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이슈] 개그 소재 넘어 ‘범죄자 띄우기’ 혈안…‘경각심’ 사라지는 예능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2.01.02 09:47
수정 2022.01.02 22:00

‘터키즈 온 더 블럭’ 정상수 음주 난동 언급하며 폭소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 예능으로 복귀하며 자신의 허물을 ‘셀프 디스’ 하거나 풍자해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예능들은 ‘범죄를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아슬아슬하게 선을 오가며 ‘웃픈’(웃기면서 슬픈) 상황들을 연출하곤 했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띄우는’ 상황까지 등장했다. 범죄 이력이 있는 연예인을 등장시키며 그의 마음 고생을 강조하는가 하면, 논란의 사건을 농담 소재로 삼으며 제작진까지 박장대소하는 장면을 담기도 한다. 아슬아슬했던 선을 결국 넘어버리는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TV조선 예능프로그램 ‘부캐전성시대’를 통해 4년 만에 방송에 정식으로 복귀한 신정환은 첫 회에서 해외 원정 도박사건에 대한 ‘셀프 디스’하며 복귀 신고식을 치렀다. 부캐릭터 씬스틸러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신정환은 남의 씬을 훔친 죄로 복역하다 특별사면으로 출소하면서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신정환은 “도벽은 고치셨냐”는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가 하면, “혹시 지난날이 그립지 않냐”는 질문에 ‘지난날 나는 잘못을 했다’는 자막이 등장하는 등 자신의 상황을 절묘하게 활용하며 씁쓸한 웃음을 유발했었다.


이는 논란을 빚은 연예인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신정환이 지난 2018년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에도 그의 도박 범죄는 여러 차례 농담의 소재로 활용됐다. 다른 출연진이 신정환에 대해 ‘필리핀의 뎅귀’라고 농담하거나 “걸음 소리는 ‘도박도박’일 것”이라고 말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는 지난 7월 김상혁이 출연하자, 그를 ‘흑역사 어록의 아이콘’이라고 칭하며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 하지 않았다’는 과거 논란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같은 날 유세윤의 음주운전 자수 사건도 언급됐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양재진이 유세윤의 과거에 대해 ‘이른 나이 성공으로 인한 공허함과 우울감을 느낀 것’이라고 설명하며 그 예로 “얼마 후에 사건이 터졌지 않나”라고 당시 사건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세윤은 이에 얼굴을 가리고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예능프로그램의 분위기상 지나치게 진지해지지 않는 선에서 반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전달하거나 또는 ‘부캐전성시대’와 같이 콩트 안에 논란을 녹여내며 프로그램의 ‘풍자’ 성격을 더욱 강조하기도 한다. 물론 ‘논란을 개그 소재로 삼아 심각성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 다만 비판 의도가 담긴 풍자 또는 당사자의 떳떳하지 못한 반응 등을 함께 담아 씁쓸한 상황을 연출하는 등 희화화와, 미화의 의도를 약화하기 위한 장치들도 함께 활용하며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슬아슬했던 선마저 지켜지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해 4월에는 연애프로그램 ‘하트시그널’ 출연자들이 다시 만나는 내용을 담은 채널A ‘프렌즈’가 음주운전 물의를 빚은 김현우를 옹호하는 듯한 내용을 담아 비난을 받았었다. 김현우의 심경 고백에 초점을 맞춰 그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강조하는가 하면, 제작진은 ‘이렇게 담담해지기까지 어떤 마음이었을지’라는 자막까지 덧붙이며 그를 두둔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에 시청자들은 ‘출연도 모자라 포장까지 해준다’라며 실망감을 드러냈었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 중인 웹예능 ‘터키즈 온 더 블럭’는 정상수를 출연시키며 본격적으로 띄우기에 나서기도 했다.


정상수는 몇 년에 걸쳐 음주 난동과 폭행 등으로 물의를 빚은 래퍼다. 지난 2017년 4월과 7월 음주 난동을 부리다가 경찰의 테이저건을 맞고 체포되는가 하면, 그 이후에도 술집에서 손님을 폭행하고 난동을 피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기도 했다.


‘터키즈 온 더 블럭’은 그런 정상수의 출연을 ‘정말 모시기 힘들었던 초초초셀럽 핑크빛 상수 등장’이라고 설명했으며, 경찰에게 난동을 부리다 테이저건을 맞은 사건 역시도 ‘박장대소’하며 소개했다. “테이저건을 맞느라 출연이 늦어졌다”는 농담을 하며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가 하면, “국내 최초 총 맞은 래퍼라는 수식어가 있다. 인기를 실감하냐”라고 묻기도 했다. MC는 물론, 제작진까지 모두가 크게 웃으며 최소한의 반성, 비판의 의지도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지키던 선을 넘는 사례들이 등장하면서 범죄 미화 우려도 점차 짙어지고 있다. 범죄 이력을 마냥 재밌게 포장한 ‘터키즈 온 더 블럭’ 정상수 편의 댓글에는 ‘재밌다’ 혹은 ‘순수함이 느껴진다’ 등의 긍정적인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논란을 빚은 이후 진정성을 보여주며 다시 일어서는 연예인들도 많지만, 그의 이력까지 나쁘지 않은 것으로 ‘포장’하는 것은 분명 선을 넘는 일이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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