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덕에 깔끔히 해소된 ‘김건희 의혹’
입력 2022.01.17 08:00
수정 2022.01.17 07:51
‘떡밥’까지 던져가며 통화 유도
쾌재 부르다 덫에 걸린 민주당
이젠 ‘형수욕설’ 공개할 차례다
결과적으로 MBC가 김건희 씨의 의혹 해소를 도와준 셈이 됐다. 서울의소리라는 매체가 7시간 45분짜리 녹음테이프의 존재를 슬쩍 흘리는 정도에 그쳤으면 소문의 눈덩이 효과로 김 씨와 그의 남편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또 한 번 곤욕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MBC가 널름 그걸 받아 공개해버렸다. ‘언론의 사명’ 의식에 너무 투철했기 때문이었을까? 그 녹음 파일의 생성과정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면서도 국민의 알 권리에 부응해 가야한다는 ‘공영방송’의 책무를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는 신념에 쫓긴 탓이었을까?
인터넷매체인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라는 사람이 윤 후보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곤경에서 구해줄 수 있을 것처럼 구슬렸다. 나름대로 사전 준비도 했다. 열린공감TV라는 또 다른 매체의 김 씨 관련 기사를 뒤집는 보도를 내보냈다. 그 매체가 오보를 인정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열린공감TV가 정정을 요구하자 ‘떡밥’용이라며 이해를 구했다는 언론 보도다.
‘떡밥’까지 던져가며 통화 유도
이 씨는 52차례에 걸친 김 씨와의 통화를 녹음했다. 서울의소리 측은 당초 그 파일을 열린공감TV에 제공한다고 했으나 약속과는 달리 MBC 측에 넘겼다. 백은종이라는 이 매체의 대표는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지만 또 다른 배경의 유무는 앞으로 밝혀질 필요가 있다. 어쨌든 MBC는 이 파일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파악했을 것이면서도 기어이 ‘공영방송’의 화면을 통해 공개했다. 불법적으로 만들어지고 취득된 게 아니니 괜찮다는 것일까? 언론 매체와 기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에 ‘도덕성’ ‘도덕적 판단’은 없는 건가?
어쩌다가 버젓한 언론 매체까지, 그 야비하고 비열한 취재 과정을 거쳐 확보된 파일에 그처럼 꽂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무리 파일이 아깝다고 여겨졌더라도 한두 군데 정도 발췌해서 보도하고 말 일이었다. 왜 일을 그처럼 크게 벌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쯤 머쓱해졌을까, 아니면 공개 강행의 명분을 보완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을까? “우리가 정치적 의도 없이 오직 국민의 알권리를 존중해서 굳이 녹음된 음성까지 들려준 것”이라는 식으로….
MBC가 손님 끌기에는 성공을 했다. 그런데 어쩌나, 김 씨와 윤 후보가 곤경에 처하기는커녕 되레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덤터기를 쓰게 생겼으니…. 민주당 측은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센세이셔널한 내용들이 들어 있기를 기대했을 법하다. 그렇지만 그 기대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오히려 정권 측의 모모한 인사들이 난처해할 만한 내용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조국의 적은 민주당’ ‘더불어민주당 내의 권력 다툼’ 등의 언급은 인화성이 강하다. 여권의 내부 갈등과 분열을 유발하기에 제격이다. 윤 후보에게 결정적 한방이 될 것으로 믿었던 ‘통화 파일’이 ‘역설적 상황’을 초래했다는 점에선 민주당의 판도라상자가 열렸다고 할 수 있겠다.
쾌재 부르다 덫에 걸린 민주당
그뿐이 아니다. 소위 ‘쥴리 의혹’, ‘유부남과의 동거설’ 등과 관련, 김 씨의 똑 부러진 해명기회가 됐다. 윤 후보나 국민의힘 측에서 원했던 게 아니라 좌파 매체가 만들어 제공한 파일을 친여성향 짙은 MBC가 기어이 저지른 일이니, 민주당과 이 후보 측은 하소연할 데도 없게 되었다.
“오랜만에 본방 사수해야 할 방송이 생겼다”(민주당 고민정 의원).“오랜만에 적시에 판결다운 판결을 만났다. 대한민국 국운이 있나 봅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검찰당 손아귀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늘도 돕는 것 같다”(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지상파 시청률 50% 이번 일요일 이거 한번 해봅시다”(정철 민주당 선대위 카피라이터).
이들의 소감이 궁금하다. 하긴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니까 여론의 물꼬를 돌리려 온갖 구호와 이야기를 만들어내겠지만 이미 대중의 관심은 ‘김건희 의혹’에서 ‘정권 내 권력다툼’ 쪽으로 옮겨가 버렸다. 그 점에서 추 전 장관이 말한 ‘국운’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긴 어렵잖다. 국운이든 개인 운이든, 아무래도 운(運)은 윤 후보 손을 들어줄 모양이다.
선거를, 그것도 대통령 선거를 이렇게까지 타락시키는 민주당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가 한 게 아니다”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기자라는 이름을 내건 그 이 아무개의 부도덕하고 비열한 행위, 그것을 기어이 방송화면을 통해 공개하겠다고 한 공영방송사의 비윤리적 결정에 대해 민주당 사람들은 선동적 찬사를 보내지 않았는가.
이젠 ‘형수욕설’ 공개할 차례다
후보의 부인도 당연히 검증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여성에 대해, 가장 모욕적인 의혹을 집요하게 주장하고 퍼뜨린 게, 용인될 수 있는 집권당의 선거운동 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들이 여성에 대해 얼마나 가혹하고 차가운 집단인지는 계기 때마다 거듭거듭 입증된 바 있다. 여성들이 핍박받고 농락당한 사건들에 대해 민주당 내의 여성 의원들까지 오히려 가해자 역성을 드는 행태를 보였다. 추 전 장관은 자신의 뒷모습 사진을 신문에 게재했다고 해서 ‘관음증’ 운운했다. 그 말을 자신과 민주당 사람들에게 기꺼이 선사할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MBC는 이재명 후보의 ‘형수욕설’ 파일도 공개해야 한다. 중앙선관위가 파일 원본을 다 공개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그건 억지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측은 “왜곡되지 않도록 최대한 편집하지 않고 전해드리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필요한 부분만 잘라서, 그러니까 편집해서 보도한 데 대한 설명이 그랬다. ‘형수 욕설’도 그렇게 하면 된다. 진실보도에 대한 사명감의 발로였다면 고(故) 이병철 씨가 남긴 ‘이재명 변호사비 대납의혹’ 관련 통화 녹음 파일도 방송해야 마땅하다.
그러지 않아도 진실‧거짓의 언어가 뒤죽박죽 뒤섞여 난무하는 때다. 궤변은 제대로 된 언론이 취할 바 태도가 아니다. 말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방송이, 되레 그걸 어지럽히면서 궤변으로 합리화하는 일은 없으리라 믿고 기대한다. 곧 공영방송을 통해 ‘형수욕설’, ‘이병철 씨 통화’를 육성으로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