것"

정부가 17일 보습학원, 독서실, 대형마트 등 시설의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를 해제하기로 했다. 정부는 법원 판단에 따라 지역별로 달리 적용될 방역패스의 혼선을 줄인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방역패스 해제 기준의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향후 방역지침에 맞서는 각종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역 기준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열고 "방역 위험도에 따라 제도 적용을 조정한다는 방역 원칙에 따라 위험도가 낮은 학원 등 6가지 시설의 방역패스를 일차적으로 해제한다"고 밝혔다. 방역패스가 해제되는 시설은 ▲독서실·스터디카페 ▲도서관 ▲박물관·미술관·과학관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규모점포 ▲학원 ▲영화관·공연장 등 6종 시설이다.


앞서 법원 판결로 이날부터 서울 지역 백화점·마트는 방역패스가 해제되고, 서울 외 다른 지역의 백화점·마트는 방역패스가 유지돼 혼선이 야기되자 정부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다만 정부는 오는 3월 1일부터 시행키로 한 청소년 방역패스 조치는 유지하기로 했다.


미접종자들은 일단 방역패스 일부 해제 조치가 반갑다면서도, 해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시설들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기저질환으로 접종을 미룬 박모(35)씨는 "정부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마트까지 미접종자 출입을 금지하면서 과하게 기본권을 침해했는데 사법부가 제동을 걸어줬다"며 "다만 출퇴근길 다닥다닥 붙은 대중교통도 방역패스를 적용하지 않으면서 떨어져 식사하는 식당은 왜 방역패스 대상인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미접종자 김모(31)씨도 "오미크론은 접종 여부를 가리지 않고 감염 사례가 나오면서 접종을 강제하는 방역패스가 과하게 느껴졌는데 오늘 조치는 다행스럽다"면서도 "수백명이 모이는 종교시설은 왜 방역패스 적용 대상이 아닌지 잘 모르겠고, 실내체육시설이나 식당, 카페 등은 왜 아직도 대상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법부 판단에 따라 방역지침이 수정되는 사례가 나오면서, 정부 방역조치에 맞서는 각종 소송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방역패스 처분 취소소송 대리인단도 이날 법원이 서울시 내 일부 업종과 청소년에 한해 방역패스 효력을 정지한 데 대해 "식당·카페도 추가로 풀고 전국 단위로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즉시항고 의사를 밝혔다.


특히 정부가 청소년 방역패스를 적용 계획을 유지하자 학부모단체 사이에서는 추가 고발·불복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신민향 학생학부모인권보호연대는 "백신 피해 학생들이 400명 가까이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 방역패스를 강행한다는 정부 입장에 당황스럽다"며 "현재 정부의 학생 강제접종 관련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상태인데, 방역당국을 대상으로 추가 소송 제기, 고발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은희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대표는 "청소년들은 보호자와 함께 밥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청소년 방역패스가 시행되면 3월부터 식사 등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며 "방역패스 반대하는 소송단을 모집해 거의 1만명 이상이 모였고, 향후 지역별로 나눠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방역조치에 대항하는 소송이 늘어나면서 '누더기 방역'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방역조치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엄중식 가천대 감염내과 교수는 "앞으로 방역지침에 대한 '조각조각 소송'이 이어지고, 결과에 따라 정부의 방역지침이 자주 고쳐지면 국민 사이에서 혼란과 불신만이 쌓일 수 있다"며 "방역 정책이 흔들리면 감염 위험도 커질 텐데, 크게 유행이 돌고 나서야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당초 보건 당국이 국민적 합의,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방역패스를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정심판에서도 논리가 뒤집힌 것"이라고 전제하고 "코로나가 처음 확산했던 2년 전과 똑같은 방역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니 국민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어 "요양병원·질병청 등 사망자가 나올 수 있거나 사회 핵심인력을 유지하는 시설에 한해 방역패스를 적용하고,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거리두기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고 밝혔다.

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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